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략적 동반자'에 틈새 보일라…'호남 주도권' 사활 건 민주
이재명 포함 지도부 영광·곡성 총출동
'상한 물' 이어 '호남 국힘' 표현에 혁신당과 갈등↑
지방선거 전초전이라는 분석도
[더팩트ㅣ국회=김세정 기자] 10·16 재보궐 선거를 앞두고 더불어민주당이 호남 주도권 잡기에 사활을 걸었다. '전략적 동반자' 조국혁신당과 '진보의 심장'을 두고 치열한 경쟁에 나섰다. 물러설 수 없는 탓에 서로를 향한 신경전도 고조되고 있다. '상한 물' 표현으로 공방이 격화된 데 이어 '호남 국힘(국민의힘)' 발언으로 사과·해임 요구까지 오가며 윤석열 정권 심판이라는 미명 하에 형성됐던 동맹 관계에 점차 균열이 생기는 모양새다. 벌써 2년 뒤 치러질 지방선거에서 이들의 경쟁이 한층 심화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26일 정치권에 따르면 민주당은 내달 16일 치러질 전남 영광·곡성군수 선거를 앞두고 혁신당과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장세일 민주당 후보와 장현 혁신당 후보가 영광군수 자리를 놓고 경쟁하고 있고, 곡성에선 조상래 민주당 후보와 박웅두 혁신당 후보가 경합 중이다. 일찌감치 조국 혁신당 대표가 곡성·영광 한 달살이에 나서자 민주당도 이재명 대표와 한준호 최고위원, 정청래·박지원 의원 등이 총출동해 지원 사격에 나섰다. 이 대표와 지도부는 23일 영광에서 현장 최고위원회의를 연 데 이어 다음날인 24일엔 곡성을 방문해 후보들에 힘을 실었다.
기초단체장인 군수 선거에 지도부가 총력을 기울이는 것이 이례적이라는 평가가 많지만, 총선 이후 민심 방향을 읽을 첫 풍향계라는 점에서 제1정당인 민주당으로선 쉽게 물러서긴 어렵다. 이번 선거 결과가 '이재명 체제 2기'의 리더십 평가로 곧바로 이어질 수 있어 양보할 수 없다. 지방선거와 대통령 선거를 위해서도 호남 주도권 잡기는 필수다. 비례정당의 한계를 넘어서야 하는 혁신당 입장에서도 호남에서 유의미한 성적을 거둬야 한다. '지민비조'(지역구는 민주당 비례는 혁신당)로 우애를 보였던 형제정당 사이에 호남대전이 펼쳐진 이유다.
두 당의 경쟁은 이제 감정싸움으로 번지는 모습이다. 김민석 민주당 수석최고위원은 재보선 지원에 나선 혁신당 일부 의원들이 지난 19일 본회의에 불참한 것을 거론하면서 SNS에 "국회 의결에 빠지는 소탐대실을 범했다. 무엇이 중한지를 가리는 감각을, 왜 비판받는지를 성찰하는 염치조차 잃었다면 이미 고인 물을 넘어 상하기 시작한 물"이라고 직격했다.
24일 KBS라디오 전격시사와의 인터뷰에서도 김 최고위원은 "일종의 네거티브는 다 혁신당에서 먼저 한 것이다. 국민적 의무인 국회 의무를 방기한 것, 더군다나 윤석열 정권을 탄핵하겠다고 했던 당이 특검 표결에 불참한 것은 굉장히 잘못된 것이기 때문에 잘못을 스스로 인정하고, 일반 국민도 비판하는데 성찰·사과하지 않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것 아니냐. 있는 그대로 말씀드린 것"이라고 혁신당을 겨냥했다.
이에 김선민 혁신당 수석최고위원은 논평을 내고 "이제 그만할 때도 됐다. 더 하신다면 배경과 의도를 의심받게 될 것"이라며 김민석 최고위원에게 자제를 촉구했다. 그는 "자신의 날카로운 칼날의 방향을 윤석열-김건희 공동정권 쪽으로 바꾸시길 바란다. 냉철한 분석과 현명한 결단을 바란다. 국회 제1당, 제1야당 수석최고위원의 품격을 보여주시길 기대한다"라고 받아쳤다.
