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이문화처럼 번져'...딥페이크 성범죄 왜 유독 청소년들 많았나?
"청소년들 사이에선 어느날 갑자기 터진 게 아니라 늘 있었던 일입니다."
청소년 성범죄자들을 상담하는 이명화 아하서울시립청소년문화센터장은 최근 논란이 된 '딥페이크(Deepfake)' 디지털 성범죄에 대해 이미 "만연해온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번에 드러난 텔레그램 딥페이크 영상물의 피해자와 가해자 모두 연령대가 낮다는 사실이 한국 사회에 큰 충격을 줬다.
전국의 중, 고등학교가 다수 피해 학교 명단에 포함됐고,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 지난 27일과 28일 이틀간 전국의 유치원, 초, 중, 고를 대상으로 진행한 실태조사선 약 2500건의 신고가 접수됐다.
딥페이크 성범죄 사건이 왜 10대를 중심으로 심각하게 번졌는지, BBC가 전문가들의 의견을 들어봤다.
'범죄인지 알고' 하는 놀이
전문가들은 딥페이크 디지털 성범죄에서 10대들이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건 어제 오늘 일이 아니라고 한다.
국민의힘 조은희 의원실이 경찰청에 요청해 공개한 '딥페이크 범죄 현황'에 따르면 지난해 검거된 허위영상물 피의자 120명 중엔 10대가 91명(75.8%)이었다. 2022년에도 10대 피의자가 61%로 높은 비중을 차지했다. 올해 1~7월도 73.6%로 역시 높은 수준이다.
이 센터장은 10대들 사이에선 딥페이크가 이미 “하나의 놀이문화처럼 번졌다”며, “또래들 사이의 장난이나 놀잇거리로 삼는 경향이 있다”고 진단했다.
한국 여성변호사회 아동청소년특별위원장인 서혜진 변호사도 청소년 가해자들이 딥페이크 성범죄를 “또래 집단에서 인정받기 위한 놀이”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고 밝혔다.
익명으로 성범죄 피해자 연대 활동을 해오고 있는 연대자D씨는 10대들이 이 범죄에 가담하는 행위를 “단순한 성욕이나 호기심 문제”로 볼 일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는 이어 가해자들은 분명 “자신의 행위가 범죄라는 인식을 갖고 있다”며, 그 이유로 “잡히지 않는다는 말을 공통적으로 한다는 점”을 꼽았다.
2022년 방송통신위원회가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진행한 사이버폭력실태조사보고서에도 이같은 경향이 드러난다.
‘디지털 성범죄 확산 및 재생산 원인’을 묻는 질문에 청소년들은 ‘처벌이 약해서’와 ‘인터넷의 익명성 때문에 붙잡힐 염려가 없어서’라는 답변을 가장 많이 골랐다. 반면 ‘별 게 아니라는 생각에’라는 항목에 대한 응답률은 가장 낮았다.
'처벌 약하고 붙잡히지 않아'
전문가들은 이처럼 청소년들이 딥페이크가 범죄란 인식이 있지만, 처벌이 약하고 붙잡힐 염려가 없다는 인식을 학습한 결과 사태가 오늘에 이르게 됐다고 입을 모은다.
서 변호사는 딥페이크 범죄가 실제 “범죄로 처벌되는 건수가 매우 적었다”며 “경찰의 수사 의지가 낮았던 것”이라고 지적했다.
딥페이크 제작물 등 불법 합성물 제작과 유포에 대한 처벌 근거는 2020년 6월 처음 마련됐다. 당시 성폭력처벌법엔 딥페이크 영상 등을 제작한 자는 5년 이하의 징역, 5000만 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한다는 ‘허위 영상물’ 관련 규정이 신설됐다.
하지만 이후 실제 처벌로 이어진 사례는 많지 않다. 조은희 의원실 공개 자료에 따르면 허위 영상물 관련 범죄 처벌 건수는 2021년 156건, 2022년 160건, 2023년 180건이다.
한편 경찰은 29일 서울경찰청 사이버수사대 내에 TF를 조직해 딥페이크 성착취물을 자동 생성하는 텔레그램 프로그램봇 8개를 입건하는 등 집중 대응에 나선다고 밝혔다.
D씨도 수사기관이 “텔레그램이기 때문에 가해자를 잡지 못한다고 핑계를 대고 있다”며 의지의 문제를 지적한다. “해외 사례에서도 특정 범죄에 한정해서는 텔레그램이 수사 협조를 했던 케이스들도 있어요. 그리고 수사 협조하지 않았을 경우 아예 텔레그램을 차단한 경우도 있었단 말이죠.”
지난 2022년 브라질 연방대법원은 텔레그램이 가짜뉴스 유포에 대해 조치를 취하라는 요청에 협조하지 않자 브라질 전역에서 텔레그램 접속을 차단하라고 통신 업체에 명령한 바 있다. 프랑스는 지난 28일 온라인 성범죄, 마약 거래 등의 행위를 공모, 방조했다는 혐의로 텔레그램 창업자 파벨 두로프를 체포하기도 했다.
