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2, 30대 청년백수를 예언한 프랑스 사회학자
프랑스의 레전드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
그를 세계적 스타로 만들아준 저작 <구별짓기>
"가령 노동자계급의 자녀들의 경우 중등교육을 받고 일시적으로 노동세계의 필연성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는 ‘학생’이라는 애매한 신분을 경험하다 보면 희망과 기회 간의 변증법적 관계 속에서, 즉 이전 세대에게는 사회적 숙명을 거의 언제나 당연한 것으로, 때로는 자진하여(성인으로의 진입과 처음으로 갱도에 내려가는 것을 동일시했던 광부의 자식들처럼) 진지하게 받아들이도록 한 이 관계 속에서 낙오자가 되기 쉽다. 대입자격증서를 갖고도 단순기능공이나 우체부가 되어버린 사람들처럼 계급탈락의 가장 분명한 희생자들이 특히 생생하게 느끼고 표현하는 노동에 대한 불만은 어떤 경우에는 한 세대 전체에서 나타날 수도 있다. 그리고 이 감정은 투쟁이나 요구 또는 도피의 형태로 표현되는데, 전통적 조합활동이나 정치투쟁을하는 전통적 조직들은 이를 제대로 이해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 왜냐하면 단순히 노동조건 이상의 것, 즉 이전부터 누려온 ‘사회적 지위’situation가 핵심적인 쟁점으로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입에 발린 말만 내놓지 하등 쓸모없는 종이쪽지로 사람을 기만하는 교육체계와, 사회체계에 의해 사회적 정체성과 함께 자아-이미지까지 훼손당한 이들 젊은이들은 전적으로 이런 편견을 거부하는 방법 말고는 자신의 인간적-사회적 정체성을 회복할 길이 없는 것이다.
이들은 핵심적인 문제는 학교제도가 믿게 하려는 대로 개인의 한계나 실패가 아니라, 학교제도 자체의 논리라고 느끼는 것 같다. 학력자격으로부터 이전 세대보다 적은 것밖에는 얻을 수 없도록 운명지어진 세대의 구성원 전체에 영향을 끼치는 구조적 탈숙련화(탈보증화;dequlification-인용자) 현상은 일종의 집단적 환멸을 불러일으키게 된다.(...) 이러한 일종의 반(反)-제도적 기질은 종국에는 암묵적으로 인정되고 있는 사회질서의 전제들에 대한 부인에로, 즉 사회질서가 제시하는 목표와 사회가 공언하는 가치에의 통념적 동의의 실제적 중단에로, 그리고 사회질서가 기능하기 위한 조건인 투자에 대한 거부로 이들을 이끌게 된다."
-부르디외 <구별짓기-상> 269~271쪽.
대학교까지 졸업한 똑똑한 청년들이 자식도 안 낳고, 일도 안 하고 집에서 빈둥거리기만 하는지 잘 설명하는 글인듯.
부르디외는 거짓된 형태로나마 해방된(자유로운) 힘을 맛보게 해주는 것으로 '학생신분'과 '신용구매'를 꼽고 있음. 즉, 학교에 있는 순간만큼은 내가 무엇이든 될 수 있다고 느끼게 됨. 학교에서 형식적으로나마 우리 모두는 자유롭고 평등하다고 가르치기 때문에. 또한 학생은 '젊음'을 가지고 있는데, 이 젊음은 아직 그 무엇도 확정되지 않았다는 사실 때문에 위태롭지만 그만큼 또 매혹적인 것이 됨. 우리에게는 모든 가능성이 열려있음(마치 물질화된 서비스나 상품보다, 그 모든 서비스와 상품을 구매할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닌 '자본'이 더 매력적인 것처럼) 그래서 영원히 이 상태에 머무르고자 함.
79년에 나온 프랑스 사회학 서적인데도 불구하고, 오늘날의 한국 젊은세대를 분석하는데 너무나도 유효한 통찰을 제공함. 특히 마지막의 "사회질서가 기능하기 위한 조건인 투자에 대한 거부로 이들을 이끌게 된다."는 문장에 꽂힘. 결혼도 안하고 자식도 안낳고 그저 오타쿠처럼 동물적 본능만 채우면서 세상을 살려는 젊은이들의 모습을 정확히 캐치한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