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승기] 승차감이 돋보이는 올해 최고의 기대작 기아 EV9

기아 EV9 주행 사진=기아


인상적인 승차감. 폭발적으로 치고 나가는 퍼포먼스에 신경이 집중됐었지만, EV9의 승차감을 경험해보니 그동안 전기차를 허투루 탔다는 걸 깨달았다. 기아는 맥멀티와 바디 강성 셀프 밸런싱이라는 기술을 적용해 EV9의 승차감을 잡았다고 한다. 전자식 서스펜션 혹은 에어서스펜션을 쓰지 않은 이유는 기술적인 문제뿐만 아니라 비용적인 측면에서도 고민을 많이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걸 모르고 타더라도 승차감은 기대 이상이다. 과속 방지턱 정도에서는 딱딱한 하체가 느껴지지만, 일반 도로에서는 거친 노면을 잘 거른다. 소음 차단의 여러 가지 노력과 21인치 대구경 흡음 타이어를 신은 것도 승차감에 한몫을 했다. 비싼 차에만 들어간다는 에어 서스펜션이 부럽지 않다. 그렇다고 싼 찻값은 아니지만, 비용 절감은 분명 여러 가지 다른 첨단 기기들로 돌아갔다고 믿는다.

뭐니 뭐니해도 승차감은 최우선으로 돼야 하는 자동차의 기본 요소다. 땅바닥 주저앉듯 타는 포르쉐를 일상에서 얼마나 즐길 수 있을까? 마운팅 바이크를 트럭배드에 싣고 오프로드를 즐기는 픽업트럭은 또 공도에서 얼마나 실용적일까? 역시 자동차는 사람이 먼저다. 멋과 스릴과 재미는 여유가 있을 때 마련하는 세컨카로도 충분하다. GT-라인이 따로 구성돼 있지만, 퍼포먼스는 일단 뒷전이다. 널찍한 공간에 캡틴 시트, 거기에 아이들을 앉히면 멀미에 여정을 재촉하는 일은 덜 할 거 같다. 특히, EV9은 180도 회전하는 2열 캡틴 시트로 세간의 이목을 끌었다. 2열과 2열 혹은 2열과 3열 탑승자가 마주볼 수 있다. 여차하면 교차도 가능하다. 주행 중 좌석을 돌리는 일은 없어야겠지만, 캠핑 등 차 안에서 부부간 조용한 화해 모드가 필요하다면 꽤 유용한 기능일 수도 있다.

운전자의 입장에서도 꽤 괜찮다. SUV 중에서도 전기 SUV는 배터리 덕분에 무게 중심이 잘 잡혀 있다. 고속도로로 빠지는 램프 구간, 와인딩에서도 크게 동요하지 않는다. 게다가 EV9은 제법 빠른 일정 속도에 도달하면 시트에서 허리지지대가 자동으로 올라온다. 아내의 부드러운 손길이라기보다 바이크 뒤에 올라탄 낯선 사내의 조임 정도다. 달갑지 않을 수 있지만, 고속에서 확실히 안정감을 더한다. 시트의 마사지 기능은 서비스다. 가속 페달을 밟으면 EV6 때와 비슷한 부드러운 느낌으로 가속도가 붙는다. 전기차 고유의 강력한 토크감도 물론 제공된다. 스포츠 모드로 바꾸면 2.5톤의 6인승 대형 SUV라는 사실을 잊을 정도로 민첩하게 움직인다. 투 박스 스타일 디자인은 전혀 스포티하지 않지만, 아이들의 아우성에서 해방된 아빠에게도 운전의 재미를 느낄 수 있도록 한 기아의 세심한 배려라고 믿는다. 제동력도 밸런스를 잘 맞추고 있으니 굳이 마력이니 제원 따위는 알아둘 필요가 없을 거 같다.

기아 EV9 인테리어 사진=기아


사용자 편의성은 이제 꽤 신뢰도가 쌓였다. 어떤 악천후에서도 깜빡이를 켜면 클러스터 양 옆에서 후방 상황을 선명하게 보여주고 여러 가지 다양하고 유용한 정보를 깔끔하게 보여주는 가로형 메인 디스플레이는 적당한 크기에 전방 시야를 가리지도 않는다. 인터페이스 및 시스템은 충분히 대중적이다. 계기판 디스플레이와 일체형으로 만든 건 이제 대세에 들어섰으니 스스로 만족해야 하는 부분이다. 여기서 운전자 보조 기능인 HDA, HDP 등 EV9이 가진 최첨단 기술들을 살펴볼 수 있다.

실내 소재 역시 깔끔하고 고급스럽다. 특히, 페시아를 가로지르는 우드 트림은 즐겨찾기 버튼으로 실용성까지 겸비했다. 프리미엄 브랜드 차를 가져와도 굴할 필요는 없다. 동급에서는 1억 넘는 프리미엄 차들이 즐비하니 7330만원부터 시작하는 EV9은 오히려 가성비가 넘치는 셈이다. 가성비로 따지면 전기차에서 가장 중요하게 보는 주행거리도 살펴봐야 한다. EV9은 99.8kWh 대용량 배터리를 탑재하고 350kW급 급속충전기로 24분만에 80%까지 충전할 수 있다. 완충 시에는 대략 500km를 달릴 수 있다. 행사에서 달린 약 200km 구간에 남은 주행거리도 200km보다는 조금 짧게 남아 있었다. 아마 배터리의 80%를 채워 달린 듯싶다.

경기도 하남에서 충북 부여 롯데리조트까지 가는 시승코스, EV9은 모든 게 만족스러웠다. 다만, 꼭 한 가지 아쉬운 점은 경제적 여유. 고백하지만, 기자는 준중산층 다자녀 가장이다. 본인이 가장 선호하지 않는, ‘쏘울’이 연상되는 박스 타입 디자인을 거들먹이며 사지 않을 이유를 합리화시켜볼 뿐이다. SDV(Software Defined vehicle)를 핑계로 몇 가지 기능들을 구독 서비스로 돌린 것도 조금 못마땅하긴 하다. 이런 거 다 빼고, 단지 희망하는 바는 라인업을 넓혀 조금 더 저렴한 EV9가 나왔으면 하는 것. 대신 승차감은 포기 못 한다. 욕심이 과한가? 카니발 대안은 아직도 찾지 못했다.

육동윤 글로벌모터즈 기자 ydy332@g-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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