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트넘 옥죄는 '스퍼지(Spursy)'의 공포. 이번 시즌 역대급 '스퍼지'로 마칠까.

"하이, 메이트. 혹시 스퍼지(Spursy)라는 단어의 정의가 무엇일까요?"

지난 4월 27일 목요일 영국 런던 토트넘 홋스퍼 스타디움 앞. 토트넘과 맨유의 경기를 두어 시간 앞둔 시점이었다. 이 경기를 앞둔 팬들의 예상을 카메라에 담기 위해 이리저리 물어보고 있었다. 갑자기 빗방울이 굵어졌다. 잠시 경기장 바깥 벽면 아래로 향했다. 비를 피할 수 있는 공간이 있었다. 사람들이 비를 피하고 있었다. 그곳으로 향했다.

영국은 비가 자주 내린다. 한국과는 다르다. 한국은 비가 한 번 내리면 오랫동안, 그리고 줄기차게 내린다. 영국은 하루에도 비가 내렸다가 그쳤다가를 반복한다. 내릴 때도 찔끔찔끔 내린다. 얼굴에 뿌리는 미스트처럼 내리는 때도 많다. 한국분들이 영국에 와서 놀라는 것 중 하나는 '비가 올 때 우산을 쓰지 않는 것'이다. 우산을 써도 의미가 없다. 미스트 같은 비이기에 우산을 써도 물기에 노출되는 것은 매한가지다. 여기에 20분 정도 지나면 비가 그친다. 잠시 기다리면 비가 그치고 햇살이 모습을 드러낸다. 물론 한 30분 지나면 다시 비가 오기는 하지만.

이야기가 샜다. 다시 돌아온다. 비를 피하고 있는 와중, 옆에 중장년 아저씨 둘이 서 있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그리고 그 질문은 던졌다.

'스퍼지.'

잠시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러더니 웃음을 띠며 답을 했다.

"희망을 줬다가 결국에는 그 희망마저 빼앗아 간다는 뜻이에요. 늘 그렇지만 올 시즌도 또 그 스퍼지에 속는 느낌이에요."

그날 경기에서 토트넘은 맨유와 2대2로 비겼다. 2골을 먼저 내준 후 막판에 2골을 따라붙었다. 토트넘 선수들과 팬들은 역전승을 떠올렸다. 희망 회로를 돌렸다. 그러나 결국 2골에서 무산됐다. 희망은 다시 뺏기고 말았다. 역시 '스퍼지'였다.

사진출처=데일리메일

'콥(KOP) 4... 스퍼지(SPURSY) 3'

5월 1일 자 데일리메일 46면과 47면. 스퍼지가 다시 등장했다. 토트넘은 안필드 원정에서 제대로 '스퍼지'했다. 경기 시작 15분만에 3골을 내줬다. 전반 3분 커티스 존스, 5분 루이스 디아스, 15분 모하메드 살라에게 연속골을 내줬다 악몽이 재현되는 듯했다. 뉴캐슬 원정 1대6 패배의 악몽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토트넘이 반격했다. 전반 40분 해리 케인이 한 골을 만회했다. 후반 32분 손흥민이 두 번째 골을 넣었다. 희망을 심었다. 기적이 현실로 되는 듯했다. 후반 추가시간 손흥민의 프리킥을 히샬리송이 헤더로 연결, 동점 골을 만들었다. 토트넘 선수들 그리고 원정 응원을 온 토트넘 팬들은 열광했다.

그러나 스퍼지. 1분 후 거짓말처럼 결승 골을 내줬다. 디오고 조타가 골을 넣었다. 토트넘 선수들은 고개를 숙였다. 토트넘 팬들도 마찬가지였다. 희망을 현실로 만들어냈지만, 다시 그 희망이 빼앗겼다.

데일리메일은 굳이 스퍼지를 콥과 대비시키면서 토트넘 팬들의 속을 긁었다. 역사상 리버풀은 기적 같은 역전 승리를 많이 거두었다. 그 의미를 담겨있는 콥은 리버풀과 그 팬들을 일컫는 말이기도 하다. 튀르키예 이스탄불에서 열린 2004~2005시즌 유럽챔피언스리그(UCL) 결승전이 더 콥의 전설로 남아있다. 당시 리버풀은 AC밀란에게 전반에만 3골을 내줬다. 그리고 후반 들어 3골을 넣으며 따라붙었다. 연장을 지나 승부차기로 넘어갔다. 예지 두덱의 선방에 힘입어 리버풀이 AC밀란에 승리했다. 그때와 같이 이 경기도 콥이 기적 같은 승리를 했다는 의미였다. 그리고 토트넘은 스퍼지 능력을 뽐내며 허무하게 패배했다.