설전의 강도는 점차 올라가 당직자 해임 요구까지 나왔다. 황현선 혁신당 사무총장이 "기득권과 토호정당이 아닌 나를 위한 선택, 지역을 위한 선택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호남의 '국힘'에 줄 잘 서면 '공천=당선'이라는 공식을 '후보와 공약=당선'이라는 공식으로 바꿀 수 있게 됐다"고 밝혔다. 민주당을 국민의힘에 빗댄 것인데 민주당에선 불쾌감을 드러냈다. 김성회 민주당 대변인은 "대단히 부적절한 언행"이라고 비판했고, 황명선 단장은 "무례하고 거친 표현을 했다. 호남을 모욕한 행위는 단순한 실수로 치부하기에는 매우 심각한 문제"라며 황현선 사무총장의 해임을 요구했다.
두 당의 감정의 골은 쉽게 해소되지 않을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전망했다. 이번 신경전이 지방선거 전초전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9회 지방선거는 차기 대통령 선거를 9개월여 앞두고 치러지는데 몇몇 광역단체장 자리를 두고 양측이 단일화 문제로 크게 부딪힐 수 있다는 것이다.
채진원 경희대 공공거버넌스연구소 교수는 통화에서 "호남의 경우 지난 총선도 그랬고, 전당대회에서도 민주당의 지지율이 덜 나온다. 그래서 혁신당도 호남을 민주당의 약한 고리로 보는 것"이라며 "당을 창당한 조국 대표의 입장에서도 선거에서 살아남아 생존하는 게 중요하다. 교섭단체가 아니어서 민주당에 흡수 통합 당할 수도 있다. 경쟁력 있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다면 위험하기 때문에 기반을 구축해 생존하기 위한 노력을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황태순 정치평론가도 "호남에서 혁신당에 자리를 내주면 이재명 체제 2기는 출범 두 달 만에 위험해 지기 때문에 경쟁이 격화될 수밖에 없다. 또 조국 대표도 자신들이 이길 수 있다고 보니까 월세살이를 하는게 아니겠나. 원내교섭단체가 안 되는 어정쩡한 상태에서 존재감을 확인하기 위해 민주당을 압박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지방선거까지는 1년 8개월이라는 시간이 남아있어 이번 재보선을 전초전으로 해석하긴 이르다고 황 평론가는 일축했다.
두 당의 신경전으로 부산 금정구청장 후보 단일화 협상도 난항을 겪는 중이다. 김경지 민주당 후보와 류제성 혁신당 후보는 25일 단일화를 위한 회동을 처음으로 열기로 했으나 무산됐다. 민주당 부산시당은 △김 후보 폄하에 대한 혁신당 지도부의 사과 △호남에서 있을 수 없는 발언으로 물의를 일으킨 황현선 사무총장 해임 등 필요한 조치 △후보자 간 개인적 만남에 대한 일방적 언론 공개(언론플레이)를 이유로 들며 회동 무산 사실을 알렸다. 반면 혁신당은 민주당이 일방적인 회동 결렬을 통지했다고 전했다.
민주당 내부에선 혁신당과의 마찰을 예의주시하면서도 앞으로의 관계 설정에 있어 당 차원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반응이 나온다. 한 중진 의원은 <더팩트>에 "호남은 지난 총선에서 아주 박빙의 상황에 있었다. 이번 재보선은 호남의 주도권을 누가 갖고 가느냐를 가늠하는 선거니까 경쟁이 격화되는 것 같다"면서도 "선거 이후 지방선거와 정권 교체라는 과제 앞에서 우리 당으로서도 어떤 모색이 있어야 되지 않을까 싶다"라고 말했다. 이어 "지금까지는 (민주당과 혁신당이) 연대와 협력의 기조로 각종 법안들을 추진해 왔는데 그런 관계를 더 구체화하는 노력이 (민주당 내부적으로) 있어야 하지 않을까"라고 짚었다.
sejungkim@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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