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일본에서 유행하는 스트릿 패션

안녕!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인스타그램을 켜는 김고운이다. 최근에 가장 즐겨보는 릴스는 일본 스트릿 패션을 소개하는 영상이다. 길을 걷는 멋쟁이에게 양해를 구하고 옷의 정보를 물어보는 흔한 방식. 흔하지만, 평소 일본 멋쟁이들의 옷차림에 관심이 있었던 터라 이런 영상을 만나면 계정에 들어가 다른 영상들까지 흘러가듯 보게 된다. 그도 그럴 것이 그들이 인터뷰하는 장소가 일본에서 옷깨나 입는다는 사람들이 모이는 도쿄 시부야, 하라주쿠, 시모키타자와 등지였기 때문이다. ‘존 로렌스 설리반?’ ‘히스테릭 글래머?’ 들어보지도 못했던 브랜드가 나오면 호기심은 더욱 커졌다.

그래서 준비했다. 일본 스트릿 패션 특집. 내가 팔로우했던 계정 @japan_streetstyle_, @pickyou.app, @yz.korea, @_showmeyourcloset_이 네 계정의 최근 게시물 약 50개 정도를 보고 등장하는 브랜드를 아우터, 상의, 하의, 가방, 신발, 액세서리로 나누어 엑셀에 정리하고 순위를 매겨보았다. 물론 오가는 수많은 인파 중에서 선별한 사람들이기 때문에 이 데이터를 ‘일본 스트릿 패션의 특징’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이들이 입는 브랜드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재미있을 것이다.


[1]
@japan_streetstyle_

먼저 소개할 계정은 @japan_streetstyle_. 정리한 표를 보면 들쑥날쑥한 행 길이가 눈에 띈다. 하의나 신발 행의 개수는 많은 반면 아우터, 가방, 액세서리는 행의 길이가 짧다. 이유가 뭘까? 아우터를 입지 않고 가방을 들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다. 빈티지 제품이라 입은 사람도 브랜드를 모르기 때문이다.

일본 멋쟁이들은 자신에게 어울리는 빈티지 제품을 잘 찾고, 활용해서 입는다. ‘이런 것도 팔아?’라는 생각도 여러 번. 특히 아우터나 가방은 신발이나 상의처럼 직접 몸에 닿지 않고 오래 착용할 수 있기 때문에 빈티지 제품이 많았다. 구매 경로도 가지각색이다. “저기 구제샵에서 샀어요”, “친구 꺼 빌려 입고 나왔어요.”, “이거 아빠가 젊었을 때 입던 재킷이라 브랜드는 잘 모르겠어요.”, “이거 할머니 가방인데 요즘은 제가 메고 다녀요.”, “메루카리(일본 최대 중고거래 플랫폼)에서 샀어요.” 입고 있는 옷의 브랜드가 착용자의 패션 센스를 드러내는 척도가 되는 요즘, 옷 자체만 보고 구매하여 자신만의 방식으로 입는 이들의 모습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2]
@pickyou.app

@pickyou.app은 ‘pickyou’라는 일본 중고거래 플랫폼에서 운영하는 계정이다. 일본 멋쟁이들은 정말 다양한 브랜드를 소비한다. 겹치는 브랜드가 거의 없다. 아우터 행을 보면 등장 횟수가 모두 한 번뿐이다. 인터뷰이 모두가 다른 브랜드를 착용했다는 뜻이다. 신발의 경우 나이키가 네 번으로 비교적 많이 나왔지만 다른 브랜드와 콜라보 제품이었고 모델, 색상 모두 달랐다. 유행이란 게 없는 건가? 싶을 정도.

한 번씩 등장한 브랜드를 보면 실루엣이 독특해 난해한 옷도 종종 볼 수 있었다. 코스튬 플레이 복장이나 기괴한 분위기를 풍겨 언뜻 보기에 대중성이 떨어진다고 생각되는 옷들. 대부분 일본 디자이너 브랜드의 옷이었다. 일본은 언더그라운드 문화가 두텁기 때문에 자국 내 마니아층을 판매 대상으로 한 다양한 브랜드가 존재할 수 있다. 시즌 별로 재빠르게 변하는 거대한 유행에 흔들리지 않고 말이다. 그래서 옷은 언제 소개해줄 건가 궁금해하는 독자들이 있을 텐데, 곧 나오니 조금만 기다려보자.


[3]
@yz.korea

@yz.korea는 시모키타자와를 중심으로 일본 패션 문화를 한국에 소개한다. 개인적으로 자라가 각종 분류에서 1등을 차지한 것이 신선했다. 이제까지 일본 패션이라고 하면, 장인 정신을 기반으로 하여 옛 전통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는 슬로우 패션에 강점이 있고 널리 소비된다고 생각했다. 옷의 품질이 좋은 만큼 가격도 어느 정도 높게 형성되어 있는 그런 옷들. 그런데 패스트패션의 대명사인 자라라니. 실제로 이들은 10만 원 이하의 저렴한 옷을 활용하여 자신을 드러내고 뾰족한 취향을 표현한다. 뒤에서 전체 계정을 종합한 순위를 소개하겠지만 자라는 네 계정 모두에서 가장 많이 등장한 브랜드다.


