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산 최초 1억 원 넘은 차" 이재용이 선택해 모두를 놀라게 한 국산차 끝판왕

[체어맨의 위엄]

파워트레인은 여전히 벤츠의 것으로 채워졌습니다. 뉴 체어맨의 최상위 트림에 탑재됐던 직렬 6기통 3.6L 엔진을 기본 사양으로, 이후에는 보급형 모델로 3.2리터 모델이 추가됐어요. 여기에 벤츠 7단 자동 변속기를 맞물려 당시 국산 차 중 가장 높은 수준의 변속기를 탑재했죠.

하지만 필살기는 따로 있었습니다. 바로 V8 5.0L의 엔진이 그 주인공이었어요. 앞서 에쿠스가 미쓰비시의 것을 개량한 V8 4.5L 엔진을 선보이면서 배기량 전쟁에서의 승리를 만끽하고 있었지만, 처음에는 무려 벤츠 S클래스에 탑재됐던 엔진을 그대로 들여와 체어맨 W에 올려버렸습니다. 심지어 엔진 커버마저 동일했죠.

물론 최신 벤츠 엔진은 아니었고 단종된 W220, S500에 탑재된 것이었지만 당시 어느 국산 차도 함부로 접근하기 힘든 수준의 강력한 힘을 제공했습니다. 고속도로뿐만 아니라 일상 환경에서도 고배기량 엔진의 '넉넉한 출력'에서 오는 여유로움은 경험해 보신 분만 알죠. 엑셀에 조금만 힘을 실어도 미끄러지듯 상승하는 속도는 좋은 승차감을 만들어내는 데도 굉장히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죠. 저배기량 터보 엔진이 고배기량 엔진에 버금가는 출력을 제공한다고 해도 고급 세단에서만큼은 환영받지 못하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물론 선택 비율이 높지는 않았지만 다시 한번 쟁취한 '국산 차의 끝판왕' 타이틀은 쌍용차와 체어맨 오너에게는 분명한 자부심이었을 거예요. 여기에 보그워너에서 공급받은 AWD 시스템을 탑재해 국산 세단 중 유일하게 네 바퀴를 모두 굴리는 모델에까지 이름을 올리면서 아예 못을 박아 버렸습니다. 이 타이틀은 2014년 현대차에서 2세대 제네시스를 내놓기 전까지 6년이나 지속됐어요.

이 차로 험로를 주파할 일은 없어도 겨울철 강남의 언덕길마다 비상등을 켜고 엉덩이를 흔들어야 했던 과거의 설움만큼은 달래줄 수 있었죠. 대신 아쉽게도 거대한 V8 엔진이 탑재된 모델은 엔진룸 공간이 부족해 사륜구동을 장착할 수 없었습니다.

리무진 5.0L에 AWD까지 들어갔으면 기름을 흘리고 다녔겠네요. 대한민국 CEO라는 슬로건에 걸맞게 이 차를 탈 '체어맨'이 만족할 만한 고급스러운 승차감과 정숙성도 충실히 갖췄습니다. 탑승객의 몸이 불편하게 흔들리는 것을 막고자 지긋이 달리고 지긋이 멈추는 특유의 페달 감각도 여전했죠. 중간 등급부터 '전자제어 에어 서스펜션'을 기본으로 탑재했고, 또 트렁크를 열면 짐을 싣고 내리기 쉽도록 차체 뒤쪽을 가라앉혀주는 배려까지 해 줬어요.

한편 '체어맨의 위엄'이라는 제목이 붙은 한 블랙박스 영상이 유튜브에 올라와 한때 자동차 커뮤니티를 뜨겁게 달궜는데요. 20초 분량의 이 짤막한 영상 속에서는 고속도로를 주행하던 중 끝 차선에 있던 포터가 갑자기 중심을 잃으며 순식간에 전복됐고, 1차선을 빠른 속도로 달려오던 체어맨 W가 안정적인 회피 기동으로 빠져나가는 영화 같은 장면이 펼쳐졌습니다.

물론 블랙박스 차량의 적절한 감속 / 체어맨 운전자의 반응 속도 / 제대로 기능한 자세 제어 장치 삼박자가 어우러진 덕분에 이런 명장면이 탄생한 것이지만, 2톤에 육박하는 거구의 차체가 깔끔하게 자세를 잡는 모습은 많은 소비자에게 강렬한 인상으로 남았습니다. 심지어 이 영상을 보고 체어맨 구매를 결심하는 분도 있었다고 전해지네요.

[쌍용차는 자격이 없습니다]

이번에도 출시 연도를 눈여겨보신 분들은 아시겠죠. 2008년, 탄식이 절로 나오는 시기죠. 리먼 사태, 2008년 세계 금융 위기는 쌍용차를 또다시 위기로 몰아넣었습니다. IMF 때만큼 우리나라를 쑥대밭으로 만들지는 않았지만 전 세계 경제에 엄청난 타격을 주면서 고급 차 수요에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국산 차 최초로 순수 차량 가격 일억 원을 넘기며 호기롭게 등장했지만, 이번에도 타이밍이 문제였죠.

