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이트진로홀딩스가 최대 1000억원을 목표로 내놓은 공모 회사채에 8000억원에 가까운 뭉칫돈이 몰리며 흥행을 거뒀다. 이에 힘입어 희망 밴드보다 대폭 저렴한 금리로 자금을 끌어모은 가운데, 더욱 눈길을 끄는 대목은 풍부한 수요에도 불구하고 최대 발행 한도를 채우지 않으며 800억원만 손에 쥐었다는 점이다.
핵심 계열사로서 앞서 공모채를 내놨던 하이트진로도 마찬가지 선택을 한 데 이어 지주사 역시 딱 필요한 만큼만 자금을 가져가는 여유를 보인 셈으로, 국내 소주 시장의 1위 업체로서의 자신감을 읽을 수 있는 또 다른 단면으로 주목을 받고 있다.
22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하이트진로홀딩스는 이번 달 총 800억원 규모로 회사채를 발행했다. 신용등급 A에 만기 3년물이었다. 대표 주관은 NH·SK·대신증권이 맡았고, 인수사로 삼성·메리츠·현대차·DB증권이 참여했다.
최초 희망 모집액은 500억원이었지만, 수요예측에서 이를 크게 웃도는 7810억원의 주문이 확인되면서 증액 발행됐다. 이에 따른 경쟁률은 15.62대1을 기록했다.
풍부했던 수요 덕에 금리는 수익률을 대폭 밑도는 언더발행이 됐다. 하이트진로홀딩스는 민간채권평가사가 평가한 개별 민평금리에 ±30베이시스포인트(bp·1bp=0.01%포인트)를 가산한 기준 수익률을 제시했는데, 최종 -50bp 조건으로 발행됐다.
금리보다 더 이목이 쏠린 건 발행액이었다. 원한다면 200억원을 더 조달할 수 있는 상황이었음에도 이를 택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이트진로홀딩스는 이번 공모채를 내놓으며 증액 발행 범위를 1000억원까지 열어둔 상태였다. 이에 대한 수요예측이 8배 가까이 확인된 만큼, 한도를 충분히 채울 수도 있었다.
사실 이런 분위기는 연초부터 어느 정도 감지됐다. 하이트진로의 회사채 역시 투자 열기를 실감하며 주문이 몰렸음에도, 굳이 최대치까지 발행액을 키우지 않아서다.
올해 3월 신용등급 A+를 받은 하이트진로가 5년 만기로 내놨던 공모채는 최초 모집 400억원에 4440억원의 수요예측 주문이 쏠리며, 경쟁률이 22.20대1에 달했다. 함께 진행된 3년물 역시 12.48대1의 높은 경쟁률을 나타냈다.
당시 하이트진로 공모채의 증액 발행 한도는 1500억원이었다. 하지만 최종적으로 5년물 380억원, 3년물 820억원 등 총 1200억원만 발행됐다. 300억원을 더 끌어올 수 있었지만, 무리하지 않겠다는 결정을 내린 것이다.
일반적으로 공모채 발행에 나서는 기업들은 시장의 수요만 받쳐준다면 최대한 증액 발행을 택한다. 투자하려는 물량이 풍부하다는 건 그만큼 금리 조건이 좋은 경우가 많다는 의미고, 그렇다면 기왕 자금을 확보할 때 여유롭게 챙겨 두자는 취지에서다.
이를 반대로 보면 결국 하이트진로홀딩스와 하이트진로는 그렇게까지 빚을 키워 가며 자금을 쌓아둘 필요까진 없다고 판단했다는 뜻이 된다. 회사채도 어디까지나 부채인 만큼, 괜한 이자 부담을 늘리기보단 필요한 정도의 돈만 쓰겠다는 얘기다.
이런 자신감의 배경에는 본업인 주류 시장에서의 굳건한 입지가 자리하고 있다. 하이트진로는 참이슬 브랜드를 보유한 국내 대표 주류 기업이다. 1924년 설립된 진로를 계승, 국내 소주 시장에서 40년 넘게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다.
금융투자 업계 관계자는 "하이트진로홀딩스와 하이트진로는 워낙 탄탄한 업계 지위 덕에 회사채 시장에서도 신용등급 이상의 메리트를 갖는 인기 기업으로 꼽혀 왔다"며 "공모채를 자주 내놓지 않는 그간의 경험과 맞물려 투자 수요가 더욱 확대됐다"고 말했다.
부광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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