스퍼지를 콜린스 영어 사전에서 검색했다. 사실 스퍼지는 토트넘의 애칭인 '스퍼스'에서 나왔다. '스퍼스스러운' 혹은 '스퍼스답다'라는 뜻이 내포되어 있다. 콜린스 영어 사전의 정의는 다음과 같다.

A Spursy performance, is to have success in reach but to ultimately chuck it away.

스퍼지한 퍼포먼스. 성공으로 이어져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중단되는 것.

추가 정보가 하나 더 있다.

This word is associated to Tottenham Hotspur FC, you will find numerous examples of this on twitter, from supporters of most if not all top flight teams.

이 단어는 토트넘 홋스퍼 FC와 연관이 있다. 트위터상에서 최고의 결과를 내지 못한 팀의 서포터들에서 많은 예시를 찾을 수 있다.

챗 GPT에도 물어봤다.

'Spursy의 뜻을 알려달라'

"Spursy"는 축구 용어로, 특히 토트넘 홋스퍼 FC(Tottenham Hotspur FC)와 관련하여 사용되는 표현입니다. 이 용어는 토트넘 홋스퍼가 경기에서 좋은 성과를 거둘 것으로 기대되는 상황에서 예상치 못한 실패를 겪거나 좋은 위치에서 좌초하는 경향을 가리킵니다.

"Spursy"는 토트넘 홋스퍼의 별명인 "Spurs"에서 유래되었습니다. 토트넘 홋스퍼는 종종 과거의 기대에 못 미치는 경기 결과를 내며 팬들에게 실망을 안기기로 유명했습니다. 그래서 "Spursy"라는 용어는 토트넘 홋스퍼의 이러한 경향을 가리키는 것으로 사용되고, 일반적으로는 예상치 못한 실수나 실패로 인해 좋은 기회를 놓치는 상황을 묘사하는 용어로도 사용됩니다.

그러므로 "Spursy"라는 표현은 실패나 실망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토트넘은 잘 나가다가 고꾸라지곤 한다. 특히 중요한 경기나 큰 대회에서 뜻을 달성하지 못할 때 어김없이 '스퍼지'가 나온다.

가장 컸던 '스퍼지'의 사례는 2019년 6월 1일 오후 9시. 스페인 마드리드 에스타디오 메트로폴리타노였다. UCL 결승에 토트넘이 올랐다.

토트넘의  결승 진출은 예상 밖이었다. 조별리그에서 바르셀로나, 인테르, PSV에인트호벤과 배치됐다. 16강에서는 도르트문트, 8강에서 맨시티와 격돌했다. 4강에서는 아약스를 만났다. 대부분 전문가는 토트넘의 열세가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러나 토트넘은 이들을 눌렀고, 한 발 한 발 상위 라운드로 올랐다. 그리고 1962년 4강 진출 이후 처음으로 결승 무대를 밟았다.

그러나 결승이 시작되자마자 '스퍼지'가 발동했다. 경기 시작 46초만에 무사 시소코가 페널티 박스 안에서 핸드볼 파울을 범했다. 사디오 마네가 올린 크로스가 시소코의 팔에 맞아버렸다. 페널티킥이었다. 모하메드 살라가 골로 연결했다. 경기 시작 1분만에 리버풀이 앞서나갔다. 이후 토트넘은 분전했지만, 리버풀을 뚫어내지 못했다. 후반 42분 디보크 오리기에게 추가 골을 내주면서 0대2로 졌다.

이 외에도 많은 스퍼지의 사례들이 있다. 2001년 맨유를 이끌던 알렉스 퍼거슨 감독은 화이트하트레인에서 열린 원정 경기에서 전반에만 3골을 내줬다. 0-3으로 끌려가고 있던 상황에서 하프타임이 도래했다. 퍼거슨 감독은 선수들에게 "제군들, 저들은 그냥 토트넘일 뿐이야"라고 말했다. 그리고 맨유는 후반에 5골을 넣으며 5대3으로 승리했다.

