
#고객사와 주고 받은 업무 관련 메일이 쌓였다. 고객사가 확인해준 내용에 대해 감사하다는 답장을 보내야 하는데 다른 급한 업무가 놓여있다. 받은메일함 화면에서 바로 챗봇에게 '메일들을 분석해 감사하다는 내용의 답장을 공손한 어투로 써줘'라고 명령을 내렸더니 깔끔한 답장이 완성됐다.
#회사의 재무적 리스크(위험요소)를 미리 파악하려고 하는데 다른 업무들로 시간이 부족하다. 챗봇에게 '지난 3년간의 재무제표를 분석해 20% 이상의 변동이 있는 계정과목을 알려주고 리스크를 분석해줘'라고 메시지를 남겼다. 챗봇은 전년 대비 20% 이상 늘거나 줄어든 항목과 분석 내용을 일목요연하게 보여줬다.
토종 ERP(전사적자원관리) 전문기업 더존비즈온 직원들이 최근 사내에서 자사 ERP 'WEHAGO(위하고)'를 통해 하고 있는 실제 업무 모습이다. 사람 대신 이메일을 작성해주거나 재무제표를 분석해주는 주체는 인공지능(AI)이다. AI가 ERP 위하고에 녹아들었다. 더존비즈온은 미국 오픈AI의 초거대AI GPT와 자사 ERP 위하고를 연결했다. GPT는 더존비즈온의 사내 업무 데이터를 토대로 학습했다. 때문에 직원들은 AI의 답변을 신뢰할 수 있다. AI 기능을 활용하기 위해 외부 웹페이지에 접속할 필요도 없다. 업무를 하고 있는 ERP 화면에서 바로 챗봇을 통해 명령을 내리고 답을 얻는다. 더존비즈온은 이렇게 ERP에 녹아든 AI 비서 서비스를 'ONE AI'로 명명했다.

최근 서울시 중구에 위치한 더존비즈온 사옥 더존을지타워에서 만난 송호철 플랫폼사업부문 대표는 자신의 메일함에서 챗봇에게 명령을 내리는 모습을 공개했다. 메일함 화면의 오른쪽 하단에 위치한 챗봇 아이콘을 클릭했더니 대화창이 열렸다. 챗봇을 통해 명령을 내리니 메일 작성과 재무제표 분석 외에도 특정 채팅방에서 오간 대화 내용을 요약해보여주고 어려운 회계용어가 가득한 전자계약서도 분석해줬다. 평소 카카오톡 PC버전에 익숙하다면 챗봇을 통해 메시지를 보내는 과정도 수월하겠다는 느낌을 받았다. 카카오톡에서 친구들과 일상 대화를 나눴다면 ERP AI 챗봇과는 업무 관련 대화를 나누는 셈이다.
더존비즈온은 AI를 업무에 활용하는 방법에 대해 잘 모르는 기업들이 많다는 점에 착안, ERP에 AI를 적용한 ONE AI를 개발했다. 대부분의 기업들이 활용하고 있는 ERP에 AI를 적용한다면 보다 편리하게 AI를 활용하면서 업무 생산성을 높일 수 있다고 판단했다. AI가 학습할 사내 데이터도 직원들이 직접 지정한다. 예를들면 업무용 데이터들이 모여있는 웹스토리지에서 회사소개서 파일 옆에 있는 'AI 지식보관함 추가' 버튼을 누르면 회사소개서는 AI가 학습하는 대상에 포함되는 방식이다. 회사는 사내 모든 데이터를 AI가 학습하기보다 직원들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데이터를 AI가 학습하는 것이 효율적이라고 판단했다.
AI 비서 서비스에 있어 보안도 중요하다. 회사는 AI가 사내 데이터를 학습하는 과정에 RAG(Retrieval-Augmented Generation, 검색증강생성)를 적용했다. RAG는 2차원이나 3차원 정도가 아닌 수천차원에 벡터값으로 존재하는 데이터 중 질문의 답과 연관 있는 부분만 추려와 사용자가 이해하기 쉬운 형태로 답을 제시한다. 데이터를 쪼개어 벡터값 형태로 필요한 것만 AI에 넘겨주기에 외부로 유출되거나 악용될 염려가 없다는 것이 송 대표의 설명이다.

더존비즈온은 국내 ERP 시장에서 SAP·영림원소프트랩·오라클 등과 경쟁하고 있다. 송 대표는 경쟁자들과의 차별점으로 회계·인사·총무 등 회사에서 필요한 대부분의 업무를 하나의 플랫폼에서 제공하는 점을 꼽았다. 기업들이 필요에 따라 메신저·영상회의 플랫폼·회계전문 소프트웨어를 따로 계약하고 쓸 필요없이 위하고에서 모두 해결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여기에 AI도 더했다.
현재 더존비즈온 직원들이 위하고에 적용된 ONE AI를 테스트하고 있다. 세무사들이 주로 쓰는 '위하고T', 세무사들의 고객사들이 이용하는 '위하고T엣지'도 테스트 대상이다. 세무관련 업무를 하는 직원들은 ONE AI가 세무조정에 대한 답변을 빠르게 해주는 것에 대해 만족감을 나타냈다. 회상회의를 할 때 회의 내용을 텍스트로 요약해주거나 클라우드에서 업무 관련 지식을 검색해주는 것도 직원들이 좋아한 기능이다.
회사는 테스트에서 나온 의견들을 ONE AI에 반영해 오는 5월에 외부에 출시할 계획이다. 가격 정책도 검토 중이다. 위하고의 부가상품으로 추가하거나 새로운 요금제를 만들 수도 있다. 회사는 강력한 AI 기능을 갖춘 ONE AI를 내세워 국내 ERP 시장에서 점유율을 더 끌어올릴 방침이다.
1976년생인 송 대표는 연세대학교에서 산업정보경영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회사의 플랫폼사업부문을 이끌고 있으며 대외적으로는 대통령직속 디지털플랫폼정부위원회 민간위원과 공공데이터전략위원회 민간위원을 맡고 있다. 그는 한국판뉴딜 추진 유공 국무총리 표창(2022년)을 비롯해 △4차산업혁명위원회 위원장 표창(2020년) △대한민국 IT서비스 혁신대상 행정안전부장관상(2020년) △대한민국 ICT Innovation Awards 과학기술정보통신부장관상(2019년) △클라우드 산업발전 유공자 표창 미래창조과학부장관상(2013년) 등을 받았다.
박현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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