[4]
@_showmeyourcloset_

일본 현지 패션 크리에이터가 운영하는 @_showmeyourcloset_을 보자. 다른 계정에 비해 신발과 액세서리의 종류가 많은 것이 눈에 띈다. 액세서리는 대부분 안경, 선글라스다. 손과 목이 허전한 멋쟁이들은 없었지만 표에 반영되지 않은 이유는 아우터와 가방 행 길이가 짧은 이유와 같다. 이런 액세서리야말로 물려받기 좋기 때문에 그래서 브랜드를 모르겠다는 답변이 많았다.

실제로 지금 일본의 젊은층이라고 할 수 있는 90-00년대생은 일본의 버블 경제가 꺼지고 장기 불황 시기에 태어났다. 반면 그들의 부모 세대는 일본이 미국의 아성을 위협할 정도로 호황이던 시기에 청년 시기를 보냈다. 이런 역사의 특수성 때문이라도 현재 젊은 세대가 부모에게 옷을 물려 입고 효율적으로 개성을 드러낼 수 있는 패스트패션을 소비하는 것은 이상하지 않은 현상이다.

네 계정을 종합하면 어떻게 될까? 분류와 상관없이 등장한 횟수로 나열해 보았다. 그중 상위 9등은 위와 같다. SPA 브랜드와 글로벌 스포츠 브랜드처럼 익숙한 브랜드들이 상위권에 분포되어 있다. 전체적으로는 총 315개의 브랜드가 등장했고, 2번 등장한 브랜드는 47개, 1번만 등장한 브랜드는 무려 221개이다. 그야말로 압도적인 가짓수다. 유행하는 스타일이나 브랜드에 소비가 집중되는 우리나라와는 확연히 다른 양상을 보인다.

일본 스트릿 특집 기사는 여기서 끝이 아니다. 이제 시작이다. 이제 상위권에서 비교적 낯선 브랜드 4개를 소개하려 한다. 디젤(Diesel), 쉬인(Shein), 존 로렌스 설리반(John Lawrence Sullivan), 히스테릭 글래머(Hysteric Glamour)이다.


디젤 Diesel

1978년에 시작한 이탈리아 브랜드 디젤은 요즘 Y2K 패션이 유행하면서 주목받고 있다. 하지만 디젤은 그보다 먼저 2000년대에 데님으로 인기를 누렸다. ‘디젤’하면 데님이 따라붙을 정도로 당시 디젤의 워싱 데님은 상징적인 아이템이었다. 디젤 청바지는 지금도 20만 원을 훌쩍 넘을 정도로 만만치 않은 가격인데 그럼에도 멋쟁이들의 선택을 받은 데에는 광고의 역할이 컸다. 디젤은 대표 상품인 데님을 돋보이게 광고하지 않고 기성세대를 향한 풍자가 담겨있는 블랙 코미디를 광고 전략으로 내세웠다. 1991년부터 시작한 Guides for Successful Living 광고 시리즈는 크게 성공해 디젤이 뉴욕, 런던, 로마 등으로 진출하는 기반이 되었다.

전성기와 전성기 사이에는 필연적으로 침체기가 있다. Y2K 유행 이전, 2010년대에 디젤은 경제 불황과 이에 따른 SPA 브랜드의 성장에 국내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 타격을 입었다. 이런 침체를 반등시킨 인물은 Y-Project의 디렉터 글랜 마틴. 2020년 디젤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된 그는 디젤을 패션에 국한되지 않고 향수, 액세서리, 인테리어 디자인 소품까지 다양하게 확대했다.

기사를 작성하면서 한남동에 있는 디젤 매장에 방문했다. 주말이었는데도 매장에 사람이 많지 않았다. 일본과 다른 양상에 의외였지만 일본에서 국내로 패션의 유행이 전해지는 경우가 많은 만큼 국내에서도 디젤의 재유행이 시작되지 않을까 조심스레 추측해 본다.


쉬인 Shein

패스트패션 시장에서 매출로 자라를 역전한 브랜드가 있다. 중국의 울트라 패스트패션 브랜드 쉬인이다. 국내에는 대중화되지 않았지만 서구권의 열광적인 반응을 기반으로 현재 가장 가파르게 성장하고 있다. 작년에는 322억 달러 매출로, 280억 달러 매출을 올린 자라를 앞선 초거대 기업이다.

쉬인은 패스트패션의 정점이라 불린다. 매일 무려 6,000개의 아이템이 새롭게 업로드 되는데 기획부터 디자인, 제작, 출시까지 걸리는 시간은 2주 미만이다. 패스트패션의 대표인 자라가 3-4주 정도 걸리는 것을 감안하면 엄청난 속도다. 이런 시스템을 구축하는 데에는 AI의 발전이 주요했다. AI가 패션 트렌드를 실시간으로 분석하여 디자인한다. 그 이후에는 중국 광저우에 있는 거대 공장에서 모든 생산 과정이 이루어지고 직접 전 세계로 발송하는 시스템이다.

