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든 떠날 수 있어요. 제 직업이라면···" [강홍민의 굿잡]

2024. 10. 16. 0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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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가희 에세이 작가
백가희 에세이 작가



지난 한 주는 소설가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에 대한민국이 들썩했다. 수상소식을 접한 이들은 너도나도 서점으로 달려가 한강 작가의 책을 서둘러 구매했고, 미처 책을 손에 넣지 못한 이들은 서점원에 구애하듯 책 입고 날을 묻곤 했다.

손님의 발길이 끊긴 지 오래라던 오프라인 서점은 손님의 발길이 끊이질 않았고, 스마트폰을 손에서 놓지 않던 2030 직장인들은 한강의 책을 보란 듯이 들고 다녔다.

‘책의 힘’을 새삼 느끼게 된 한 주를 보내며 ‘언젠가 나도 책을 쓸 수 있을까’ 라는 희망을 마음 속 깊이 되새긴 이들도 하나둘씩 늘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정통문학에 담겨져야만 글을 쓸 수 있다는 태곳적 편견을 넘어 이제는 SNS나 플랫폼을 통해 자신만의 생각을 담아 낸 글로 작가의 등용문에 오를 수 있기 때문이다.

2016년 독립출판으로 스스로 책을 낸 백가희 작가 역시 그렇다. 자신이 켜켜이 써내려 간 글을 접한 이들의 응원을 밑거름으로 책을 펴내고 지금까지 작가의 삶을 이어오고 있다.
백 작가를 만나 작가의 세계를 들어봤다. 그의 고민까지도.

작가가 된 지 얼마나 되셨나요.
“벌써 10년이 다 돼 가네요. 2016년에 독립 출판을 한번 했었는데, 정식으로 출간한 건 2017년 4월에 낸 ‘당신이 빛이라면’이라는 책입니다.(웃음)”

독립 출판이라면 1인 출판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네. 2016년에 자비로 출판했었고, 이후 출판사랑 연결이 돼서 2017년에 첫 책을 냈어요. 그 책을 좋게 봐주신 분들 덕분에 여전히 작가를 하고 있습니다.”

독립 출판으로 책을 내야겠다는 계기가 있었나요.
“당시 SNS에 글을 쓴 게 시작이었어요. 원래 여행 가서 사진을 촬영하는 걸 굉장히 좋아하거든요. 여행지에서 찍은 사진만 올리려다보니 밋밋할 것 같아서 글도 함께 쓰기 시작했던 게 계기가 됐어요. 사진보다 글이 더 반응이 좋았거든요. 반응이 좋다 보니 저도 신이 나서 꾸준히 적다가 이 글을 엮어서 ‘글로 한번 내보자’는 마음에 독립 출판을 하게 됐어요.”

어떻게 보면 SNS가 작가로 데뷔를 하게 도와 준 거군요.
“그렇죠, SNS에 올린 글을 좋게 본 출판사가 있었고, 덕분에 책을 낼 수 있었으니까요. 다만 요즘은 다른 방향으로 데뷔하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은 종종 들어요. SNS로 데뷔했다는 타이틀이 제 발목을 잡을 때가 있더라고요. 어쩔 수 없이 범접할 수 없는 담벼락이 있는 기분이랄까요.”

 

"SNS로 시작된 글쓰기가 작가라는 직업으로 이어져···非정통문학이라는 편견, 열등감과 싸우기도" 



그 담벼락이 ‘깊이의 차이’라는 건가요.
“우선 저조차도 순수문학과 SNS 작가가 분리된다는 편견이 있어요. 이런 편견을 깨기 위해 SNS를 벗어나서 온전히 제 작품 활동으로 승부하는 게 어떨까 하는 고민을 이어오고 있어요.”

그런 편견을 마주하게 만드는 매개체는 무엇일까요.
“제 자신이에요. 혼자 느끼는 열등감이나 결핍 같은 거요. 좋아하는 작가님들에 비해 깊이가 없다고 느끼고 스스로 그런 관념에 저를 가둘 때가 있어요.”

그러면 요즘 최대 고민은 편견에 관한 것인가요.
“저에 대한 관념을 깨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해요. 이를테면 ‘저 작가는 여태까지 사랑 얘기만 해왔으니 다음 작품에서도 사랑에 관한 에세이를 쓸 것이다’ 라는 관념 같은 거죠. 계속해서 관념을 깨나가고 개발하는 것이 작가의 숙명이라 생각해요. 동시에 기존의 독자층을 잃지 않는 것도 중요하고요.”

