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성+사회생활 만렙’ = 이글스 투수 고봉세

올스타전에 앞서 류현진의 블루제이스 유니폼으로 갈아입는 폰세. 사진 제공 = OSEN

“소상공인을 도와야지”

지난 5월 말이다. 울산의 한 카페에 외국인 일행이 나타났다. 주문은 아이스 아메리카노와 기타 등등.

그중 한 명이 엄지를 번쩍 치켜든다. 그러면서 “와, 미쳤다”를 연발한다. 커피 맛이 마음에 쏙 드는 눈치다.

2미터는 돼 보이는 거구다. 남성은 잠시 후 포장 주문을 넣는다. “아아 65잔.”
잠시 후 이들이 향한 곳은 문수 야구장이다. 그리고 테이크아웃 커피 65잔은 이글스 선수단 라커룸으로 옮겨졌다.

통 큰 거구의 손님은 코디 폰세(31)였다. 덕분에 스태프들까지 더위를 식힐 수 있었다. 덧붙인 그의 말이다.

“우연히 들른 업소에서 마신 커피가 좋았다. 한국에 와서 마신 것 중에 최고였다. 팀원들에게도 한 잔씩 돌리고 싶었다.”

그다음 얘기가 귀에 꽂힌다. 기특하기 이를 데 없다.

“이제 **벅스에는 안 가도 될 것 같다. 다음에 내가 커피를 살 차례가 되면, 그때도 작은 가게를 찾을 것이다. 그리고 거기서 주문하겠다. 스몰 비즈니스 하는 사람들을 생각해야 한다.”

이 스토리는 유튜브 채널 ‘이글스 TV’를 통해 세상에 알려졌다. 그리고 SNS를 통해 널리 퍼졌다. 해당 업소는 전국적인 명소가 됐다.

이젠 대전 주민이 된 폰세다. 팬들은 본관도 지어줬다. ‘대전 폰씨’다. 고봉세라는 이름도 선물했다.

새로 이사하면 궁금한 게 많다. 근처 맛집, 공원, 교통 정보가 궁금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그의 경우는 조금 다르다. 가장 먼저 물어본 게 이런 질문이다. “가까운 곳에 미군 부대가 있냐.” 국가를 위해 헌신하는 이들에게 야구장 입장권이라도 선물하고 싶다는 마음이었다.

유튜브 채널 이글스 TV

유니폼 구입은 팬심으로

지난 주말 올스타전이 열렸다. 새로 생긴 대전 한화생명 볼파크가 무대였다. 나눔 올스타의 선발이 마운드에 오른다.

그런데 잠시 경기가 멈춘다. 주섬주섬 웃옷을 갈아입는다. 새로 꺼낸 것은 파란색이다. 블루제이스의 99번이 새겨졌다. 류현진의 토론토 시절 유니폼이다.

거기서 끝이 아니다. 글러브도 바꾼다. 왼손잡이용을 끼고, 좌투수처럼 와인드업을 한다. 그리고 진짜로 홈을 향해 공을 뿌린다. 타자 구자욱도 쿵짝을 맞춰준다. 시원한 헛스윙으로 분위기를 띄운다.

“난 Ryu의 열렬한 팬이다.” 일찌감치 밝힌 얘기다. 올스타전을 통해 그걸 다시 한번 강조한 셈이다.

그럴 수 있다. 99번은 소속 팀의 간판스타다. 게다가 선수단의 리더다. 그를 좋아하고, 추앙한다는 건 당연한 일이다. 그리고 사회생활도 잘한다는 뜻이다.

문제는 진심의 함유량이다. 아내 엠마 폰세가 류현진의 아내(배지현)와 나눈 대화다.

엠마 “우리 부부가 자기 전에 하는 일이 있다. 핸드폰으로 이베이에서 Ryu의 유니폼을 검색하는 작업이다. 아무리 뒤져도 마음에 드는 물건을 찾기가 쉽지 않더라.”

배지현 “류현진에게 얘기해 보면 되지 않겠냐.”

엠마 “벌써 말했다. ‘Ryu가 수백 벌은 갖고 있을 텐데, 한 벌 부탁해 봐라’ 했더니 펄쩍 뛴다. ‘감히 류현진에게 뭘 부탁할 수는 없다. 나는 팬답게 정통적인 방법으로 구해야 한다’라고 하더라.”

(유튜브 채널 ‘배지현 BaeJihyun’ 중에서)

# 이베이를 검색해 봤다. 사인이 들어간 류현진의 유니폼 상의는 499달러~699달러(약 69만~96만 원) 정도다. 배송비는 별도다.

사인이 없으면 200달러(약 27만 원) 이하로 구입할 수 있다. 티셔츠만 해도 20~30달러 정도다. 무엇보다 폰세의 체격에 맞는 사이즈는 구하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

사진 제공 = OSEN

후배 위해 공 골라주기

지난 10일이다. 전반기 마지막 일정이다(대전 KIA전). 김경문 감독은 이미 폰세와 류현진을 엔트리에서 제외시켰다. 수고했으니, 쉬라는 뜻이다. 이를테면 휴가 같은 개념이다.