D씨는 N번방 사건 이후인 2020년도에 만들어진 법무부 디지털성범죄 TF에서 “이미 이런 사태를 예상하고 관련 법제의 보완 등이 필요하다고 지속적으로 지적해왔지만 상당수 반영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2020년 당시 TF 팀장을 맡았던 서지현 전 검사도 지난 27일 소셜미디어 메타에 올린 게시글에서 당시 TF가 “제대로 가해자를 처벌하고, 피해자를 보호하기 위해 60여개 관련 법률조항을 제안”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며, 당시 제안했던 관련 내용 중 일부를 다시 한 번 공유했다.
D씨는 “수사기관의 실패가 이어지다 보니 결국 청소년들이 ‘이런 불법적인 놀이를 해도 나는 안 잡혀’라는 확신을 갖게 된 것”이라고 진단했다.
청소년들이 쉽게 범죄에 노출되는 이유
“예전엔 애들이 집에 있으면 안전했잖아요. 그런데 지금은 온라인을 통해 아이들을 범죄에 가담시키기가 너무 쉬워졌어요.”
아동, 청소년 성폭력 피해 지원, 성교육 등을 하는 사단법인 탁틴내일 이현숙 대표는 청소년들이 범죄에 쉽게 노출되는 환경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추적단 불꽃 원은지 활동가는 28일 CBS와의 인터뷰에서 딥페이크 업체들이 10대들을 “전형적인 홍보책으로 쓴다”고 지적했다. 원씨는 “딥페이크를 이용할 수 있는 포인트 같은 것을 지급해서 국내 청소년들이 이 포인트를 받기 위해 온라인에서 홍보하거나 동시에 불법 합성물을 불특정 다수가 있는 대화방들에 공유, 유포하고 있는 것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 대표는 “온라인 공간에서 갈수록 범죄자들이 청소년들에게 접근하기가 쉬워진다”며, 딥페이크 외에도 “도박, 마약, 담배 대리구매 등 많은 유형의 범죄에서 청소년들이 행동대원처럼 이용되고 있다”고 밝혔다.
지난 3월엔 경기북부경찰청이 검거한 불법 도박 사이트 운영 조직원 35명 중 12명이 중고교생으로 밝혀져 충격을 주기도 했다. 이 조직은 ‘사이트 운영을 도우면 도박 자금뿐 아니라 생활비까지 벌 수 있다’며 10대들을 홍보책으로 유인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 대표는 이번 텔레그램 딥페이크 성범죄 사건을 통해 “범죄자들이 이렇게 쉽게 아이들한테 접근할 수 있었던 환경을 돌아봐야 한다”고 전했다.
그는 “기술이 발전했기 때문에 안전에 대한 패러다임 자체가 바뀌어야 한다”며, “문제가 생기면 특별단속을 하는 식으로가 아니라, 우범지역에 순찰차가 돌아다니는 것처럼 안전하지 않다고 하는 공간에 경찰들이 미리 들어가 있는 식으로” 좀 더 적극적인 예방 조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서 변호사도 각종 방법으로 홍보책을 끌어들이는 단체대화방의 경우 “조주빈 사건 때처럼 범죄단체조직으로 봐서 이런 시스템에 대해 엄벌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해결책은 없나?
전문가들은 텔레그램을 이용한 딥페이크 성범죄 사건이 현재의 10대가 특별히 달라서 발생한 문제가 아니라는 지적이다.
연대자D는 “과거엔 그냥 사진을 올려놓고 품평하는 수준”이었지만, “이제는 기술과 만나며 거기에 각종 욕구를 덧붙일 수 있게 됐다”며, 딥페이크 성범죄가 “10대만의 독특한 놀이 문화로 갑자기 등장한 게 아니라 유구하게 지속된 부분들이 기술 발달에 따라 전환된 케이스”라고 진단했다.
따라서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를 청소년의 새로운 일탈로 볼 경우 문제 해결이 어려울 수 있다고 지적한다.
연대자D는 “앞으로도 계속 기술이 발전하고 새로운 도구가 등장할텐데, 그때마다 외부 탓만 할 순 없다”며 보다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서 변호사도 “처벌도 중요하지만 그것만큼이나 범행을 저지르지 않도록 하는 노력이 필요하고 인식이나 문화를 바꾸려는 노력이 필요한데, 거기에 대한 관심이 적은 것 같다”고 말했다.
이 센터장도 “가해 청소년들에게 본인들이 했던 잘못을 정확히 알려줬더니 성인지 감수성이 증가하고 종료 후에도 재범이 발생하지 않았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며 “효과성 있는 교육들이 뒤따라야 재발을 막을 수 있다”고 짚었다.
한편 정부는 딥페이크 성범죄의 처벌을 강화하는 방안을 검토중이다.
정부와 여당은 현행 최대 징역 5년인 ‘허위영상물’ 유포 등 형량을 ‘불법 촬영물’과 마찬가지로 최대 징역 7년으로 강화하는 방안을 추진할 방침이다.
특히 청소년들이 딥페이크 성범죄에 가담한 것으로 파악되면서 '촉법소년'(형사처벌을 받지 않는 10세 이상 14세 미만)의 기준을 낮추는 방안도 검토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