SNS로 글을 쓰기 시작할 때, 작가 활동의 시작에 관한 기준점이 있었나요.
“저는 독립 출판을 기준으로 뒀어요. 독립 출판은 원고를 고르는 과정, 인쇄소부터 디자이너까지 모두 혼자 해야 하거든요. 그 정도의 시간과 노력을 쏟으려면 엄청난 동력이 있어야 하는 거죠. 그래서 독립 출판을 제가 작가가 되기 위한 기준점으로 뒀던 것 같아요.”

독립출판은 어떤 과정을 거쳐 책을 내게 되나요.
“우선 책의 키워드가 될 주제를 정하고 주제를 기반으로 목차를 구성합니다. 이후에 원고를 작성하는데 만약 기존의 원고가 있다면 그 중 내용을 선택해 배분해요. 배분한 후 교정·교열을 보고요. 디자인은 인디자인 프로그램을 통해 내지와 표지 디자인을 합니다. 물론 외부에 맡겨도 되지만 비싸고 스스로 해보는 것이 독립출판의 묘미죠. 그런 다음 인쇄소를 정해 맡기고 책에 쓰일 내지종이와 표지종이도 이때 선정합니다. 책이 나오게 되면 저 계정의 SNS를 통해 홍보하고, 서점에 문의해 책을 납품합니다.”

시간은 얼마나 소요됐나요.
“독립출판물의 경우는 3개월 정도 걸렸어요. 원고는 있는 상태여서 원고를 쓰는 시간은 들지 않았는데, 주제를 선정하고 목차를 구성하는데 오래 걸렸죠. 인쇄소에서 제작하는 기간은 2-3주가 필요했습니다.”

첫 책은 몇 부나 팔았나요.
“약 500권 정도 판매했어요.”

 

"트렌드를 파악하면서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중립성 작가에겐 중요···늘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가져야 좋은 글 쓸 수 있어"

작가라면 갖춰야 할 소양은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중립성이 중요하죠. 다만, 시류에 민감할 필요도 있어요. 그런 점에서는 기자랑 작가가 비슷하다고 생각해요. 세상을 포괄적으로 아우를 줄 알아야 하죠. 궁극적으로 책을 읽는 모든 독자가 소외감을 느끼지 않도록 쓰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글을 보며 소외감을 느낄 독자를 걱정하는군요.
“그럼요. 제 글을 읽는 누구도 소외감을 느끼지 않았으면 해요. 제 글을 보는 독자들에게 상처를 주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지만, 한쪽에 치우치지 않는 게 참 어려워요. 다양한 사람을 공감하게 만들고 중간점이 될 수 있도록 인문학적 소양도 필요하고요.”



다방면에 관심과 궁금증이 없으면 작가가 되기 쉽지 않겠군요.
“저도 궁금증이 없던 시절이 있었어요. 그땐 정말 쓸 말이 없더라고요. 주변에 관심을 두지 않으니 계속 제 얘기만 하게 되니까 안에 갇힌 기분이 들더라고요. 다양한 곳에 관심 있게 들여다볼 줄 알아야 글을 쓸 수 있다고 생각해요”

‘사랑’이라는 주제로 글을 많이 쓰는데, 사랑의 감정은 각기 다르잖아요. 다양한 독자들이 공감할 수 있게 쓰는 노하우가 있나요.
“글을 쓰기 전 사랑을 분류하는 연습을 해야 해요. 사랑도 종류가 많잖아요. 연인과의 사랑뿐만 아니라 동지애, 부모와의 사랑처럼 말이죠. 어떤 사랑들이 있는지 분류하고 풀어낼 줄 알면 여러 사람이 공감하는 에세이를 쓸 수 있지 않을까요.(웃음)”

그런 감각은 배워서 얻을 수 있나요.
“저도 배워서 얻을 수 있으면 좋겠어요. 가장 중요한 건 연습이라고 생각해요. 자기가 보고 느낀 단어들을 수집해 내 것으로 만들어야 해요. 그렇게 수집하고 내 방식대로 써본 단어를 에세이에 가져오는 방식이죠.”

요즘은 어떤 주제의 에세이가 대세인가요.
“1인 가구가 잘 먹고 잘사는 법에 대한 에세이가 인기예요. 요즘은 ‘역경과 고난을 겪고도 괜찮은 어른이 됐다, 잘 살아남았다’ 이런 조언을 담은 이야기를 좋아하는 것 같아요.”

