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평화상 받은 日 피단협의 피폭자 “꿈의 꿈, 거짓말같다”

도쿄/성호철 특파원 2024. 10. 11. 20:35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10월 11일 2024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일본 원수폭 피해자 단체 협의회 미마키 도시유키(오른쪽) 회장이 언론 인터뷰를 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일본 원자폭탄 피폭자 시민단체인 ‘일본 원수폭피해자단체협의회’(피단협, 일본어 발음 ‘히단쿄’)가 올해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11일 선정됐다. 피단협은 일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떨어진 원폭 피폭자들이 1956년에 결성된 전국 연합조직이다. 일본을 포함한 각국 정부와 유엔에 피폭자 지원과 핵무기 철폐를 주장해온 곳이다. 일본의 노벨평화상 수상은 ‘비핵 3원칙’을 주창한 1974년 사토 에이사쿠 전 총리 이후 두 번째다.

11일 노르웨이의 노벨위원회는 “핵무기 없는 세상을 만들기 위한 노력과 증언을 통해 핵무기가 다시는 사용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을 보여준 공로를 인정받았다”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 미마키 도시유키(82) 대표 위원은 이날 노벨평화상 발표 이후에 “꿈의 꿈, 거짓말 같다”며 “계속 해서 핵무기 폐기와 항구적인 평화를 세계에 호소하겠다”고 말했다. 또 “히로시마현 평화공원 원폭 위령비에 수상 사실을 보고하러 가고 싶다”고 했다.

피단협은 원자폭탄과 수소폭탄을 세상에서 없애자는 시민단체다.1945년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이 투하된 이후, 피폭자들은 패전한 일본 정부에서 제대로된 지원을 못받고 병고와 빈곤에 시달렸다. 당시만 해도 ‘피폭도 전염병처럼 옮는다’는 잘못된 이야기가 광범위하게 퍼진 탓에 피폭자들은 차별받는 대상이었다. 10년 넘게 지난 1956년 나가사키에서 열린 ‘제2회 원수폭탄 금지 세계 대회’를 계기로, 피폭자들이 일본의 전국 조직을 결성한 게 히단쿄다. 일본 도도부현(都道府県, 우리나라의 광역단체)마다 피폭자들이 조직을 만들었고 피단협은 지방 조직을 묶는 전국 연합조직이었다.

일본 히단쿄(일본 원폭피해자단체연합회) 사무국장 쿠도 마사코가 2024년 10월 11일 일본 도쿄의 사무실에서 히단쿄의 2024년 노벨평화상 수상 소식을 전하는 신문 호외를 들고 있다. /EPA 연합뉴스

히단 결성 당시 “(원폭 피해자인) 우리는 스스로를 구하는 것과 동시에 우리의 체험을 통해 인류를 위기에서 구한다는 결의를 맹세한다”는 선언문을 발표했다. 피단협은 이후 ‘핵무기의 철폐’와 함께 ‘원폭 희생자에게 대한 국가 보상’, ‘유가족의 생활 보장’을 요구했다. 1978년에는 유엔군축특별총회에 38명을 파견해 핵무기 철폐를 호소했다. 2001년에는 ‘핵무기도, 전쟁도 없는 21세기를 목표로 삼아, 싸워나가겠다’는 ‘21세기 피폭자 선언’을 발표했다. 피폭 60년인 2005년에는 유엔에서 열린 NPT(핵확산 금지조약) 재검토 회의에 대표를 파견했다. 하지만 원자폭탄이 투하된지 79년이나 지나면서 생존한 피폭자가 거의 사라지는 상황으로 활동이 약화되는 상황이었다.

피단협에는 피폭 한국인들도 초창기부터 회원으로 참여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피단협의 관계자는 “재일 한국인 피폭자는 항상 함께 활동해왔다”며 “각 지역 본부의 회원에 지금도 한국 국적 피폭자들이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날 오후 6시30분, 히로시마 시청에서 왼손의 손가락 4개가 피폭으로 문드러진 미마키 도시유키 대표위원이 기자회견을 가졌다. 82세인 미마키 대표는 “올 가을, (죽기 전에) 나의 세대에서 노벨상을 받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며 “우리들의 이야기는 다음 세대로 계승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일본에서만 호소해서도 안되며, 세계를 상대로 호소해야한다”고도 말했다. 기자 회견 도중, 때때로 스마트폰이 울릴때마다, 미마키 위원은 연신 ‘감사합니다’를 말하곤 전화를 끊고 했다. 1942년에 태어난 미마키 위원은 세살 때 히로시마에서 피폭됐다.

미마키 도시유키 일본 원수폭 피해자 단체 협의회(피단협) 회장이 2024년 10월 11일 노벨평화상 수상 이후 일본 히로시마에서 언론과 인터뷰 도중 꿈같다며 자신의 볼을 꼬집고 있다./교도/AP 연합뉴스

-노벨상 수상 소감은.

“세계에서 하나뿐인 상이니, 이제 다들 ‘핵은 없애야한다’는 걸 주목해줄 것이다. (세계의) 정치인들이 잘 들어줬으면 좋겠다.”

-세계 곳곳에서 전쟁이 터지고 있다.

“국민들은 모두 평화를 바란다. 일본도 80년 전에 그랬다. 큰 전쟁을 일으켜, 310만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죽었다. 전쟁이란, 결국 상대방을 괴롭히는 일, 그러니까 사람을 죽이는 것이다. 둘이 싸우면서 서로 ‘당신이 나쁘다’고 주장하고, 당하면 되갚아준다는 식이다. 전쟁은 한번 터지면 결국 좀처럼 멈출 수가 없다.”

-러시아의 핵 위협이 커지고 있다.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도 생각을 바꿨으면 좋겠지만 그게 잘 안된다. 사실 미국도 우크라이나를 지원한다곤 하지만, 완전히 지원하지는 않고 있다. 일본도 지원한다지만 더 지원하지 않으면 안된다. 이렇다보니 전쟁은 언제까지나 이어진다. 끝이 보이지 않는다. 일본도 방위비를 국내총생산(GDP)의 2%까지 올린다고 하지 않느냐. 이렇게는 결국 멈추지 않는다.”

-평화를 가져오려면.

“전쟁이 없는, 핵무기가 없는 세계로 가야한다. 역시 유엔이 그런 세계로 이끌어가야한다. (각국의) 정치가들은 ‘상대방을 없애고야 말겠다’고만 하니. 그건 안되지 않나.”

-피폭지인 히로시마에서 세계에 발신할 메시지는.

“원자폭탄이 떨어진 곳이다. 히로시마는 단순한 관광지가 아니다. 전쟁에 반대한다는게 히로시마다.”

-이시바 총리는 ‘핵 공유론’을 내놨다. 일본 영토에 핵 반입을 허용할 수도 있다는 말이다.

“일본은 ‘핵을 보유하지 않고, 만들지도 않으며, (영토에) 들이지도 않는다’는 비핵 3원칙이 있다. 지구상에서 핵이 없어질때까지 우리 피폭자들은 호소할 것이다. 조만간 (일본에) 선거가 있다. 헌법을 개정하자는, 그니까 전쟁 준비를 하자는 이야기도 있다. 80년 전을 기억하는 사람으로서 말한다. 일본 국민들은 투표하러 가야한다.”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