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이자식 R&D' 선언한 차백신연구소, 턴어라운드 동력은 아직 추상적 [현장+]

22일 서울 중구 HJ비즈니스센터에서 열린 차백신연구소 기자간담회에서 한성일 대표가 회사 파이프라인과 전략에 대해 발표하고 있다. /사진 제공=차백신연구소

차백신연구소가 한성일 대표의 취임 후 처음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화이자식 연구개발(R&D) 체제' 전환을 공식화했다. 고비용 인프라 대신 인공지능(AI)과 외부협력으로 구조기반신약설계(SBDD)를 도입하고, 대상포진·동물항암·일본뇌염백신 등 3대 파이프라인에 집중하겠다는 방침이다. 그러나 '핵심 파이프라인 상업화와 글로벌 파트너십'을 내세운 청사진과 달리 구체적인 턴어라운드 동력은 여전히 불투명하다는 지적을 피하지 못했다.

AI·외부협력 중심 효율화 전략 제시

/자료=차백신연구소 IR

22일 차백신연구소는 서울 중구 HJ비즈니스센터에서 기자간담회를 개최했다. 이날 행사에는 올해 8월 취임한 한 대표가 직접 모습을 드러낸 가운데 김상기 CFO, 정시영 사업개발본부장, 전은영 R&D연구소 부소장 등 주요 임원들도 동참하며 눈길을 끌었다. 한 대표는 발표를 주도하며 차백신연구소의 중장기 성장전략과 글로벌 사업 비전을 중심으로 향후 R&D 계획을 공유했다.

한 대표는 차백신연구소의 '화이자식 R&D 체제' 전환을 공식화하며 효율성과 글로벌 네트워크를 앞세운 R&D 전략을 제시했다. 그는 "SBDD는 화이자에서 20여년간 해온 분야"라며 "AI와 툴들이 많이 이용 가능해졌는데, 여기에는 많은 인프라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이어 "게다가 한국에도 많은 인프라가 갖춰져 있다"며 "그 부분들을 외부와의 협력을 통해 사용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덧붙였다.

외부 협력과 AI 활용을 기반으로 한 '경량화 R&D' 구상은 내부조직 개편으로도 이어졌다. 한 대표는 "시간과 비용을 줄이기 위해 내부에서도 약간의 구조조정을 진행했다"며 "신규개발 프로젝트팀을 신설해 AI와 소프트웨어(SW)를 활용해 신속하게 (후보물질을) 검토·분석할 수 있는 체계를 갖췄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이 팀이 다른 연구조직들과 긴밀히 소통하며 효율적으로 돌아갈 수 있는 구조를 마련했다"고 부연했다.

시장에서도 이번 R&D 전환은 한 대표를 중심으로 이뤄질 것으로 전망한다. 그는 화이자에서 23년가량 재직하며 백신과 면역질환 치료제 개발을 이끈 구조생물학 전문가다. 고려대 생물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퍼듀대에서 생화학 박사학위를 받은 뒤, 스크립스연구소와 로렌스버클리국립연구소를 거쳐 2002년 화이자에 합류했다. 코로나19 백신 '코미나티'와 호흡기세포융합바이러스(RSV) 백신 '아브리스보' 개발에 참여했으며, 차백신연구소에서는 이 같은 경험들을 바탕으로 백신과 면역항암 파이프라인의 상업화 속도를 끌어올리는 역할을 맡고 있다.

고비용 인프라 대신 '경량형 모델'

22일 서울 중구 HJ비즈니스센터에서 열린 차백신연구소 기자간담회에서 한성일 대표가 기자들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사진 제공=차백신연구소

화이자식 R&D 전환의 핵심은 '효율화'지만, 실제 실행 구조는 '경량형 모델'에 가깝다고 여겨진다. 한 대표는 초저온전자현미경(Cryo-EM) 등 고비용 장비를 자체 구축하지 않고 AI와 외부 연구 인프라를 결합한 SBDD를 구상 중이다. 글로벌 제약사 수준의 인프라보다는 한국의 환경에 맞춘 현실적 접근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시장에서는 한 대표가 제시한 전략이 비용 대비 속도 면에서는 효율적일 수 있지만, 실험 기반 경쟁력 확보 측면에서는 불확실성이 남는다고 본다. 화이자 시절 주도한 SBDD는 구조생물학 데이터, 실험장비, 대규모 분석인력 등을 기반으로 한다. 반면 차백신연구소의 체계는 AI 중심의 후보물질 선별과 외부협업에 의존하고 있어 자체 분석 역량의 깊이는 상대적으로 제한적일 수 있다는 지적을 받는다.

내부조정 역시 효율화 중심으로 맞춰졌다. 회사는 신규개발 프로젝트팀을 신설해 AI와 SW를 활용한 후보물질 평가 기능을 강화했지만, 전반적 R&D 인력 확대나 장비 투자 계획은 공개하지 않았다. 한 대표가 언급한 '시간과 비용의 절감'은 연구 효율의 재편을 의미하지만, 동시에 물적 자원의 확충은 후순위로 밀려난 셈이다.

