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 바쳐 일한 소방관, 우울증…"교대근무 수면부족→트라우마 심했을 것"

정심교 기자 2025. 8. 21. 1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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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심교의 내몸읽기]
(서울=뉴스1) 장수영 기자 = 핼러윈데이인 31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 일대에서 소방관 및 의용소방대가 인파 관리를 위해 순찰을 하고 있다. 2024.10.31/뉴스1 Copyright (C)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사진=(서울=뉴스1) 장수영 기자

이태원 참사 현장에 출동하고 우울증을 앓던 소방관이 결국 숨진 채 발견된 데 대해 대중의 안타까움이 더하고 있다. 특히 이태원 참사(2022년 10월 29일)가 발생한 지 1000여일이 지난 시점에 이런 일이 발생한 것을 두고 "소방관은 교대근무로 인한 수면 부족, 만성 피로에 시달리는데, 이런 게 해결되지 않았다면 PTSD(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와 우울증을 관리하기 어려웠을 것"이라는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의 소견이 나왔다.

한양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이건석 교수는 21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외상 후 스트레스 반응은 반드시 사고 직후에만 나타나는 게 아니"라며 "진단기준(DSM-5)에도 '지연 발현형 PTSD'가 있는데, 6개월 이후에야 증상이 본격적으로 드러나기도 하고 몇 년이 지나서야 악화하는 경우도 있다"고 설명했다.

앞서 20일 경찰 등에 따르면 소방관 A(30)씨는 이날 낮 12시30분께 경기 시흥시 금이동 수도권 제1순환고속도로 인근 교각 밑에서 발견됐다. A씨는 2022년 이태원 참사 사건 현장에 출동했다가 우울증 진단을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실종 직전 그는 가족과 친구들에게 미안하다는 내용의 메모를 남긴 것으로 알려졌다.

소방관은 일반인보다 참사 현장, 동료 순직, 시신 수습 등을 많이 접할 수밖에 없다. 이런 사건을 반복하면 스트레스가 쌓여 PTSD 증상이 점점 심해질 수 있다. 여기에 교대근무로 인한 '수면장애'와 '만성 피로'가 PTSD로부터의 회복을 방해하면서 정신건강이 더 빠르게 악화했을 것이란 게 그의 소견이다. 특히 소방관에게 흔한 '수면 부족'은 PTSD·우울증·불안장애 위험을 크게 높이는 요인으로 꼽힌다.

소방관 A씨가 진단받았다는 우울증은 PTSD와 어떤 관련성이 있을까. 이건석 교수는 "PTSD와 우울증은 흔히 같이 나타난다"면서 "외상 경험으로 인해 불면·악몽·과각성이 생기면 우울 증상이 동반되기 쉽고, 이와 반대로 우울감이 심해지면 외상 기억에 더 취약해진다"고 설명했다.

여기에 소방관처럼 교대근무로 인한 만성 수면 부족 상태가 이어지면 우울·불안 증상이 악화하고, PTSD 증상도 조절하기 어렵다. 실제로 국내 소방관 대규모 조사에서도 PTSD와 우울, 수면장애가 함께 나타나는 경우가 많았고, 이 경우 자살 위험이 더 높았다. 결국 PTSD와 우울증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위험을 증폭하는 관계인 것이다.

(서울=뉴스1) 장수영 기자 = 핼러윈데이인 31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 해밀톤호텔 옆 이태원참사 사고 골목으로 시민들이 지나가고 있다. 2024.10.31/뉴스1 Copyright (C)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사진=(서울=뉴스1) 장수영 기자

트라우마를 겪었을 때 PTSD로 이행하지 않기 위한 골든타임은 얼마나 될까. 이 교수는 "사고 직후 1개월 이내가 골든타임"이라며 "이 시기에 안전을 확보하고, 휴식을 취하며, 지지체계를 연결해 회복할 기반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소방관은 교대근무 중이라도 충분한 수면을 보장받을 수 있는 근무환경이 조성돼야 한다는 것. 그리고 사고 발생 1개월 이내 선별검사를 실시해 PTSD 발생 위험군을 찾아내고, 증상이 뚜렷하면 조기 개입이 필요하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소방관에게 강제로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하게 하거나, 집단적으로 사건을 세세히 회상하게 하는 방식 즉, '심리 디브리핑'은 PTSD로부터의 회복에 권장되지 않는다. 오히려 세세하게 떠올리는 과정에서 재외상화가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건석 교수는 트라우마를 겪은 소방관에게 해당 사건 직후 '심리적 응급처치(PFA)'를 실시하는 게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심리적 응급처치란, 대형 재난이나 참사 직후 외상 경험을 한 사람을 위해 사고 직후 심리치료를 바로 시작하지 않고, 안전을 보장한 채 기본적인 욕구(휴식·음식·수면 등)를 충족시키며, 가족·동료·지역사회와 연결해 회복 기반을 마련하는 방식을 가리킨다. 이 교수는 "심리적 응급처치는 무너진 사람을 당장 치료하는 게 아닌, '회복할 기반을 마련해 주는 응급 심리지원'"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소방관들의 정신건강을 위해 정례적인 정신건강 선별검사와 장기 추적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특히 대형 사고 발생 1개월 후에는 전수 조사가 이뤄져야 하고, 고위험군은 정밀 평가와 치료로 연결돼야 한다는 것이다. 이 밖에도 △외상 중심 치료에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시스템 마련 △비밀이 보장된 상담 창구 △야간·교대 근무자도 이용할 수 있는 진료 체계 △동료 상담 체계 강화 △가족 교육(자살 위험 신호 조기 감지) △사고 직후 의무 휴식, 근무 조정 △점진적 복귀 프로그램 등을 제도화할 것을 제언했다.

이 교수는 "트라우마 당사자가 치료받는다고 해서 곧바로 업무에서 배제되거나 불이익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환경이 조성돼야 한다"며 "소방관들이 진료와 근무를 병행할 수 있고, 치료받는 게 오히려 회복과 업무 지속에 도움 된다는 인식을 조직 차원에서 공유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시흥=뉴스1) 김성진 기자 = 이태원 참사 현장 지원 이후 우울증을 앓던 30대 소방대원이 실종된 지 10일 만에 숨진 채 발견됐다. 20일 경찰에 따르면 이날 오후 12시30분쯤 경기도 시흥 금이동 수도권 제1순환고속도로 인근 교각 아래에서 인천 소재 소방서 소속 A씨(30)가 숨져 있는 것을 경찰관이 발견했다. A씨는 2022년 10월 이태원 참사 현장에 지원을 나간 뒤 같은 해 11월과 12월 4회에 걸친 우울증·불안 검사에서 수면 질 저하 등 진단을 받은 것으로 파악됐다. 사진은 이날 오후 A씨가 숨진 채 발견된 경기도 시흥 수도권 제1순환고속도로 교각 아래의 모습. 2025.8.20/뉴스1 Copyright (C)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사진=(시흥=뉴스1) 김성진 기자
Tip. 심리적 응급처치의 5가지 특징
① 안전(Safety): 위험으로부터 물리적·심리적으로 보호하기
② 진정(Comfort): 불안을 줄이고 안정감을 회복할 수 있게 돕기
③ 연결(Connection): 가족·동료·공식 지원체계와 이어주기
④ 정보 제공(Information): 정상적 반응과 회복 가능성을 설명해 불안을 낮추기
⑤ 지원 접근(Access to support): 필요한 경우 전문 치료나 지역사회 자원으로 연결하기

정심교 기자 simkyo@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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