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펜트하우스'에 가려진 3%의 비극… 지금 다시 봐도 완벽한 걸작, MBC '카이로스'

2020년 하반기 안방극장은 그야말로 '마라맛' 열풍이었다. 같은 해 10월 26일 나란히 첫 방송을 시작한 SBS 월화드라마 '펜트하우스'와 MBC 월화드라마 '카이로스'는 방영 내내 극명하게 엇갈린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자극적인 전개와 파격적인 서사로 무장한 '펜트하우스'가 30%에 육박하는 시청률을 기록하며 화제성을 독식하는 사이, '카이로스'는 방영 내내 2~3%대 시청률에 머물렀다.
그러나 방영 당시의 수치만으로 이 작품을 규정하기엔 이르다. '카이로스'는 복잡한 타임슬립 장르물의 고질적 한계로 꼽히는 개연성 붕괴와 '용두사미' 결말을 완벽히 극복해 낸, 한국형 타임 크로싱 스릴러의 정점이기 때문이다.
그리스어로 '기회의 신' 혹은 '특별한 시간'을 뜻하는 제목처럼, '카이로스'의 핵심 규칙은 단순하면서도 가혹하다.
유괴된 딸을 되찾아야 하는 미래의 남자 김서진(신성록 분)과 실종된 엄마를 구해야 하는 과거의 여자 한애리(이세영 분)는 매일 밤 10시 33분, 단 '1분' 동안만 전화 통화로 연결된다. 시차는 정확히 한 달이다.
시간 여행을 다룬 다수의 작품이 과거의 변화로 인해 미래가 뒤바뀌는 과정에서 논리적 모순을 남기곤 한다. 반면 이수현 작가와 박승우 연출은 과거의 행동이 실시간으로 미래의 현실을 덮어쓰는 나비효과를 시각적으로 명료하게 구현했다.
과거의 작은 선택 하나로 미래의 공간과 인물의 기억, 심지어 생사 여부까지 도미노처럼 재편되는 구조를 빈틈없는 타임라인으로 엮어냈다.
시청자가 집중하지 않으면 서사의 인과관계를 놓칠 만큼 치밀했지만, 집중하는 순간 극강의 카타르시스를 안겼다.

'카이로스'의 시청률 부진은 작품 자체의 완성도보다는 대진운과 시청 패턴의 변화 영향이 컸다. 방영 시간대가 겹쳤던 경쟁작 '펜트하우스'는 도파민을 자극하는 빠른 템포의 막장극으로 폭넓은 대중을 흡수했다. 반면 '카이로스'는 매회 복선을 추리하고 시간의 궤적을 쫓아야 하는 고밀도 두뇌 게임에 가까웠다.
중간 유입이 어렵다는 장르적 특성상 본방송 시청률은 3%대에 갇혔으나, 당시 드라마 커뮤니티와 평단에서는 "각본, 연출, 연기의 삼위일체", "버릴 장면이 단 1초도 없는 웰메이드"라는 극찬이 쏟아졌다. 시청률 지표에 흔들려 무리한 자극제를 투입하지 않고, 기획된 서사의 줄기를 끝까지 뚝심 있게 밀고 나간 제작진의 태도가 만들어낸 결과였다.

'카이로스'가 종영 후에도 수작으로 끊임없이 회자되는 가장 큰 이유는 결말에 있다. 무수한 복선과 시간선의 변수를 펼쳐놓고도 마지막 16회에 이르러 모든 '떡밥'을 완벽하게 회수했다.
절망적인 상황을 바꾸기 위해 필사적으로 발버둥 쳤던 인물들은 마침내 과거의 비극을 바로잡고, 왜곡된 운명 대신 평범한 일상을 되찾는다. 악역들의 인과응보와 희생자들의 구원은 타임 크로싱이라는 장르적 쾌감을 넘어,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현재의 시간과 선택이 얼마나 소중한가'라는 묵직한 인문학적 메시지로 수렴됐다.

신성록의 절박한 부성애와 이세영의 처절한 생활 연기, 그리고 안보현(서도균 역)과 남규리(강현채 역)의 입체적인 악역 열연까지 빈틈없는 연기 앙상블은 극의 긴장감을 끝까지 지탱했다.
화제성이 곧 작품의 가치를 대변하는 시대라지만, '카이로스'는 숫자가 전부가 아님을 증명한 대표적 사례다. 치밀한 퍼즐 맞추기식 스릴러를 선호하는 시청자라면, OTT 플랫폼을 통해 정주행할 가치가 충분한 '숨겨진 명작'이다.
damovie2019@gmail.com(오타 신고/제보 및 보도자료)
저작권자 ⓒ 필더무비.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