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정조와 영조의 탕평책은 어떻게 달랐을까? 준론 탕평, 완론 탕평

정조의 기본적인 정치이념도
할아버지 영조처럼
어떤 붕당에도 치우치지 않는
탕평책을 고수했습니다.

그러나 정조가 표방했던 탕평책은
영조의 탕평책과는 살짝 달랐습니다.

영조의 탕평책은 ‘완론 탕평’이라고
집권여당 노론의
기득권을 보장해주는 가운데
그래도 노론 내 중도 쪽을
많이 등용하면서
소론 내 중도 쪽도
같이 등용하는 형태였죠.

그러나 정조의 탕평은
‘준론 탕평’이라고
정조 개인적으로 친한 의리를 지키는
신하들을 등용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여기서 정조에게 의리를 지킨
사람들이라 함은
대부분 노론이 아니었고,
그중엔 소론뿐 아니라
이미 정치 일선에서 밀려나 있던
남인들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대표적인 예로 조정 대부분이
노론으로 가득 찬 가운데
유일하게 비주류 남인 붕당 출신으로
최고위 관직까지 올라갔던
채제공이란 신하였죠.

정조는 이 채제공을 아버지처럼,
스승님처럼 따랐습니다.
특히 홍국영 제거하곤 훨씬 더 따랐죠.
더불어 노론의 기득권도
보장해주고 싶지 않아 했습니다.

그런데 무작정 피의 숙청만이
답은 아니죠.
그래서 정조는 노론 내 일부를
자기 세력을 포섭하기로 합니다.

이로 인해 노론은
정조에게 포섭당한 시파와
포섭당하지 않은 벽파로
두 붕당으로 다시 나뉘어버립니다.

그러면 그 강한 노론도 둘로 쪼개지니
위세가 약해졌겠죠.

이런 정조의 급격한 탕평책을
‘준론 탕평’이라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