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2년 기아자동차가 독일 프리미엄 브랜드에 맞서기 위해 내놓은 K9은 당초 ‘기아의 기술력 상징’으로 불리며 큰 기대를 모았다.
그러나 10여 년이 흐른 2025년 현재, K9은 단종 가능성까지 거론되며 판매 부진에 시달리고 있다.

부진의 가장 큰 원인은 K8의 등장이다. 고급스러운 사양과 합리적 가격을 앞세운 K8이 월평균 2,500대 이상 판매되는 동안, K9은 100대 수준에 머물며 소비자 선택에서 밀려났다.
여기에 독자 브랜드 구축 실패도 뼈아팠다.
현대차가 제네시스를 통해 고급 브랜드를 성공적으로 안착시킨 반면, K9은 기아라는 대중 브랜드에 묶여 플래그십 고유의 이미지를 확립하지 못했다.
또한, ‘K9’이라는 차명이 영어권에서 ‘개(Canine)’를 연상시킨다는 점도 이미지 제고에 불리하게 작용했다.
중고차 시장에서 ‘가성비 제왕’으로 부활

흥미로운 점은 신차 시장에서의 부진이 중고차 시장에서는 오히려 호재로 작용했다는 것이다.
낮은 브랜드 가치가 높은 감가율로 이어졌고, 이는 소비자들에게 ‘가성비 끝판왕’이라는 새로운 매력을 제공했다.
2025년 7월 기준, 2018년식 K9(주행거리 약 10만 km)의 매물이 2,400만 원대에 거래된다.
이는 국산 중형 세단 신차 가격보다도 저렴한 수준으로, 소비자는 후륜구동 기반 대형 세단의 안락함과 정숙성, 다양한 편의 사양을 합리적인 비용으로 누릴 수 있다.
특히 법인 임원용으로 사용돼 관리 상태가 양호한 차량이 많아, 중고차로서의 가치가 더욱 높다는 평가가 나온다.
기아 엠블럼, 단점이자 최고의 장점

K9의 약점으로 꼽히는 부분은 여전히 ‘기아 엠블럼’이다. 제네시스 G90이나 독일 프리미엄 브랜드처럼 ‘하차감’을 주지는 못한다.
그러나 이 때문에 발생한 높은 감가율이 역설적으로 K9의 최대 장점으로 작용한다.
신차 기준 5,800만 원대에서 시작하는 모델이 중고 시장에서는 절반 이하로 내려가며, 구매자들은 대형 세단의 본질적 가치를 저렴한 가격에 누릴 수 있게 됐다.
정숙성, 주행 안정성, 풍부한 편의사양은 여전히 K9의 강점으로 꼽힌다.
단종 위기 속 빛나는 가성비 아이콘

기아가 K9의 명확한 후속 전략을 내놓지 않는다면, K9은 과거 아슬란처럼 조용히 역사 속으로 사라질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그 전까지 K9은 중고차 시장에서 ‘가성비의 제왕’으로 불리며 존재감을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최소의 비용으로 최대의 만족을 누릴 수 있는 대형 세단이라는 점에서 K9의 매력은 여전히 유효하다.
한때 기아의 플래그십으로 출발했으나 지금은 합리적 소비의 상징이 된 K9, 그 역설적인 부활이 당분간 계속될 전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