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진실화해위, 베일 가려진 ‘칠성원’ 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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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숙·재생원 사건 진상규명이 끝나면 부산의 또 다른 부랑인 수용 시설 '칠성원'을 대상으로 한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조사가 곧바로 이어진다.
진실화해위는 영화숙·재생원 사건이 마무리되는 대로 칠성원 진상규명 작업에 착수한다고 15일 밝혔다.
칠성원은 영화숙·재생원의 뒤를 이은 부산 공식 부랑인 수용소다(국제신문 2022년 12월 12일 자 6면 등 보도). 최초의 시설인 영화숙·재생원은 1962년부터 사실상 공식 시설로 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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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숙·재생원 사건 진상규명이 끝나면 부산의 또 다른 부랑인 수용 시설 ‘칠성원’을 대상으로 한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조사가 곧바로 이어진다. 지역 부랑인 정책의 어두운 단면을 보여주는 다른 한 축인 이곳에선 영화숙 형제복지원과 마찬가지의 인권유린이 자행됐다.
진실화해위는 영화숙·재생원 사건이 마무리되는 대로 칠성원 진상규명 작업에 착수한다고 15일 밝혔다. 이를 통해 부산지역에서 일어난 부랑인 수용 시설 피해 전반에 대한 진상을 규명한다는 취지다. 칠성원은 영화숙·재생원의 뒤를 이은 부산 공식 부랑인 수용소다(국제신문 2022년 12월 12일 자 6면 등 보도). 최초의 시설인 영화숙·재생원은 1962년부터 사실상 공식 시설로 쓰였다. 그러다 1968년 제정된 ‘부산시 재생원 설치 조례’를 토대로 시와 부랑인 수용 위탁 계약을 체결, 운영 근거를 명문화했다. 영화숙·재생원에서 기원한 인권유린의 역사는 칠성원(1971~1975년)과 형제복지원(1975~1987년)으로 계승됐다. 폭력의 장소만 바뀌었을뿐 그 체계는 존속한 셈이다. 폭력의 근거가 된 조례는 형제복지원 사건 3년 뒤인 1990년에야 폐지됐다.
칠성원 생활은 여느 시설과 매한가지로 잔혹했다. 칠성원 피해자 박모(60대) 씨는 “국민학생 무렵 해운대역 근처에서 놀다가 난데없이 탑차에 붙잡혀 끌려갔다. 어린아이부터 20대 형들까지 수용돼 있었다. 이쑤시개 뒤에 꽃장식을 다는 노역에 강제 동원됐고, 할당량을 채우지 못하면 매가 날아들었다. 잠을 잘 때는 옷을 홀딱 벗겨 서로 몸을 밀착시킨 뒤 재웠다. 시설 마당에 연못이 있었는데, 원장은 말을 듣지 않는 아이를 그 연못에 던졌다”고 증언했다.
알려진 피해 사례는 많지 않다. 지난 5월까지 위원회에 접수된 칠성원 사례는 6건에 그친다. 다만 위원회는 칠성원이 재단 산하의 또 다른 시설 ‘애광보육원’으로 아동을 옮긴 기록 등을 확보됐다. 이를 활용해 피해생존자를 확보, 칠성원 사건의 구체적 피해 양상을 확인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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