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디지털치료제]③ “한국 규제, 해외 진출에 도움… 독일 속도전도 주목해야”

이정아 기자 2024. 10. 21.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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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승인 속도, 시장 앞선 미국보다 빨라
임상시험 기준도 체계적, 전문적
해외 심사서 국내 임상 데이터 인정
기업에 유리한 독일의 사후규제 따를 만
일러스트=챗GPT

국산 2호 디지털치료제를 개발한 기업 웰트는 독일,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과 미국 등 글로벌 시장을 겨낭하고 있다. 웰트는 2016년 삼성전자에서 나온 디지털 헬스케어 스타트업이다. 지난해 4월 불면증 디지털치료제 ‘슬립큐’가 식품의약품안전처의 허가를 받은 이후 글로벌 진출 속도가 붙었다. 지난 2월 아시아 기업 최초로 독일 디지털헬스협회와 파트너십을 체결했고, 7월 독일 뮌휀에 현지 지사를 설립했다.

강성지 웰트 대표는 “국내에 이어 독일에서도 임상시험을 준비 중”이라며 “이를 통해 유럽 시장 현지화 전략을 추진해나갈 것”이라고 했다. 독일은 디지털치료제 관련 수가(보험이 정한 진료비)가 책정돼 있고, 독일에서만 60만건의 디지털치료제가 처방되고 있어 성장 기회가 큰 시장으로 본 것이다. 그는 “글로벌 확장을 가속화하는 데 국내 임상시험과 허가 관문을 빠르게 잘 통과한 덕이 크다”고 말했다.

한국이 세계 최고 수준의 상용화 속도를 기반으로 글로벌 디지털치료제 시장 진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국내 규제가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덕분에 허가 절차가 빨리 진행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기술이 대충 개발되지 않는다. 세계 최고 수준의 국내 임상시험을 거치기 때문이다. 한국 의료 수준이 세계에서 인정받고 있어 해외 허가 과정에서 임상시험 데이터를 인정받기도 한다. 전문가들은 “한국의 규제 장점을 살리면서 독일의 사후규제와 시장에 유리한 보험 제도까지 참조하면 경쟁력이 더 강화될 수 있다”고 평가했다.

서울 서초구 웰트 사무실에서 강성지 웰트 대표가 조선비즈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강 대표는 “글로벌 확장을 가속화하는 데 국내 임상시험과 허가 관문을 빠르게 잘 통과한 덕이 크다”고 말했다./조선비즈

◇美질의·허가 심사 170일 이상, 한국은 90일

지금까지 승인된 국산 디지털치료제는 4개다. 작년부터 에임메드의 ‘솜즈’와 웰트 ‘슬립큐’, 뉴냅스의 ‘비비드브레인’, 쉐어앤서비스의 ‘이지브리드’가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 허가를 받았다. 이들 중 솜즈와 슬립큐, 비비드브레인은 최근 병원서 처방되기 시작했다. 식약처에 따르면 17일 기준 디지털치료제 임상시험 계획을 승인받고 임상시험을 추진 중인 품목은 54개다.

식약처가 디지털치료제를 승인하는 과정은 신약과 비슷하다. 신약은 임상 1~3상 시험을 거쳐 유효성과 안전성을 입증하고, 이에 대한 심사 평가를 거쳐 시판 허가 여부를 결정한다. 디지털치료제는 탐색임상시험과 확증임상시험을 거친다.

확증임상시험은 허가에 필요한 안전성, 유효성 자료를 입증하는 시험이며, 탐색임상시험은 확증임상시험의 성공 확률을 높이기 위해 먼저 소규모로 단기간에 하는 것이다. 따라서 탐색임상에서 효과가 있다고 나와도 확증임상에서 이를 입증하지 못하면 승인 받지 못한다. 이렇게 승인받은 디지털치료제는 다른 의료기기나 건강관리 앱과는 달리 의사 처방을 받은 환자만 사용할 수 있다.

업계에 따르면 한국은 미국과 비교해 디지털치료제를 상용화하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짧다. 식약처 허가 과정에서 일반 질의는 약 10일 걸리고 품목허가 심사는 80일이 걸린다. 한국이 2022년 10월부터 디지털치료제에 대한 통합 심사평가를 기존 390일에서 80일로 대폭 축소한 덕분이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에서 심사를 받을 때는 일반 질의만 90일 이상 소요되고 품목허가 심사는 80일보다 더 훨씬 오래 걸린다.

국내 업계 관계자들은 식약처의 디지털치료제 허가 속도가 빠른 것은 임상시험 심사 기준이 다른 나라보다 까다롭지 않고, 과학적·체계적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강성지 웰트 대표는 “국내 디지털치료제 규제가 미국보다도 합리적”이라며 “국내 임상시험이 어렵다고 하는 기업도 일부 있겠지만 인체에 쓰이기 때문에 당연히 해야 하고, 의약품 임상시험 규제처럼 까다롭지도 않다”고 말했다.

한국에프디시규제과학학회에서 발표된 보고에 따르면 2021년 조사 기준 미국의 신약 개발 시작부터 상업화까지 소요 기간은 11.9년, 한국은 10.3년이다. 그중 허가는 1년 정도 걸린다. 지난해 한국글로벌의약산업협회 조사에 따르면 2011년~2017년 글로벌제약사의 신약 허가·심사에 소요되는 기간은 평균 313.7일이었다.

그래픽=정서희

◇韓임상시험 인정받아 해외 진출에 도움

그렇다고 국내 디지털치료제 허가 과정이 허술한 건 아니다. 오히려 국내 임상시험 기준은 체계적이고 전문적이어서 해외 국가의 심사를 거칠 때 임상시험을 다시 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알려졌다.