쌍용차가 제시한 연간 판매 목표는 '1만 3천 대'. 시작 가격이 2천만 원가량 올라 접근성이 크게 떨어졌음에도 사전 계약 한 달 만에 2,755대가 계약됐습니다. 첫 달 판매량 1,020대로 순조로운 듯했지만 신차 효과가 서서히 잦아들면서 목표의 반의반 수준으로 떨어졌어요.

오죽하면 초기형 체어맨부터 뉴 체어맨, 체어맨 W까지 체어맨만 고집해 온 한 개인 오너가 직접 사비를 털어 신문에 '쌍용차 힘내라'라는 내용의 지면 광고를 게재할 정도였죠. 쌍용차에서도 이에 화답해 '더 이상 흔들릴 자격이 없다'는 다짐을 담아 광고를 내보내는 진풍경이 펼쳐지기도 했습니다.

저 신문 광고 처음 봤을 때 임직원은 어떤 기분이었을까요? 이후 차츰 경기가 회복되어 가고 고급 차 수요도 다시금 늘어나기 시작했지만, 집안에서는 난리가 나고 있었고, 경쟁 업체는 만만치 않은 신차 공세를 펼치면서 체어맨의 입지는 더더욱 좁아졌습니다.

가만히 있을 현대차가 아니었으니, 제네시스(BH)의 성공으로 에쿠스의 후속 모델마저 후륜구동으로 설정했고, 벤츠의 구형 엔진 정도는 겨뤄 볼 만한 '자체 개발 8기통 엔진'까지 선보였습니다. 또 이 무렵 수입차 시장이 크게 확대되기 시작하면서 이왕이면 차급은 낮더라도 브랜드 밸류가 높은 중형 모델을 선택하는 고객들이 눈에 띄게 많아졌죠.

이밖에도 모기업 상하이자동차를 통해 중국에 '뱃지 엔지니어링' 방식으로 수출될 예정이었지만, '핵심 기술 유출', '쌍용 사태' 등 암흑기를 거치면서 수출은 파토나버렸습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모르겠네요.

[뉴 체어맨 W│2008-2011]

회사의 주인이 중국에서 인도로 넘어간 2011년, 외관을 한층 화려하게 수정하고 편의 사양을 확대 적용한 페이스리프트 모델 '뉴 체어맨 W'를 출시했습니다. 말이 좋아 심플이지 밋밋해 보이는 것도 사실이었던 전작에 비하면 여러 장식 요소가 추가되어 인상이 많이 달라졌어요. 전면부는 폭포수를 모티브로 한 새로운 라디에이터 그릴과 앞트임 한 헤드램프로 이전보다 날카로운 인상이 됐습니다.

새로운 스타일의 휠과 트렁크까지 연장된 'L자' 형태의 리어 램프, 범퍼 매립형 듀얼 머플러를 더해 트렌드에 발맞췄습니다. 서로 캐릭터를 바꾸기라도 한 것인지, 경쟁차인 에쿠스는 페이스리프트 이후 장식을 덜어내면서 수수해졌고 체어맨은 반대로 장식을 넣으면서 화려해진 게 좀 특이했어요.

바뀐 모습도 호불호는 갈렸는데, 특히 뒷모습이 전작만 못하다는 반응이 많았습니다. 특히 저 L자 램프는 이미 옛날에 그랜저 XG가 한번 말아먹었던 전적이 있죠. 실내에서의 변화는 크지 않았습니다. 반짝이던 유광 우드 그레인을 반광 재질로 바꿔 분위기가 한결 차분해졌고, 스티어링 휠의 버튼 구성을 바꿔 좀 더 직관적인 조작이 가능해졌는데요. 정작 옮겨와야 할 것 같은 계기판 조작 버튼은 그곳에 그대로 남겨 놨죠.

이후 2013년, 스코틀랜드 'Bridge of Weir(BOW)'사와 협업해 최고급 가죽으로 마감된 스페셜 트림 BOW 에디션과 스페셜 리무진 '서밋'을 출시해 눈길을 끌기도 했습니다. 특히 서밋은 독립된 2열 시트 / 스마트폰 무선 충전 / 전용 목베개까지 제공됐고, 온통 새하얀 가죽으로 둘러진 실내는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였죠.

[디지털 카이저의 차]

말년에는 연식 변경을 거치며 독일어로 '황제, 군주'를 가리키는 '카이저'라는 서브네임을 붙였는데요. 뭔가 대단해 보이는 이름과 달리 독수리를 형상화한 전용 엠블럼과 개선된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을 적용한 것 외에는 별다른 변화가 없었고, 경쟁력을 잃은 체어맨은 결국 2017년 단종됐습니다.