2005~2006시즌. 토트넘은 시즌 37라운드까지 4위를 달리고 있었다. 5위 아스널에 1점 차 앞섰다. 마지막 38라운드는 웨스트햄 원정이었다. 경기를 하루 앞두고 불운이 찾아왔다. 마이클 캐릭, 로비 킨, 에드가 다비즈, 아론 레넌, 마이클 도슨 등 주요 자원들이 복통을 호소했다. 저녁으로 먹은 라자냐와 스파게티가 탈이 난 것이다. 그 상황에서 경기가 열렸고 토트넘은 1대2로 졌다. 그 사이 아스널이 승리했다. 마지막 라운드에서 아스널이 4위, 토트넘이 5위로 떨어졌다. '라자냐 게이트'로 명명된 '스퍼지'의 또 다른 예시다.

2015~2016시즌 토트넘은 리그 우승의 꿈에 부풀어 올랐다. 맨시티, 맨유, 리버풀 등이 계속 고꾸라졌다. 유럽 대항전에 나서지 못했던 레스터시티가 선두 질주를 이어갔다. 토트넘도 따라붙었다. 34라운드 스토크시티 원정에서 4대0으로 승리했다. 레스터시티와의 승점차를 5점으로 좁혔다. 그러나 35라운드 웨스트브로미치와의 홈경기에서 1대1로 비겼다. 레스터가 그 라운드에 승리하며 승점 차는 7점으로 벌어졌다.

운명의 36라운드 첼시 원정. 토트넘은 9장의 옐로카드를 수집하는 등 추태를 보였다. 경기는 2대2로 비겼다. 향후 이 경기는 브릿지의 전투라고 명명됐다. 승점 1점 추가에 머물면서 토트넘의 우승 희망은 사실상 사라졌다. 경기도 망치고 매너도 꽝이었다. 37라운드 사우스햄턴과의 홈경기. 토트넘은 1대2로 졌다. 이기기만 해도 2위는 확정할 수 있었다. 그러나 지면서 2위 자리가 2위 자리가 위협받았다.

그리고 38라운드 뉴캐슬 원정. 2위 토트넘과 3위 아스널의 승점 차는 2점이었다. 토트넘은 지면 안 되는 상황이었다. 비기면 2위를 할 수도 있었다. 뉴캐슬은 강등이 확정됐다. 의지가 크지 않았다. 그러나 토트넘은 무너졌다. 1대5로 졌다. 아스널이 이겼다. 아스널이 2위, 토트넘은 3위였다. 토트넘 팬들은 억장이 무너졌다. 시즌 내내 우승 희망이 이어갔다. 시즌 말미 패배를 거듭했다. 우승이 물 건너갔다. 하나의 희망이 남았다. 아스널보다 위에 있다는 것에 기댔다. 그것마저도 무너졌다. 결국 아스널이 2위, 토트넘이 3위가 됐다. 역시 '스퍼지'였다.

그리고 2022~2023시즌. 1경기 남았다. 이미 이번 시즌 역시 '스퍼지'가 발동됐다. 초반 기대는 컸다. 2019~2020시즌 이후 3시즌만에 UCL에 올랐다. 선수 영입도 쏠쏠했다. 이반 페리시치, 히샬리송, 이브스 비수마, 클레망 랑글레 등을 데려왔다. 더블 스쿼드 구축도 가능한 상황이었다.

희망은 이내 사라졌다. 콘테 감독이 3-4-3 전술은 구닥다리였다. 경기 내용도, 결과도 모두 제대로 챙기지 못했다. 발암 경기들이 이어졌다. 콘테 감독은 3월 A매치 기간 중 경질됐다. 그리고 뉴캐슬 원정에서 1대6으로 대패하며 콘테 감독의 분신이었던 크리스티안 스텔리니 코치도 경질됐다. 라이언 메이슨 코치가 임시 감독을 맡았지만, 능력과 경험 부족을 여실히 드러냈다. 5월 20일 브렌트퍼드와의 홈경기에서 1대3으로 지면서 또 한 번 토트넘 팬들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이제 한 경기 남았다. 리즈 유나이티드 원정이다. 이 경기 결과에 따라 토트넘의 2022~2023시즌은 역대급 '스퍼지' 시즌이 되느냐 마느냐가 결정된다. 바로 유럽 대항전 진출 여부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의 유럽 대항전 진출 기준은 다음과 같다.

UCL(유럽챔피언스리그) : 리그 1~4위(4팀)

UEL(유로파리그) : 리그 5위팀 & FA컵 우승팀(2팀)

UECL(유로파컨퍼러스리그) : 리그컵 우승팀(1팀)

여기서 변수가 발생한다. FA컵 우승팀이 리그 UCL 진출권을 얻을 경우, FA컵 우승팀에게 배당되는 UEL 진출권은 리그 차순위로 넘어간다. 마찬가지로 리그컵 우승팀이 UCL 혹은 UEL 진출권을 얻는 경우, 리그컵 우승팀에게 배당되는 UECL 진출권은 리그 차순위로 넘어간다.

