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비건인과 함께 한 하루 [당신도 어쩌면 비건일지도②]

봄눈별은 김해에 사는 치유음악가다. 자신이 필요한 곳이면 전국 어디든 가서 연주한다. 일반적인 음악이 아니지만, 부르는 곳이 많아 늘 바쁘다. 그는 2008년부터 고기를 먹지 않는다. 2011년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로는 해산물도 먹지 않으면서 완벽한 비건인이 됐다. 서울에서 살던 그가 마음이 편안해진다는 이유로 김해로 이사 온 게 2018년이다. 현재 그의 집에는 냉장고와 세탁기가 없다. 화석 연료를 써야 하는 기름보일러도 없고, 전기를 쓰는 온열기구도 두지 않는다. 이동 수단으로 가끔 오토바이를 타며, 비가 오지 않으면 자전거를 이용한다. 그에게 비건이란 '조금 덜 쓰고, 덜 소비하는 삶' 그 자체다.

김해에 사는 비건인 봄눈별(치유음악가)가 구제 가게에서 산 겨울 방한용 장화를 들고 있다. /주성희 기자

조금은 가볍게 살아가기 = 봄눈별은 약속 시간과 장소를 정하면서 텀블러와 손수건, 반찬통을 가져오면 좋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차를 두고 대중교통을 이용하라고 제안했다. 솔직히 더운 여름 노트북과 충전기, 카메라 등을 넣은 무거운 가방을 메고 마산에서 김해까지 대중교통으로 갈 자신이 없었다. 하지만 "가볍게 가볼게요"라고 답했고 봄눈별 또한 웃으며 "가볍게 오세요"라고 했다. 노트북과 카메라를 두고 대신 수첩과 휴대전화 카메라를 챙긴 후 버스를 탔다.

자동차로 취재를 가는 길은 편리하긴 하지만, 늘 시간 맞추느라 부랴부랴 서둘렀다. 앞을 가로막는 차량에 경적을 울리고, 신호에 걸리면 불안한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두껍고 튼튼한 운동화를 신고 한층 가벼워진 가방을 메고 나서니 불안보다는 기대가 앞섰다. 일이지만 여행인 것 같았다.

지난 16일 김해 봉황동에서 만난 봄눈별은 고맙게도 그가 먹고 입는 것과 사는 곳을 가감 없이 보여주었다. 그는 점심으로 샐러드 가게에 갈 것을 제안했다. 차림표에서 '비건(vegan)'이란 글자를 봤기 때문이다. 대체 고기를 넣은 포케를 골라서 주문을 했다. 포케는 하와이식 샐러드인데 탄수화물이 있어 속이 든든하다. 완전 비건식을 기대했는데 그릇 안에 게맛살이 들어있었다. 봄눈별이 주방에 가 물으니 게맛살을 요청하는 손님이 많아서 넣었다는 답이 돌아왔다. 봄눈별은 고개를 갸웃하면서 "비건 개념을 잘못 알고 있는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봄눈별은 게맛살을 덜어 나에게 줬다. 그리고 대체 고기 2조각 정도를 남겨 가져간 반찬통에 옮겨 담았다.

봄눈별과 함께 한 비건 점심. /주성희 기자
봄눈별이 비건 식당에서 먹고 남은 대체 고기를 가져 온 반찬통에 담았다. /주성희 기자

동물성 상품을 소비하지 않는 일도 비건이다. 하지만, 그것이 자신의 일상과 편의를 포기한다는 것은 아니다. 봄눈별 또한 집 근처에 있는 대형마트에서 장을 볼 때도 있다. 그는 이번 인터뷰를 위해 일부러 대형마트에 함께 가주었다. 여러 상품을 둘러보지만 결국 사는 것은 솥밥에 넣을 콩나물 정도라고 한다. 그리고 유통기한이 임박한 것들을 주로 구매한다. 냉장고가 없기에 유통기한이 길 필요가 없기도 하고, 가격이 싸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지구를 위한다는 생각에서다. 유통기한 지나 그냥 버려지는 것보다 사서 먹는 게 더 의미가 있다.

그는 대형마트에서 비건 식품 사는 방법을 알려줬다. 한때 '식물성', '비건' 등을 강조한 상품이 많을 때도 있었다. 이런 상품들은 주로 유통기한이 임박해 싸게 판매하는 가판대 위에 있었다. 팔리지 않는다는 뜻이다. 수요가 적으니 '식물성'을 은연중에 강조하는 것 같다고 했다. 알레르기 성분 표시 칸에 대두(콩), 밀이 적혀 있으면 비건 식품이다. 혹시나 우유, 쇠고기, 닭고기 등이 적혀 있는지 일일이 확인하며 사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긴 하다. 그는 소비하는 욕구를 줄인다면 많은 고민거리가 해결될 거라고도 말했다. 이날 봄눈별의 추천으로 참치 대체식품인 식물성 참치를 할인 매대에서 구매해 봤다.

김해 한 대형마트에서 식물성 참치가 팔리지 않았는지 40% 할인해 판매되고 있었다. /주성희 기자
봄눈별은 대형마트에 있는 비건 식료품 중에서도 유통기한이 임박한 것 위주로 샀다. /주성희 기자

상처 있는 물건 멀쩡하게 쓰기 = 대형마트에서 먹거리를 구매하고, 구제 거리에 가기로 했다. 가기 전에 숨을 돌릴 겸, 그의 집에 가보고 싶다고 했더니 흔쾌히 허락했다. 이날 비가 와 선풍기를 켜고 천장을 향하게 했다. 습도를 낮추려는 목적이었다. 그는 텀블러에 담아 온 물로 목을 축였다.