다품종 소량 생산을 지향하기 때문에 재고 회전 속도도 빠르고 재고율도 낮다. 그러니 가격 경쟁력에서도 우위를 가질 수밖에. 여름을 맞아 모자, 반팔, 반바지를 장바구니에 담아보았다. 총금액은 2만 8,800원. 심지어 무료 배송이다. 품질을 포기하고 호기심으로 구매하더라도 부담이 없다. 패스트패션 자체에서 오는 환경 문제와 또 노동 문제, 제품 품질 문제가 있지만 기술의 발전에 따른 패션 시장의 변화를 극단적으로 보여주는 브랜드라는 점에서 쉬인의 행보가 궁금해진다.


존 로렌스 설리반
John Lawrence Sullivan

이번에 영상을 보면서 존 로렌스 설리반을 알게 되었다. 존 로렌스 설리반은 언뜻 디자이너의 이름 같지만 권투 선수의 이름이다. 디렉터 아라시 야나가와는 유망주로 기대를 받을 만큼 실력이 있는 권투 선수였지만 직접 옷을 만들어보고 싶다는 열의를 가지고 권투를 그만두고 패션 브랜드를 시작했다. 이때 자신이 존경하던 존 로렌스 설리반의 도전정신과 투지를 본받고자 이름을 땄다.

복싱 선수 ‘존 로렌스 설리반’은 복싱 역사상 첫 헤비급 챔피언이다. 그의 투지와 도전 정신은 브랜드 존 로렌스 설리반에도 잘 드러나있다. 최근 컬렉션인 S/S25, F/W24를 보면 세로 스트라이프 원단, 각진 어깨 실루엣과 오버핏 상의가 눈에 띈다. ‘아방가르드’라는 단어가 절로 떠오른다. 여기서 ‘아방가르드’는 프랑스어로 ‘선봉대’를 뜻하는 군대용어에서 유래됐다. 어떤 분야에서든 사람들의 인식보다 앞서 전진하기 위해서는 전위적인 투지와 도전정신이 필요하겠지. 존 로렌스 설리반은 현재 런던을 기반으로 활동하며 새로운 장벽들을 부수고 전진하고 있다. 미래는 투쟁하는 자들의 것이니까.


히스테릭 글래머
Hysteric Glamour

일본 스트릿 브랜드에 대해 이야기할 때 반드시 언급해야 하는 브랜드가 있다. 바로 히스테릭 글래머다. 1980년대에 펑크, 뉴웨이브, 힙합 같은 서구 문물을 즐기는 젊은이들은 하라주쿠 뒷골목으로 모였다. 이들이 모여 교류하며 자연스럽게 하라주쿠는 일본 패션의 중심지가 되었고 여기서 언더커버, 베이프, 네이버후드 등 수많은 브랜드가 탄생한다. 이를 우라(뒤) 하라주쿠 패션이라고 하는데 히스테릭 글래머는 우라 하라주쿠 브랜드의 선구자다.

히스테릭 글래머는 키타무라 노부히코가 1984년에 시작했다. 학창 시절에 섹스 피스톨즈, 블론디 같은 펑크록 밴드에 열광했던 그는 패션 학원을 졸업하고 21살에 히스테릭 글래머를 론칭했다. 미국의 록 뮤지션 패티 스미스의 히스테릭한 무대와 블론드의 보컬 데비 해리의 글래머스한 느낌을 합쳐 히스테릭 글래머라는 이름을 붙였다. 히스테릭 글래머는 패션 자체가 아닌 음악, 문학, 예술 등을 아우르는 문화 속 패션을 추구한다. 그래서 히스테릭 글래머는 다양한 분야와 협업을 했다. 사진가 다이도 모리야마와 함께 아트북을 출간하는 한편 앤디 워홀과 티셔츠를 제작했다.

히스테릭 글래머는 디젤과 마찬가지로 Y2K 패션이 유행하면서 전성기를 맞았다. 특히 뉴진스가 각종 화보나 무대에서 애정하는 브랜드로 유명하다. Y2K 패션의 가장 큰 특징이라고 하면 ‘다채로운 개성’이다. 타인의 시선은 신경 쓰지 않은 채 당당하게 뻗치는 자유로움. 무채색의 미니멀 패션에 지쳤다면 히스테릭 글래머를 주목해보자.


영상을 보고 기사를 작성하면서 일본 패션에 대해 몰랐던 부분을 알게 되어 몹시 즐거웠지만 동시에 궁금한 점도 생겼다. 영상에 등장한 멋쟁이들이 아닌 평범한 일본 시민들의 패션이 궁금해졌다. 예를 들어, 퇴근길 도쿄 지하철에서 본 양복을 입은 회사원 말이다. 특히 정석적인 양복을 입은 사회 초년생도 자주 볼 수 있는데 그들이 생각하는 패션은 무엇인지, 주말에 뭘 입고 다니는지 물어보고 싶어졌다. 아니면 평일에는 정장을 입고 다니다가, 주말엔 릴스에 등장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