올 시즌을 보자. 1위 맨시티, 2위, 아스널 그리고 현재 3위 뉴캐슬은 UCL 진출을 확정했다. 4위 맨유(승점 69)와 5위 리버풀(승점 66)이 남은 한 장의 UCL 진출권을 놓고 경쟁 중이다. 현재로서는 맨유의 UCL 진출 가능성이 높기는 하다. 맨유는 리버풀보다 1경기를 덜 치른 상태다. 주중 첼시전에서 무승부만 거둬도 4위를 확정한다.

이렇게 되면 FA컵 우승팀에 배정되는 UEL 진출권은 자연스럽게 리그 차순위인 6위에게 향했다. 현재 FA컵 결승에는 맨시티와 맨유가 올라가 있다. 맨유가 4위를 확정한다면 양 팀 모두 UCL에 나가게 된다. FA컵 결승에서 누가 우승을 하든 UEL 진출권은 차순위로 가게 되는 구조다.

맨유가 5위로 떨어진다고 해도 UEL 진출권에는 큰 변화는 없다. 맨유가 FA컵에서 우승하든 우승하지 않든 맨유와 리그 차순위 팀이 UEL에 나간다. UECL 진출권도 마찬가지다. 리그컵 우승팀 맨유는 이미 현재 UEL 이상의 진출권을 확보했다. 이 때문에 리그컵 우승팀에게 부여된 UECL 진출권은 리그 차순위로 향한다. 즉 리그 7위다.

토트넘은 현재 승점 57로 8위에 올라있다. 7위 애스턴빌라(승점 57)에 1점 뒤져있다. 토트넘이 바라볼 수 있는 최대 순위는 7위밖에 없다. 7위가 되어야 UECL에라도 나설 수 있다. 7위가 되려면 일단 승리하고 애스턴 빌라의 경기 결과를 기다려야 한다. 물론 무승부를 거두고 애스턴 빌라가 져도 7위가 될 수는 있다. 그러나 승리가 더욱 7위 등극 확률이 높다.

문제는 리그 최종전 대진이다. 토트넘은 리즈 원정을 떠난다. 리즈는 현재 승점 31. 리그 19위를 달리고 있다. 강등 위기다. 17위 에버턴(승점 33)을 따라잡으려면 승리밖에 없다. 토트넘과의 홈경기에서 선수들 그리고 팬들 모두 한 몸이 되어 달려들 수 밖에 없다. 꼭 승리해야 생존하는 선수들을 상대하는 것이 가장 힘들다. 토트넘으로서는 부담스러운 상황이 아닐 수 없다.

만약 토트넘이 다음 시즌 유럽 대항전에 나가지 못한다면, 팀 전체가 큰 혼란에 빠질 수 있다. 토트넘이 유럽 대항전에 나가지 못했던 가장 최근 시즌은 2009~2010시즌이다. 13시즌만에 유럽에 나가지 못한다. 팀 전체의 자존심에 상처가 날 수밖에 없다.

여기에 선수들의 대거 이탈이 일어날 수도 있다. 당장 해리 케인이 문제다. 그렇지 않아도 벌써 케인의 이적 여부에 관한 이야기들이 나오고 있다. 토트넘은 지난 시즌에 이어 '낫포세일'을 외치고 있다. 그러나 토트넘을 보는 팬들의 시선은 이제 곱지 않다. 잉글랜드 팬들에게 케인은 보물과도 같다. 최고 스트라이커 케인은 프로 데뷔 후 아직 단 한 번의 우승컵도 들어 올리지 못했다. 동정표가 더욱 쏠릴 수 밖에 없다. 케인이 만에 하나 이탈한다면 손흥민 등 다른 선수들도 흔들릴 수 밖에 없다. 팀 전체가 와해할 수도 있다.

브렌트퍼드와의 홈경기가 끝났을 때였다. 취재석 앞에 앉아있던 한 어린이는 엄마 품에 안겨 눈물을 흘렸다. 관중석 곳곳에서 우는 어린이 팬들의 모습이 꽤 많이 보였다.

과연 이들 어린이 팬들의 눈물에 토트넘이 조금이라도 보답해줄 것일지. 아니면 여전히 이어지는 '스퍼지'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고 '역대급 스퍼지'로 시즌을 마칠 것인지.

리즈 원정은 조금씩 다가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