석정호 마인즈에이아이 대표(연세대 강남세브란스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식약처의 인허가 심사 과정은 신약 개발 심사와 마찬가지로 과학적이고 전문적인 편”이라며 “식약처의 기준에 맞게 임상시험을 진행한 결과로는 충분히 해외 진출 시에도 심사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마인즈에이아이는 침에 있는 스트레스 호르몬 코르티솔을 기반으로 우울증을 진단해 고위험군을 분류하는 키트 ‘마인즈 내비’를 개발해 현재 확증임상시험을 하고 있다. 조만간 1차 결과가 나올 전망이다. 석 대표는 “국내 심사 과정 기간이 다른 나라에 비해 줄었다 뿐이지 탐색임상, 확증임상 하는 기준과 과정은 세계적으로 다 비슷하다”고 말했다.

하이(Haii)의 김호영 이사는 “주변 다른 국내 업체들 얘기를 들어봐도 식약처가 다른 나라에 비해 특별히 까다롭거나 힘든 기준은 아니다”고 말했다. 하이는 범불안장애 인공지능(AI) 디지털치료제인 ‘엥자이렉스’을 개발해 확증임상을 마치고 식약처에 인허가를 신청했다. 김 이사는 “다만 탐색임상과 달리 확증임상에서 기대에 못 미치는 결과가 많이 나와 인허가 받기가 어려운 것”이라고 했다.

익명을 요구한 디지털치료제 개발 연구원은 “디지털치료제의 목표 질병과 대상 환자군에 따라 임상시험 설계와 추진이 쉬울 수도, 어려울 수도 있다”며 “임상시험 결과가 잘 나오지 않아 허가를 못 받는다고 규제 탓을 하면 시험 공부를 미리 안 하고 어렵다고 하는 얘기와 같다”고 했다.

그래픽=손민균

◇獨사후규제로 기회 확대, 한국도 참고 필요

세계 각국이 디지털치료제 산업을 육성하고자 혁신의료기기 조건부 승인, 신속 심사 등의 정책과 제도 환경을 마련하고 있다. 시작은 미국이 가장 빨랐다. 미국은 2016년부터 혁신의료기기 프로그램을 시행해 신속 심사와 상담 등의 혜택을 제공했다. 그 결과 디지털치료제 제품이 미국 시장에 빠르게 진입할 수 있었다.

하지만 미국은 초기에 없거나 느슨했던 규제 관련 정책과 제도가 생기면서 규제 환경이 더 힘들어진 측면이 있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이 규제 혁신 취지 하에 2017년 소프트웨어 사전 인증 프로그램을 시범사업을 운영했으나, 제품에 대한 평가를 간소화하는 게 가능한지 의문이 제기돼 2022년 9월 종료했다. 혁신의료기기에 대해 최대 4년간 건강보험 급여를 보장하는 제도는 2021년 미국 연방 건강보험인 메디케어 가입자들의 안전 문제를 이유로 폐지됐다.

디지털 헬스케어 업게는 독일의 디지털치료제 제도 환경이 가장 친기업적이라는 점에서 한국이 롤모델로 삼을 필요가 있다고 평가한다. 독일은 처방 확대에 용이한 보험 환경이 마련돼 기업의 수익에 도움이 되고, 임상시험에서 우선 사용하면서 나중에 실사용 데이터를 기반으로 평가하는 방식의 규제 환경이기 때문이다. 미국과 일본, 한국이 사전 규제라면 독일은 사후규제인 셈이다.

특히 독일은 디지털치료제를 3개월 내 임시 승인할 수 있는 패스트트랙 제도를 운영 중이며, 디지털치료제의 인허가와 보험 등재 일원화 지원 체계를 마련한 유일한 국가이기도 하다. 류규하 삼성서울병원 삼성융합의과학원 교수팀이 지난해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독일은 2019년 11월 디지털 헬스케어법을 제정하고 2020년 4월에 디지털건강앱 조례를 발표했다.

독일은 의사 또는 임상심리사의 처방을 전제로, 전 세계 유일한 디지털치료제 등재 앱인 DiGA를 도입했다. DiGA 승인 기준을 충분히 충족한 제품은 ‘영구 등재’, 긍정적인 치료 효과를 입증하지 못한 제품은 ‘임시 등재’로 구분해 급여를 결정한다.

류규하 교수팀은 “독일의 사례를 참고해 한국이 건강보험 특성에 적합한 보험 등재 방안을 설계하고 제도를 개선 운영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며 “그렇게 하면 전 세계 디지털 치료제 시장에서 참고할 수 있는 급여 표준화 모델 사례가 돼 한국이 디지털 치료제 산업의 선도 국가로 도약할 것”이라고 말했다.

[편집자 주] 세계 시장에서 한국 기업이 1등을 하는 산업 분야는 없다. 반도체 분야는 선두 그룹 경쟁에서 밀려 위기감이 커졌고, 제2의 반도체라 불리는 제약·바이오 분야는 아직은 갈 길이 멀다. 정보과학(ICT) 기술과 의학을 접목한 디지털치료제 사업은 국내 기업이 글로벌 선두권에 설 수 있는 분야로 꼽힌다. 디지털치료제 시장과 산업이 태동 단계에 있고, 아직 세계적으로 큰 성공을 거둔 기업도 없기 때문이다. 디지털치료제 분야에서 한국 기업들의 성장 기회와 산업 육성을 위한 조건을 짚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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