여담으로 삼성 이재용 부회장이 한때 뉴 체어맨 W를 의전 차량으로 사용하면서 잠깐이나마 재조명받기도 했는데요.

이 부회장이 사용한 차량은 2016년식 V8 BOW 에디션. 이때는 EQ900 리무진이 등장한 시점이라 국내 최고 기업의 오너가 체어맨이라는 '의외의 선택'을 한 것 자체만으로 주목받았습니다. 당시 한전 부지를 현대차에 빼앗겨 기분이 나빠진 이재용 부회장이 제네시스 대신 체어맨을 타는 것으로 시위했다는 그럴듯한 풍문이 돌았죠.

이후 이재용 부회장은 제네시스 G90을 탔고, 고 이건희 회장의 빈소에 있는 팰리세이드를 직접 몰고 나오기도 하면서 말 그대로 풍문이었음이 드러나기는 했지만요. 이 체어맨 차량은 삼성의 기운이 녹아 있다며 일부 웃돈이 붙은 4,300만 원의 중고 매물로 등장하면서 한때 화제가 되었습니다.

순식간에 팔려나간 이 차는 얼마 뒤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무려 1억 7천만 원이라는 가격과 함께 새로운 주인을 찾는다는 글로 등장하며 또 한번 화제가 됩니다. 과연 원하는 가격에 파셨을까요? 유키즈에도 출연했던 모 유튜버가 직접 이 차량을 섭외해 리뷰를 진행했던 것도 떠오르네요.

2세대 체어맨은 고급 차 메이커로 자리매김하고자 했던 쌍용의 의지를 제대로 보여 준 모델이었습니다. 비록 적극적인 신차 개발을 통해 새로운 고객을 끌어들이거나, 변화하는 신차 트렌드에 대응하지는 못했지만,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선에서 꾸준히 업그레이드하며 체어맨을 우선으로 선택해왔던 기존 소비자만큼은 충분히 만족할 만한 제품을 내놨습니다.

바람 잘 날 없는 회사 사정, 경쟁사와 비교도 안 되는 수준의 기업 규모, 서비스 및 판매 네트워크까지 엄청난 격차가 있었음에도 '먹힐 만한 최고급 차'를 내놨다는 것, 오히려 앞서 나가는 부분까지 있었던 것을 보면 인정을 안 할 수가 없어요.

지금까지 한때 대한민국을 대표했던 최고의 차, '쌍용 체어맨'에 대해 알아봤습니다. 상용차로 시작해 지프같이 투박하기 그지없는 차만 만들던 메이커에서 만든 최고급 세단, 그 와중에 너무 잘 만들어 놀랄 정도였던 체어맨은 상품성을 비약적으로 발전시키며 맹추격해 온 국산 경쟁차, 수입차의 강력한 공세 속에서도 나름의 매력으로 많은 이의 꾸준한 사랑을 받아왔습니다.

정말 버틴 게 용했습니다. 갖은 수모 속에서도 단정한 모습과 체통을 지켰던 선비의 모습 같았달까요. 출시 때마다 기가 막히게 찾아온 경제위기는 '고급화 전략'에 승부를 걸었던 쌍용차에게는 정말 치명적이었어요. 경기 불황이 찾아오면 다양한 라인업으로 판매 전략을 팔 수 있는 종합 메이커 현대나 기아와 달리 쌍용은 이에 대응하는 게 거의 불가능했습니다. 스포츠 시리즈마저 없었으면 진작 망했겠죠.

분명한 강점이었던 벤츠의 기술 역시 시간이 흐르면서 분명한 약점이 됐습니다. 벤츠에서 받아 온 구형 플랫폼과 파워트레인은 국산 차의 개발 수준이 높지 않았던 당시에는 충분히 경쟁력이 있었지만 국산 차의 성능이 비약적으로 발전하기 시작하면서 서서히 경쟁력을 잃어갔죠.

주력 제품인 SUV에 탑재할 디젤 엔진을 개발하기에도 힘이 모자란데 체어맨에 탑재할 고성능 다기통 가솔린 엔진을 만들 여력이 있을 리 만무하니, 선택과 집중을 해야만 했던 쌍용차에게는 상당한 부담이었을 거예요. 우려 봤자 맹물만 나온다는 걸 모를 리 없죠.

더구나 인도 '마힌드라&마힌드라'에 인수된 이후에는 아예 후속을 개발할 명분 자체가 없어졌죠. F세그먼트의 고급 대형 세단을 만든다고 해도 인도에 가져다 팔 만한 차가 아니다 보니까 예산은커녕 관심도 없었을 거예요.

도로 위를 달릴 새로운 체어맨을 우리는 만나볼 수 있을까요? 다음에도 더욱 흥미로운 이야기로 찾아오겠습니다.

- 멜론머스크의 이용허락을 받아 제작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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