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통 보안 속 '목소리'로만 인사한 한강 "노벨상으로 일상 달라지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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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문학상 수상자 선정 이후 한강 작가의 첫 공식석상 등장이 예고된 건 17일 오후 5시.
한강은 HDC그룹이 주관하는 포니정재단의 올해 혁신상 수상자다.
한강은 지난 10일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이후 잔치를 벌일 때가 아니라며 기자회견, 국내 언론 인터뷰 등을 일절 고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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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 앞 서지 않고 목소리로만 전달해
"지금처럼 책 속에서 독자 만나고파
작가의 황금기인 60세까지 6년 남아
마음속에 굴리는 책 집필에 몰두하고 싶다"
노벨문학상 수상자 선정 이후 한강 작가의 첫 공식석상 등장이 예고된 건 17일 오후 5시. 한강은 HDC그룹이 주관하는 포니정재단의 올해 혁신상 수상자다. 서울 강남구 포니정홀에서 열린 시상식은 비공개 행사였지만, 국·내외 기자들과 한강을 보려는 시민들이 몰려들어 몇 시간전부터 주변이 붐볐다. 한강은 그러나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따로 마련된 통로를 이용해 시상식장에 바로 입장했다.
한강은 지난 10일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이후 잔치를 벌일 때가 아니라며 기자회견, 국내 언론 인터뷰 등을 일절 고사했다. 17일 시상식도 기자들의 입장이 제한된 채 진행됐다. 기자들은 시상식장 밖에서 스피커를 통해 울리는 한강의 '목소리'만 들을 수 있었다.
"혁신상을 받는 자리이니 노벨문학상 관련 언급은 하지 않을 것"이라는 얘기가 돌았지만, 한강은 “허락해 주신다면 (혁신상) 수상 소감 앞에 간략하게나마 노벨문학상에 대해 말씀을 드리겠다”며 조심스럽게 운을 뗐다. 그는 “그토록 많은 분들이 자기 일처럼 축하해주신 일은 특별한 감동”이라고 인사했다.
이어 한강은 “개인적 삶의 고요를 걱정해 주시는 분들도 계신다”며 “저의 일상은 이전과 그리 달라지지 않기를 바란다”고 했다. 그는 “저는 제가 쓰는 글을 통해 세상과 연결되는 사람”이라며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계속 써가면서 책 속에서 독자들과 만나고 싶은 마음”이라고 했다.
1970년 11월생인 한강은 “약 한 달 뒤에 만 54세가 된다”면서 “작가의 황금기가 보통 50세에서 60세 사이라고 가정하면, 6년이 남은 셈”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앞으로 6년 동안 지금 마음속으로 굴리는 책 세 권을 쓰는 일에 몰두하고 싶다”고 했다. “그렇게 쓰다 보면 지금까지처럼 다른 쓰고 싶은 책이 생각 나서 앞에 놓은 상자 속 세 권의 책을 생각하다 제대로 죽지도 못할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든다”고 말하기도 했다.
한강은 시상식이 끝나자마자 행사장을 떠났다. 지하 주차장에서 마주친 기자들의 "소감을 부탁드린다"는 요청에 별다른 대답을 하지 않았다. 그의 정식 수상 소감은 올해 12월 10일(현지시간) 스웨덴에서 열리는 시상식에서 그가 낭독할 에세이를 통해 들을 수 있을 전망이다.
포니정 혁신상은 현대자동차를 세운 정세영 전 현대산업개발 회장을 기리는 상으로, 지난달 그의 수상이 결정됐다.
한강 포니정 혁신상 수상소감 전문
안녕하세요. 무척 감사드립니다. 원래 이틀 전으로 기자회견이 예정되어 있었는데, 그것을 진행했다면 이렇게 많은 분들이 걸음하지 않으셨어도 되고, 이 자리를 준비하신 분들께도 이만큼 폐가 되지 않았을 것 같아 죄송한 마음입니다. 이렇게 찾아와주셨으니, 허락해 주신다면 수상소감을 말씀드리기에 앞서 간략하게나마, 아마도 궁금해하셨을 말씀들을 취재진 여러분께 잠시 드리겠습니다.
노벨 위원회에서 수상 통보를 막 받았을 때에는 사실 현실감이 들지는 않아서 그저 침착하게 대화를 나누려고만 했습니다. 전화를 끊고 언론 보도까지 확인하자 그때에야 현실감이 들었습니다. 무척 기쁘고 감사한 일이어서, 그날 밤 조용히 자축을 하였습니다. 그후 지금까지 많은 분들이 진심으로 따뜻한 축하를 해주셨습니다. 그토록 많은 분들이 자신의 일처럼 기뻐해주셨던 지난 일주일이 저에게는 특별한 감동으로 기억될 것 같습니다.