그가 낮은 탁자 아래에 보관해 둔 칼림바(아프리카 전통 악기)들을 보여줬다. 모두 상처가 있다. 원래 가격보다 싼 칼림바를 산 다음 직접 조율해 쓴다. 길거리에서 주운 철사, 클립 등을 이용해 소리를 한 꺼풀 덧입힌다. 이러면 자신만의 악기가 되기도 하고 벼룩시장에 내다 팔수도 있다.

상처있는 칼림바(아프리카 전통악기)를 직접 수리하는 봄눈별. /주성희 기자

그의 집을 나와 여름옷을 사러 갔다. 제일교회사거리에서 봉황공원 방향으로 걸어가는 분성로에 구제 가게가 열 군데 정도 모여있다. 올여름을 보낼 옷을 5000원에 샀다. 가죽신발 전문 메이커인 닥터마틴 워커가 놓여있길래 고민하니 봄눈별이 "양쪽 다 신어보고 사야 한다"고 조언했다. 마치 발에 맞춘 듯 딱 맞았다. 1만 원을 주고 샀다. 새 상품이었다면 15만 원은 줬어야 했을 것이고 가죽을 길들이느라 발에 상처를 몇 번 내야했을 것이다.

봄눈별은 악기를 담을 여행용 가방을 고르는가 싶더니 자물쇠가 시원치 않아 그만뒀다. 신발 가게에서 겨울 방한용 장화 한 켤레를 집어 들더니 이리저리 살펴보고 신어보기도 했다. 겨울에 부엌에서 글을 쓰거나 작업할 때면 발이 그렇게 시리다고 한다. 방한용 장화로 올겨울을 나면 되겠다고 했다. 필요한 물품을 꼼꼼히 골라서, 싼 가격에 사니 구제의 매력도가 급격히 상승했다.

저녁으로 인도 카레 식당에서 채소 볶음밥과 알루고비를 먹으면서 봄눈별과의 하루를 마무리했다. /주성희 기자

이기적이지 않은 삶 = 저녁은 인도 카레 식당에서 해결했다. 인도식 채소 볶음밥과 알루고비를 주문했다. 알루고비는 토마토 양념에 꽃양배추와 감자를 넣어 만든 국물 없는 카레다. 저녁을 먹으며 다른 사람이 고기를 먹는 모습을 보면 불편하지 않았느냐고 물으니 "나도 논비건인 때가 있었으니 이제는 불편하다고 생각하지 않으려 한다"고 말했다.

그렇지만 비건을 실천하며 '불편을 자초하는' 그에게 "그렇게 살 거면 아예 산 속에서 살아라" 같은 말로 비아냥대는 이들이 많다고 한다. 그는 도시 속 일상에서도 충분히 절충하고 타협하면서 살 수 있다고 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서로 도움을 청하고 도움을 줄 수 있는 삶'을 살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봄눈별은 자신처럼 사는 게 답은 아닐지 모르나 자신만의 지혜로운 삶을 살아야 한다고 말했다. 봄눈별은 "가난이 부끄럽지 않다. 지난 15년간 사람, 물건, 삶의 소중함을 알았기에 오히려 부자처럼 살아왔다"고 말했다.

봄눈별과의 하루는 아마 긴 시간동안 잊히지 않을 경험이 될 것 같다. 어쩌면 바로 내일, 급한 마음에 자가용을 타고 목적지에 갈 수도 있다. 그렇지만 봄눈별과 약속했던 것처럼 매일 먹던 육고기를 1주에 3회에서 1회로, 더 나아가 1개월에 1회로 줄여나가 볼 것이다. 봄눈별은 지구의 온도가 높아져서 위기가 오는 순간이 4~5년 정도 남은 것 같다는 무서운 현실을 이야기하면서도, 육고기 먹기를 조금씩 줄여나가는 활동이라도 필요하다고 했다. 그래야 최소한 지구와 환경에 비겁해지지는 않을 것 같다는 이유에서다.

아름다운가게 책장에서 봄눈별이 책을 고르고 있다. /주성희 기자

봄눈별은 아름다운가게 책장에서 고른 책, 장 지오노가 지은 〈나무를 심은 사람〉을 선물했다. 책을 펼치자마자 봄눈별과 함께 한 하루를 상징하는 듯한 문장이 있다.

"한 사람의 행동이 온갖 이기주의에서 벗어나 있고, 그 행동을 이끌어 나가는 생각이 더없이 고결하며, 어떠한 보상도 바라지 않고, 그런데도 이 세상에 뚜렷한 흔적을 남겼다면 우리는 틀림없이 잊을 수 없는 한 인격을 만났다고 할 수 있다."

봄눈별은 오늘도 길거리에 버려진 쓰레기를 줍고, 일부러 유통기한이 짧은 식료품을 살 것이다. 코발트블루로 입혀진 그의 부엌 겸 서재 창으로 아직은 맑아 보이는 빗방울이 맺혀 있었다.

/주성희 기자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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