대신 황준서가 이 게임을 맡았다. 등판에 앞서 불펜에서 몸을 푼다. 이때 휴가자 2명이 등장한다.

그렇다고 뭐 대단한 조언을 해주는 것은 아니다. 그냥 옆에서 쭈그리고 앉는다. 그리고 박스에서 공을 꺼낸다. 마치 품질 검사를 하듯이 이리저리 살펴본다.

그러면서 하나하나 괜찮은 걸 골라준다. 아마도 실밥이나, 공의 미세한 크기와 감촉을 감별해 준 것이리라. 황준서의 손에 잘 맞고, 착착 감기는 느낌을 살릴 수 있도록 말이다.

류현진이 그러는 건 이해가 간다. 곁에 있는 폰세의 모습은 흔치 않은 광경이다. 외국인 투수 아닌가. 쉬라고 며칠 말미를 줬는데. 그걸 마다하고, 굳이 불펜까지 들어온다. 상황이 이러니 라이언 와이스도 가만히 있을 수 없다. 이것저것 거들며 함께 한다.

역시 아내 엠마 폰세가 답을 준다.

“일본에서는 편했다. 선발 투수는 던지지 않는 날에는 덕아웃에 들어가지 않는다. 덕분에 남편과 함께 있는 시간이 많았다. 그런데 한국은 다르다. 게임이 끝날 때까지 벤치에서 응원하느라 정신이 없다.”

물론 나쁘다는 뜻은 아니다.

“코디(남편)는 그걸 훨씬 즐긴다. 팀과 하나가 돼서 같이 기뻐하고, 하이 파이브를 나누면서 활력을 얻는다. 그런 면에서 한국식 문화가 더 잘 맞는 것 같다.”

황준서가 쓸 공을 골라주는 폰세와 류현진. 유튜브 채널 SBS Sports

집합 거는 외국인 투수

두 말하면 숨만 가쁘다. 이미 지난 3월에 확인했다.

역사적인 대전 신구장 개장 경기였다. 6회까지 갑갑한 흐름이 이어졌다. KIA에게 0-2로 끌려갔다.

그러자 갑자기 선발 투수(고봉세)가 돌발 행동을 한다. 7회 마운드를 내려오면 서다. “다들 모여봐.” 손짓이 무척 절실하고, 격렬하다. 덕아웃의 동료들까지 불러낸다. 얼떨결에 주장 채은성과 류현진까지 나가야 했다.

열변을 토한 내용은 이런 얘기였다. “1점만 뽑자. 그럼 잘 풀릴 수 있다. 집중하면 된다. 너희들을 믿는다.”

난데없는 외국인 투수의 집합이다. 정신을 안 차릴 수 있겠나. 곧바로 양상이 달라진다. 홈런(김태연)에 이어 적시타가 터진다. 단번에 승부가 뒤집힌다. 결국 7-2 역전승이 만들어졌다.

유튜브 채널 엠빅 뉴스

마운드 땅 고르기도 직접

‘E’의 성향만 있는 게 아니다. ‘I’도 대문자로 쓸 만큼 뚜렷하다.

어느 날 불펜에서의 일이다. 마운드에 오르더니 간단히 몸을 푼다. 공을 던진 것도 아니고, 가벼운 셰도우 피칭 정도였다.

몇 분만에 끝난 과정이다. 그러더니 주변을 두리번거린다. 뭔가를 찾는 모습이다. 눈에 띄지 않자, 스태프를 붙잡고 묻는다. 저쪽 멀리 찾는 물건이 보인다. 성큼성큼 가더니 장비를 들고 온다. 땅 고르는 고무래다.

그걸로 자신이 있던 자리를 다듬는다. 흙은 평평하게 만들어 놓고 내려온다. 덩치는 산만하다. 그래도 마음 씀씀이는 사소한 것도 놓치지 않는다.

유튜브 채널 SBS Sports

며칠 전이다. 야후 재팬에 그의 기사가 떴다. KBO리그에 가서 크게 성공했다는 내용이다. 일본(NPB)에서 3년간 있었다. 관심은 당연하다.

이런 뉴스에 그쪽 반응은 뻔하다. 대부분은 냉소적이다. 양쪽 리그의 수준 차이 아니겠냐. 그런 지적이 절대적이다. 이번 폰세의 경우도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뜻밖의 댓글이 눈에 띈다. 꽤 우호적인 내용이다.

‘라쿠텐 마지막 해(2024년)에 방어율이 좋지 않았지만, 후반부에는 잘해줬다. 마무리로 가서는 160km를 던지며 안정감도 있었다. 내년에는 잘해주겠지 하는 기대가 있었는데, 한국으로 가버려서 아쉬웠다.’

‘니폰햄 시절부터 폰세의 팬이다. 늘 활기차고, 보고 있는 사람을 즐겁게 만들어주는 선수였다. 야구장에서 팬서비스도 최고였다. 사인을 원하면 거절하는 법이 없었다. 어디에서 뛰어도 잘 되길 바란다. 항상 응원한다.’

니폰햄 시절에도 마운드 흙을 직접 골랐다. 코디 폰세 SN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