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스피싱 수거책에 무죄 준 법원…왜

박수현 2025. 8. 30. 0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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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계 위해 한 고액 퀵서비스 알바, 알고 보니 피해자 카드 배달
법원 "카드인 줄 알고 전달했다는 증거 없어"
보이스피싱 (PG) [장현경 제작] 일러스트

(서울=연합뉴스) 박수현 기자 = 펜션 사업 실패로 생활고를 겪던 A(46)씨는 지난해 7월 '퀵서비스 아르바이트를 모집한다'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글을 봤다.

'초보자 가능', '일당 당일 지급' 등 생활비가 필요했던 A씨에게 절실한 공고였다. 모집 글에 있는 링크를 클릭하자 '김 실장'과 연결됐다.

김 실장은 더 솔깃한 말을 했다. "회사와 관련된 서류를 배송하는 퀵 서비스 업무"라며 "건당 5만원씩 당일 지급이 가능하다"고 A씨를 꾀었다.

A씨가 일을 하겠다고 하자 김 실장은 특정 메신저를 깔라 했다. 그러고는 메신저로 서울 영등포구 한 아파트에서 다른 사람 명의로 된 박스를 가져오라는 일감을 줬다.

A씨는 여동생의 차를 끌고 가서 박스를 수거했고, 이어진 지시대로 관악구 한 지하철역 앞에서 이름 모를 40대 남성에게 전달했다.

그렇게 3차례 일감을 받아 한 A씨는 어느 날 보이스피싱 범죄 조직의 일원으로 약식 기소됐다.

짭짤한 아르바이트인 줄 알았던 퀵 서비스 일이 알고 보니 피싱 조직의 '수거책' 역할이었던 것이다.

그가 수거한 박스에는 '예금담보 대출이 가능하다'는 말에 속은 피해자의 체크카드가 들어있었다. 카드에 연결된 계좌는 실제 범죄에 사용됐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정식 재판을 청구한 A씨는 법정에서 자신은 피싱 범행에 가담하는 줄 몰랐다고 항변했다.

하지만 검찰은 업무 방식이 굉장히 이례적인 점, 단순 배송이라는 난이도에 비해 액수가 높은 점 등에서 A씨가 범죄 관련성을 충분히 인식했을 거라고 반박했다.

30일 법조계에 따르면 사건을 맡은 서울남부지법 형사11단독 정성화 판사는 범행의 고의가 인정되지 않는다며 지난 22일 A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정 판사는 "A씨가 접근 매체(카드)를 전달한다는 인식이나 의사를 갖고 박스를 전달했다는 점을 확인하거나 추단할 증거를 전혀 찾을 수 없다"고 밝혔다.

특히 A씨가 조사 중 "택배 박스가 무거워 마약 같은 이상한 물건이 아니냐고 물어봤다"고 진술하고, 법정에서도 "박스가 묵직해 카드가 들어있을 거라 생각 못 했다"고 말했다는 점을 종합할 때 범죄 사실에 대한 증명이 없다고 판단했다.

검찰은 항소 여부를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suri@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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