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으로 완패한 뒤 흥국생명의 요시하라 토모코 감독이 던진 한마디는 비수처럼 날카롭고도 노골적이었다. “여러분이 보시는 대로다. 그게 레베카의 실력이다.” 평소 감정을 절제하던 사령탑이 공개석상에서 주포를 향해 ‘실력의 한계’를 언급했다는 것은, 현재 흥국생명이 마주한 내부 균열이 임계점에 도달했음을 의미한다.

삼산월드체육관을 가득 메운 홈팬들 앞에서 흥국생명이 보여준 무기력함은 3위라는 성적표를 무색하게 만들었다. 한 세트도 20점을 넘기지 못한 채 1시간 26분 만에 상황이 종료된 이 경기는, 단순히 1패 이상의 파장을 몰고 왔다. 선두 추격의 동력은 상실됐고, 이제는 4위 GS칼텍스의 거센 도전에 ‘준플레이오프’ 성사 여부를 걱정해야 하는 처지로 내몰렸다.
“그게 레베카다” 요시하라의 독설, 칭찬보다 무서운 ‘포기’의 언어
외국인 공격수 레베카가 단 6득점에 그친 것은 변명의 여지가 없는 참사다. 상대 주포 실바가 24점을 폭격하며 코트를 지배할 때, 레베카는 공격 활로를 전혀 뚫지 못하며 침묵했다. 요시하라 감독의 발언은 단순한 분발 촉구가 아니라, 전술적 해결책을 찾지 못한 사령탑의 깊은 좌절감이 투영된 ‘공개 경고장’이다.

일본 특유의 절제된 화법을 구사하던 감독이 “그게 레베카의 실력”이라고 단언한 대목에서 우리는 흥국생명의 잔여 시즌 운영이 순탄치 않을 것임을 직감한다. 리시브 불안과 세터진의 혼란, 그리고 외국인 선수의 결정력 부재까지. 톱니바퀴가 완전히 어긋난 상황에서 사령탑마저 선수의 실력을 공개적으로 깎아내린 것은 팀 분위기를 더욱 얼어붙게 할 악재가 될 수 있다.
‘요시하라 매직’의 실종, 흥국여고로 추락한 명가의 자존심
시즌 중반까지만 해도 조직력의 승리를 외치던 ‘요시하라 매직’은 이제 온데간데없다. 아포짓 레베카와 미들블로커 피치, 두 외국인 선수가 합작한 점수가 고작 7점이라는 사실은 ‘외인 농사’의 실패를 자인하는 꼴이다. 토종 에이스 최은지가 11점을 올리며 홀로 분전했지만, 거대한 실바의 벽을 넘기엔 역부족이었다.

더 큰 문제는 감독이 해결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분석이 안 돼서 말씀을 못 드려 죄송하다”는 요시하라 감독의 답변은 팬들에게 신뢰보다 불안감을 안겼다. 수정하고 대응해야 한다는 원론적인 답변만으로는 당장 3월 1일 페퍼저축은행전부터 이어질 현대건설, 도로공사와의 ‘죽음의 일정’을 버텨내기 어렵다.
기로에 선 흥국생명, 봄배구는 ‘희망의 고문’이 될 것인가
이제 정규리그는 단 4경기 남았다. 승점 3점을 챙겼어야 할 경기에서 0점을 기록하며 흥국생명은 최악의 딜레마에 빠졌다. 1, 2위를 추격하기엔 체력이 바닥났고, 4위와의 격차는 승점 5점 차로 좁혀졌다. 만약 남은 경기에서 미끄러진다면, 단판 승부인 준플레이오프라는 가혹한 운명을 맞이해야 한다.

지금 흥국생명에 필요한 것은 전술적 수정보다 무너진 신뢰의 회복이다. 감독이 선수의 실력을 부정하고, 선수는 코트 위에서 길을 잃은 모습은 결코 봄배구의 주인공이 될 수 없는 장면들이다. 요시하라 감독의 독설이 선수들의 독기를 깨우는 자극제가 될지, 아니면 팀의 몰락을 앞당기는 촉매제가 될지는 남은 4경기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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