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구 칼럼] ‘왕사남’에 위로받은 단종의 죽음

김종구 주필 2026. 3. 12.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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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사헌 기건이 상소했다.

단종의 죽음에는 주장이 많다.

충성스러운 엄흥도가 집행하는 단종 죽음을 보며 슬프게 경험했다.

잠시나마 단종을 웃게 해줬고,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게 해줬고, 충성스러운 백성을 두게 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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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연기로 백성 앞에 온 단종
570년 지못미, 엄흥도로 갚아
빙의로 소망 이끈 영화의 역할

-대사헌 기건이 상소했다. ‘문종 대왕께서 편찮았던 초기에 내의 전순의가 ‘해롭지 않다’고 아뢰었습니다. 종기(腫氣)의 증세를 더욱 심하게 하였습니다. 침으로 종기의 입구를 따고서도 ‘좋게 회복될 것’이라 하였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안가(晏駕·왕의 사망)하였습니다. 전순의의 목을 베어야 했는데 관직만 삭탈하며 유배시켰습니다-<단종 1년 5월1일>. 문종은 종기로 인한 병세가 심각했다. 종기가 사인으로 기록된 유일한 왕이다.

백성에게는 종기로 더 유명한 왕이 있다. 문종 동생 세조다. 정사에 이런 독백이 나온다. -‘내 병이 이와 같으니 마음이 매우 근심스럽다. 이에 의원에게 명하여 종기를 살펴보게 하였다-<세조 13년 3월30일>. 그런데 백성에게 퍼진 내용은 전혀 다르다. ‘꿈에 단종 모친 현덕왕후가 나타났다’, ‘세조 등에 침을 뱉었다’, ‘이후 종기가 악화돼 죽음에 이르렀다’. 꿈, 현덕왕후, 침.... 정사에 전혀 없다. 그런데도 백성은 이 야사를 더 믿었다.

백성이 야사에 담으려던 소망이 있어서다. 권선징악의 소망이다. 조카를 죽인 나쁜 왕이다. 천수를 누리면 안 됐다. 반드시 벌을 받아야 했다.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14년이나 왕을 해 먹었다. 왕권도 승계됐다. 그래도 백성은 계속 저주했다. 그 원성을 담아낸 게 야사다. 꿈(夢)에 누가 나온 게 뭐가 중요한가. 누구든 상관없다. 침(唾)의 성분을 분석해서 뭐할 건가. 어차피 침이 곧 저주다. 조선 시대 백성의 한은 이렇게 야사가 품었다.

선(善)의 마지막은 비참했다. 정사가 이렇게 적고 있다. ‘노산군이 이를 듣고 또한 스스로 목 매어서 졸(卒)하니, 예(禮)로써 장사 지냈다’ <세조실록 3년 10월21일>. 하지만 민간의 전언은 달랐다. ‘세조 3년 10월24일 유시에 공생(貢生)이 활끈으로 노산군의 목을 졸라 숨지게 하였다. 노산군의 옥체는 청령포의 강물에 던져 버린 것을 영월 호장 엄흥도가 몰래 거두어 영월군 북쪽 5리쯤의 동을지(冬乙旨)에 매장했다’ <장릉지>.

영화는 이렇게 그렸다. 금부도사가 머뭇거린다. 엄흥도가 나선다. “저 역적을 내가 처리하겠소.” 이미 죽임을 허락받았던 그다. 방 안과 연결된 활끈을 잡는다. 방 안을 향해 인사를 여쭙는다. “전하. 이제 그만 가십시다. 제가 모시겠습니다.” 줄이 팽팽해진다. 당기고 또 당긴다. 문살이 부러져 내린다. 임금의 마지막이다. 영화를 통해 엄흥도로 빙의된 관람객이 운다. 영화 ‘왕과 사는 남자’, 백성의 뜻을 품고 보듬은 이 시대 야사다.

고증의 불편함은 남는다. 단종이 청령포에 거주한 것은 6~8월이다. 8월 홍수 때 관풍헌으로 옮겼다. 단종이 사약을 받은 곳도 이곳이다. 하지만 영화는 청령포를 무대로 삼았다. 단종의 죽음에는 주장이 많다. 교살설, 자살설, 사약설 등이다. 어느 죽음의 방식도 엄흥도와는 무관하다. 그래서 이 지점이 가장 충격이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많은 이들이 몰입했다. 충성스러운 엄흥도가 집행하는 단종 죽음을 보며 슬프게 경험했다.

정사(正史)는 권선징악의 도를 버렸다. 선이 지고 악이 이기며 끝난 역사다. 뒷날 왕은 복원됐지만 불합리는 바뀌지 않았다. 자연의 섭리로 포기한 570년이다. 그런데 그 진실을 영화가 뒤집었다. 그리고 그 간단한 변화로 많은 걸 이뤄줬다. 잠시나마 단종을 웃게 해줬고,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게 해줬고, 충성스러운 백성을 두게 해줬다. 그리고 1457년, 2026년 두 시대 백성의 눈물을 뿌림받게 해줬다. 그만하면 할 만큼 한 것 아닌가.

가정(假定)으로 빙의(憑依)를 끌어 소망(素望)을 이뤘다. 이런 게 영화라면 왕과 사는 남자는 꽤나 훌륭했다.

主筆 김종구

김종구 주필 1964kjk@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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