한편으로 이후 제 개인적 삶의 고요에 대해 걱정해주신 분들도 있었는데, 그렇게 세심히 살펴주신 마음들에도 감사드립니다. 저의 일상이 이전과 그리 달라지지 않기를 저는 믿고 바랍니다. 저는 제가 쓰는 글을 통해 세상과 연결되는 사람이니,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계속 써가면서 책 속에서 독자들을 만나고 싶습니다. 지금은 올 봄부터 써온 소설 한 편을 완성하려고 애써보고 있습니다. 바라건대 내년 상반기에 신작으로 만날 수 있으면 좋겠지만, 소설을 완성하는 시점을 스스로 예측하면 늘 틀리곤 했기에, 정확한 시기를 확정 지어 말씀드리기는 어려운 상황이라는 말씀을 드립니다.
마지막으로, 조금 늦은 감이 있지만 이제부터는 저와 연결되는 통로를 통일하여서 모든 혼란과 수고, 제 주변 사람들의 부담을 없애고자 합니다. 제가 출간한 책들에 관련된 일들은 판권을 가진 해당 출판사에 부탁드리고, 그 카테고리에 잡히지 않는 모든 일들은 문학동네 담담 편집자의 이메일로 창구를 일원화하겠으니 부디 참고 부탁드립니다.
이제, 이 자리를 위해 준비해온 수상소감을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저는 술을 못 마십니다. 최근에는 건강을 생각해 커피를 비롯한 모든 카페인도 끊었습니다. 좋아했던 여행도 이제는 거의 하지 않습니다. 다시 말해 저는, 무슨 재미로 사느냐는 질문을 종종 받는 사람입니다. 대신 걷는 것을 좋아합니다. 아무리 읽어도 다 따라잡을 수 없을 만큼 쏟아져 나오는 좋은 책들을 놓치지 않고 읽으려 시도하지만, 읽은 책들만큼이나 아직 못 읽은 책들이 함께 꽂혀 있는 저의 책장을 좋아합니다. 사랑하는 가족과, 다정한 친구들과 웃음과 농담을 나누는 하루하루를 좋아합니다.
그렇게 담담한 일상 속에서 제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쓰고 싶은 소설을 마음속에서 굴리는 시간입니다. 아직 쓰지 않은 소설의 윤곽을 상상하고, 떠오르는 대로 조금 써보기도 하고, 쓰는 분량보다 지운 분량이 많을 만큼 지우기도 하고, 제가 쓰려는 인물들을 알아가기 위해 여러 방법으로 노력하는 과정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소설을 막상 쓰기 시작하면 필연적으로 길을 잃기도 하고, 모퉁이를 돌아 예상치 못한 곳으로 들어설 때 스스로 놀라게도 되지만, 먼 길을 우회해 마침내 완성을 위해 나아갈 때의 기쁨은 큽니다. 저는 1994년 1월에 첫 소설을 발표했으니, 올해는 그렇게 글을 써온 지 꼭 삼십년이 되는 해입니다.
이상한 일은, 지난 삼십년 동안 제가 나름으로 성실히 살아내려 애썼던 현실의 삶을 돌아보면 마치 한줌의 모래처럼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듯 짧게 느껴지는 반면, 글을 쓰며 보낸 시간은 마치 삼십년의 곱절은 되는 듯 길게, 전류가 흐르는 듯 생생하게 느껴진다는 것입니다.
약 한 달 뒤에 저는 만 54세가 됩니다. 통설에 따라 작가들의 황금기가 보통 50세에서 60세라고 가정한다면 6년이 남은 셈입니다. 물론 70세, 80세까지 현역으로 활동하는 작가들도 있지만 그것은 여러 모로 행운이 따라야 하는 일이니, 일단 앞으로 6년 동안은 지금 마음속에서 굴리고 있는 책 세 권을 쓰는 일에 몰두하고 싶습니다. 물론, 그렇게 쓰다 보면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그 6년 동안 다른 쓰고 싶은 책들이 생각나, 어쩌면 살아 있는 한 언제까지나 세 권씩 앞에 밀려 있는 상상 속 책들을 생각하다 제대로 죽지도 못할 거라는 불길한 예감이 들지만 말입니다.
다만 그 과정에서 참을성과 끈기를 잃지 않기를 희망하고 있습니다. 동시에 일상의 삶을 침착하게 보살피는 균형을 잡아보고 싶습니다.
지난 삼십년의 시간 동안 저의 책들과 연결되어주신 소중한 문학 독자들께, 어려움 속에서 문학 출판을 이어가고 계시는 모든 출판계 종사자 여러분과 서점인들께, 그리고 동료, 선후배 작가들께 감사를 전합니다. 가족과 친구들에게는 다정한 인사를 건넵니다. 저를 수상자로 선정해주신 분들과 포니정재단의 여러분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전혼잎 기자 hoiho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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