 

"생계를 위해 시작한 아르바이트, 다양한 사람 만나는 창구로 활용돼 작품활동에도 도움 돼"

글은 언제 쓰나요.
“요즘엔 신작으로 낼 여행 에세이를 쓰고 있어요. 또 메일로 한 편의 글을 보내는 메일링 연재 서비스도 꾸준히 하고 있고요. 월·수·금요일은 고정적으로 이메일로 보낼 글을 씁니다. 글쓰기도 루틴이 중요해서 매일 아침 9시에 일어나 글을 쓰려고 해요. 메일링 서비스를 위해 쓰는 글은 하루에 4시간 정도 걸리는 것 같아요. 그리고 연재가 없는 화요일과 목요일은 다른 제 작품을 구상하고 쓰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어요. 아르바이트하고 있는데, 일을 하지 않는 시간에는 틈틈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어떤 아르바이트인가요.
“요즘은 고깃집에서 일을 해요. 처음에는 급전이 필요해서 갔는데 일을 하다 보니 색다른 즐거움을 얻고 있죠. 사람 만나는 걸 좋아하고, 작품을 위해서라도 사람과 주변을 잘 관찰해야 하거든요. 아르바이트하면서 어른들과 대화도 많이 하고 다양한 사람을 보다 보니 저에게 잘 맞아요.(웃음)”

SNS 글쓰기로 시작했는데, 요즘엔 어떤 방식으로 책을 내나요.
“투고하는 방법도 있고, SNS에 게재하는 방법도 있어요. 개인적으론 출판사에서 제안하는 메일이 오면 고민하는 편이에요. 출판사와 미팅을 해서 의견이 잘 맞으면 계약한 후 1차로 샘플 원고를 보내요. 책에서 대표가 될 만한 글 몇 개를 편집자님한테 보내는 과정이죠. 샘플 원고를 보고 방향성 조율을 거친 다음에 세부적으로 글을 써요. 만약 원고가 이미 있는 상태면 원고 분류 작업을 하게 돼요. 이 과정이 제일 오래 걸립니다.(웃음)”

수입은 어떤가요.
“우선 수입의 기준은 ‘쇄’인데요. 1,000부가 1쇄인 경우도 있고 3,000부가 1쇄인 경우도 있지만, 요즘은 대게 2,000부로 할 때가 많아요. 책을 찍고 나면 출판사와 계약한 것대로 분배해요. 나누는 퍼센트는 작가마다 다를 거예요. 또 출판 수입을 분기별로 주는 곳이 있고, 책이 1쇄 발행될 때마다 주는 곳도 있어요. 회사원처럼 월급이 들어오거나 그러진 않아서 주기적인 수입이 되진 않아요.”

작가로서의 직업적 장단점은 뭐가 있나요.
“전업 작가의 장점은 시간이 자유롭고 언제든 영감을 떠올리기 위해 떠날 수 있다는 점이죠. 또 쓰고 싶은 글을 얼마든지 쓸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에요. 다만 시간이 자유롭기 때문에 오히려 스스로를 통제할 수 있어야 한다는 건 단점이라고 생각해요. 어떤 일이든 계획을 잘 세워야 하잖아요. 작가도 마찬가지예요. 시간표를 잘 짜야 좋은 글을 쓸 수 있습니다.”

‘작가의 직업병’도 궁금하네요.
“단어를 뜯어보는 습관이 있어요. 특히 노래를 들을 때 가사에 집중하는 편이에요. 가사 속 한 문장, 한 단어를 세세히 뜯어보면서 몰입해요. 그렇게 꽂힌 단어는 한 동안 잊혀지질 않고 오래 머릿속에 남아 있어요.”

요즘 소설도 챗GPT가 쓰는 시대잖아요. 미래 에세이 작가는 살아남을까요.
“전 무조건 살아남을 거로 생각해요. 우리는 모두 인생의 주인공이 나라고 믿고 살기 때문에 내 이야기를 하고 싶은 사람은 계속해서 나오지 않을까요. 그러나 단순히 내 얘기만 하기보다는 독자들에게 공감 받을 수 있는 이야기, 교류할 수 있는 글을 쓰는 작가가 살아남겠죠.”



강홍민 기자 khm@hankyung.com 
[서지원 대학생 기자 / 사진 서범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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