성과 관리 체계도 아직 구체화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한 대표는 내부 KPI와 투자 집행 기준을 일부 조정했다고 밝혔으나, 어떤 지표를 기준으로 연구 성과를 평가하고 단계별 목표를 설정할지는 설명하지 않았다. 이번 전환이 '화이자식 효율화'를 표방했지만 실행의 세부 구조는 '축소형'에 가까운 초기 모델로 평가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대상포진·동물항암·일본뇌염 3대축

/자료=차백신연구소 IR

차백신연구소는 기존 감염병 백신 중심 구조에서 면역항암·치료백신까지 확장하려는 분위기다. 이날 현장에서 대상포진, 반려동물 면역항암제, 일본뇌염 백신 등 3대 파이프라인에 역량을 집중하며 상업화 가능성을 높인다는 방침을 공개했다. 한 대표는 "상업화 가능성이 높은 분야에 연구역량을 집중할 것"이라며 "회사의 선택과 집중 전략에 따라 단기적으로는 대상포진, 동물 면역항암제, 일본뇌염 백신 등 세 가지 핵심 파이프라인에 집중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핵심이 되는 과제는 대상포진 예방백신 후보물질 'CVI-VZV-001'이다. 임상1상에서 100% 혈청 방어율을 확보했고, 이달 15일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임상2상 시험계획(IND)을 제출했다. 회사는 내년을 기점으로 글로벌 파트너십 및 기술이전(LO)을 병행 추진하며 국내 출시 목표 시점을 2029년으로 잡았다.

반려동물 항암제 'CVI-CT-002' 또한 핵심 파이프라인이다. 사람용 면역항암제 후보(CVI-CT-001)를 동물 적응증으로 전환한 케이스로, 파일럿 연구에서 10마리 전원 반응률을 보였다. 매주 1회 종양내투여를 3회 시행한 것만으로도 100% 반응률이 확인됐다는 것이 회사 측 설명이다. 2027년 제품 출시를 목표로 3상 연구를 진행 중이며, 적응증 확장과 공동개발 파트너십도 병행할 전망이다.

일본뇌염 백신 'CVI-JEV-001'은 국내 최초 재조합 단백질 백신을 목표로 개발되고 있다. 기후변화에 따른 모기 매개 감염병 확산에 대응하기 위한 과제로, 기존 사백신의 한계를 보완하기 위한 구조기반 항원 디자인 기술이 적용됐다. 현재 보건복지부 주관 과제에 참여 중이며, 연내 특허(IP) 확보를 목표로 하고 있다.

턴어라운드 선언, 구체적 방침 '아직'

차백신연구소 지난 5개년 연간 실적 추이 /그래픽=이승준 기자

이 같은 선택과 집중 전략에도 불구하고 구체적인 턴어라운드 근거는 여전히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각 파이프라인의 임상 일정과 개발 진척은 확인됐지만, 비용 효율화나 턴어라운드에 대한 구체적인 방침에 대해서는 '내부적으로 고민 중'이라는 답변만 반복했다. 회사가 내세운 '핵심 파이프라인 상업화' 구호가 아직은 중장기 청사진에 머물러 있다고 여겨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시장에서는 이번 R&D 전환을 두고 '효율화와 글로벌 협력이라는 방향성은 확보했지만 이를 입증할 성과 데이터가 부족하다'고 평가한다. 차백신연구소가 '화이자식 R&D'를 내세운 만큼 실제 턴어라운드가 이뤄지려면 파이프라인 임상 진전과 외부 딜 체결 등 실질적 결과로 신뢰를 입증해야 한다는 조언이 뒤따른다.

이같이 턴어라운드 압박이 커지는 배경에는 누적된 적자 구조가 있다. 차백신연구소의 매출은 2020년 8000만원에서 2024년 3억700만원으로 늘었지만, 같은 기간 영업손실은 42억원에서 77억원으로 확대됐다. LO 계약금(업프론트)으로 잡힌 2021년 매출 5억원을 제외하면 안정적인 수익 기반은 여전히 부재하다. 연간 60억~80억원 수준의 판매관리비 부담이 이어지며 매출총이익률이 90%대임에도 적자구조가 고착된 상태다.

2021년 10월 기술특례상장으로 코스닥시장에 입성한 차백신연구소는 5년간 '연매출 30억원 이상' 요건이 면제된다. 김상기 CFO는 "실적은 동물 쪽에서 2027년부터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며 "대상포진도 2028년 또는 2029년 정도로 예상하고 있는데, 그 기간까지의 매출 등을 어떻게 커버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별도로 저희가 많이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매출요건이 적용되는 시점이 2027년"이라며 "여기서 다 말씀드릴 수는 없지만 그 부분(연매출 30억원 이상)에 대한 대응을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승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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