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캄보디아 무력 충돌 뒤엔"… 700년 된 '앙코르와트 원한'

이틀째 계속되고 있는 태국과 캄보디아의 국경 무력 충돌을 보며 많은 사람들이 의아해합니다.

"왜 이웃 나라끼리 이렇게 치열하게 싸우는 걸까?" 하지만 이번 충돌은 단순한 국경 분쟁이 아닙니다.

무려 수세기에 걸친 복잡한 역사적 원한과 정치적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구조적 대립인 것이죠.

캄보디아가 발사한 다연장 로켓포가 태국 주유소를 강타해 민간인 6명이 숨지고, 양국이 서로 상대방을 향해 "먼저 공격했다"며 책임을 떠넘기는 상황.

이 모든 것의 뿌리에는 700여 년 전부터 시작된 두 민족 간의 깊은 상처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크메르 제국의 영광과 몰락, 그리고 '암흑의 160년'


이야기는 802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 캄보디아 조상들이 세운 크메르 제국은 동남아시아를 호령하는 강대국이었죠.

현재의 캄보디아는 물론 태국, 라오스, 베트남 일부까지 지배하던 거대한 제국이었습니다.

그 유명한 앙코르와트도 바로 이 크메르 제국의 유산인 것입니다.

크메르 제국 영토

하지만 역사는 잔혹했습니다. 1351년 태국 조상들이 세운 아유타야 왕국이 급속히 성장하면서 크메르 제국을 위협하기 시작했죠.

그리고 1431년, 마침내 아유타야군이 크메르 제국의 수도 앙코르를 점령하는 충격적인 사건이 벌어집니다.

캄보디아인들에게 이는 단순한 정치적 패배가 아니었습니다.

그들의 정신적 중심지이자 문명의 상징인 앙코르를 빼앗긴 것이죠.

설상가상으로 새로운 수도 롱벡마저 1594년까지 160여 년간 태국의 지배를 받게 됩니다.

캄보디아인들이 이 시기를 '크메르의 암흑기'라고 부르는 이유입니다.

프랑스의 자의적 국경선 획정이 남긴 화근


19세기 말, 프랑스가 캄보디아를 식민지로 삼으면서 또 다른 문제가 생겨났습니다.

1907년 프랑스는 통치의 편의를 위해 태국과의 국경선을 일방적으로 설정했는데, 이 과정에서 해석의 여지가 있는 애매한 경계를 만들어버린 것이죠.

특히 해발 525m 절벽 위에 세워진 프레아 비헤아르 사원을 둘러싼 영토 분쟁은 오늘날까지도 양국 간 갈등의 핵심이 되고 있습니다.

지도상으로는 캄보디아 땅이지만, 실제로는 태국 쪽에서만 접근할 수 있는 지리적 특성 때문에 끊임없는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것입니다.

앙코르와트를 둘러싼 민족감정의 폭발

양국 간의 역사적 원한이 얼마나 깊은지 보여주는 사건이 2003년에 벌어졌습니다.

캄보디아 언론이 한 태국 여배우가 "앙코르와트는 원래 태국 것"이라고 말했다는 가짜 뉴스를 보도하자, 격분한 캄보디아 시민들이 프놈펜 주재 태국 대사관을 불태워버린 것이죠.

비록 가짜 뉴스였지만, 캄보디아인들의 반응은 그들에게 앙코르와트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를 여실히 보여줍니다.

과거 크메르 제국의 영광을 상징하는 앙코르와트를 두고 "원래 우리 것"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의 분노는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수세기에 걸친 상처의 표출이었던 것입니다.

2011년에는 더욱 심각한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프레아 비헤아르 사원 주변에서 중화기까지 동원된 전면 교전이 발생해 20여 명이 목숨을 잃었죠.

이때도 양국은 서로 상대방이 먼저 공격했다며 책임을 떠넘겼습니다.

의형제에서 원수로 - 훈 센과 탁신 가문의 배신극


이번 무력 충돌에는 또 다른 흥미로운 배경이 있습니다.

바로 캄보디아 훈 센 전 총리와 태국 탁신 친나왓 전 총리 가문 간의 개인적 갈등이죠.

캄보디아 훈센 총리(왼쪽)와 탁신 전 태국 총리

1990년대 초, 탁신이 캄보디아 통신 사업에 진출하면서 두 사람은 의형제를 맺었습니다.

훈 센의 자택에는 탁신 가족 전용 방이 따로 마련될 정도로 가까운 사이였죠.

하지만 올해 초 태국이 영토 분쟁을 이유로 국경을 봉쇄하면서 관계에 금이 가기 시작했습니다.

훈 센의 정치 자금원이던 카지노 산업이 직격탄을 맞았기 때문입니다.

결정적 사건은 지난 6월에 벌어졌습니다.

탁신의 딸인 패통탄 총리가 훈 센과의 통화에서 "삼촌"이라 부르며 자국군 지휘부를 폄하하는 발언을 했는데, 훈 센이 이를 녹음해 외부에 유출한 것이죠.

이로 인해 패통탄은 헌법재판소 결정으로 직무가 정지됐고, 탁신은 "내 딸에게 이런 상처를 줄 줄 몰랐다"며 분노했습니다.

중국의 애매한 중재자 역할


국제사회는 이번 분쟁의 해결책으로 중국의 중재를 주목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그리 간단하지 않아 보입니다.

캄보디아는 친중 성향이 강한 반면, 태국은 중국의 영향력 확대에 경계심을 갖고 있기 때문이죠.

품탄 웨차야차이 태국 총리 권한대행은 "확전은 없을 것"이라면서도 "대화를 위해서는 휴전이 먼저"라는 조건을 내걸었습니다.

하지만 양국이 서로 상대방이 먼저 공격했다고 주장하는 상황에서 누가 먼저 총을 내려놓을지는 미지수입니다.

끝나지 않는 역사의 그림자


이번 태국과 캄보디아의 무력 충돌은 단순한 국경 분쟁이 아닙니다.

크메르 제국의 영광과 몰락, 160년간의 굴욕, 프랑스 식민 통치의 후유증, 그리고 현대 정치인들의 개인적 원한까지 모든 것이 얽혀 있는 복잡한 갈등인 것이죠.

현재까지 태국에서 민간인 14명을 포함해 16명이 사망하고, 캄보디아에서 4명이 부상을 당했습니다.

특히 캄보디아가 발사한 로켓포가 태국 주유소를 강타해 편의점에 있던 학생들이 희생된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수세기에 걸친 원한의 역사가 21세기에도 무고한 생명을 앗아가고 있는 현실. 양국 정부가 하루빨리 과거의 상처를 치유하고 평화로운 해결책을 모색하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입니다.

우리나라 외교부도 해당 지역에 특별여행주의보를 발령하며 국민들의 안전에 각별한 주의를 당부하고 있는 상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