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원근의 독서출판] 책 읽는 대한민국, 이벤트로 가능한가

백원근(독서출판평론가) 대기자 2026. 5. 8. 1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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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원근의 독서출판] 책 읽는 대한민국, 이벤트로 가능한가

[한국독서교육신문 백원근(독서출판평론가) 대기자]

문화체육관광부는 대국민 독서 캠페인 '2026 책 읽는 대한민국'의 시작을 알리는 선포식을 '세계 책과 저작권의 날'인 4월 23일 서울 코엑스 별마당도서관에서 개최했다. 이 캠페인은 인공지능(AI) 시대에 국민의 생각하는 힘을 기르고 지역 곳곳에서 일상 속 책 읽는 즐거움을 확산하기 위해 마련한 것이다. 선포식 행사에는 유명 배우와 가수, 작가들이 함께 했다. 강연, 공연, 북토크, 공식 표어 발표, 책 증정식, 부스와 체험형 행사 등 풍성한 프로그램이 마련되었다.
'2026 책 읽는 대한민국 캠페인' 선포식 포스터. 문화체육관광부

연중 프로그램으로는 캠페인 동반자와 국무위원들이 참여하는 소셜미디어(SNS) 독서 릴레이, 전국에서 열리는 지역 도서전과 북토크 정보 등을 알려주는 '이 달의 독서 서비스'도 행사 홈페이지와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의 '독서인' 등에서 제공한다. 전국 지역서점 200곳의 맞춤형 독서 프로그램 운영 및 140개 서점의 심야책방 프로그램 지원, 독서경영 우수 직장의 직장문고 신설과 전자책 구독 후원, '우리 회사 독서문화 공모전', 온‧오프라인 독서 챌린지 행사, 캠페인 소셜미디어에서의 '책력 인증', 전국 서점과 도서관 방문 등을 확인하는 '책크인', 시기별 맞춤 주제 독서 프로그램과 지역 문화관광자원 연계 프로그램도 추진한다.

이처럼 유네스코가 정한 '세계 책과 저자권의 날'에 정부 차원의 대대적인 기념식이 열리고 연중 독서 캠페인을 추진하는 사례는 세계적으로도 드물다. 독서 진흥에 관한 중앙정부의 관심이 매우 크다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그런데 이러한 연례 행사들이 매년 이어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문화체육관광부가 조사하는 <국민 독서실태 조사> 결과를 보면 국민 독서율은 거의 매년 곤두박질치고 있다. 성인 종합 독서율(종이책+전자책+오디오북)은 2015년 67.4%에서 2025년 38.5%로 최근 10년간 28.9%p나 감소했고, 종이책 기준으로는 무려 36.5%p가 줄었다. 지난 10년 사이에 성인 10명 중 3명이 책을 읽지 않는 비독서 인구로 전향했다는 것은 지나칠 일이 아니다. 국가데이터처가 발표한 <2025년 사회조사> 결과에서는 청소년 연령대인 만 13~19세의 독서율이 69.8%에 그쳐, 이미 청소년 10명 중 3명은 1년에 일반도서를 단 한 권도 읽지 않는다. 초중고 학생들의 독서율이 100%에 가깝다는 잘못된 인식을 뒤집는 '팩트 폭격'이다.

되돌아보면 지난 10년간 '책 읽는 대한민국' 사업과 같은 행사들은 넘쳐났다. 그렇다면 그 의미는 분명하다. 일회성 행사와 이벤트는 많았지만 정작 국민 독서율 증진으로 이어지지 못했다는 뜻이다. 왜냐하면 다수의 독서 관련 이벤트는 책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이 참여할 가능성이 애초부터 낮고, 대중성이 높은 공연 등의 행사로 많은 사람이 참여했다 하더라도 일회성 행사 이후 독서 생활화와 연계되는 계기를 마련하지 못한다면 효과는 기대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결국 국민, 특히 책을 읽지 않는 비독자의 일상과 긴밀하게 접목된 독서환경을 만들고 능동적으로 책 읽는 즐거움을 체험하거나 향유하도록 사회적 여건을 조성하는 것이 관건이다. 문화체육관광부가 2024년에 발표한 <제4차 독서문화진흥 기본계획(2024~2028)>을 보아도 그러한 점이 분명히 명시되어 있다. 기본계획의 비전은 '독서의 저변 확대'이고, 핵심 목표는 '비독자의 독자 전환 및 책 친화 기반 조성'이다. 이에 따른 4대 추진전략인 독자 확대, 독서습관 형성 지원, 독서 환경 개선, 독서진흥 기반 고도화 정책이 총 39개 사업으로 정리되어 제시되었다. 하지만 이 가운데 기존에 시행하던 일부 계속사업을 제외한 신규 계획의 추진 사례는 거의 없다시피 하다. 시행률 밝히기가 무색할 정도다.

이유는 무엇일까. 아무리 좋은 계획을 세워도 이를 책임지고 수행할 조직, 인력, 예산이 미비했다. 문화체육관광부 출판인쇄독서진흥과에는 사무관 1인과 주무관 1인이 독서진흥 담당자로서 다른 일과 함께 독서 업무를 담당하고 있으며,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독서인문팀에서는 팀장 1인과 직원 5인이 이 업무를 맡고 있다. 예산이 수반되는 행사와 몇 가지 붙박이 사업들을 수행하기에도 벅찬 현실에서 상당한 공력이 투입되어야 하는 신규 계획과 사업, 각종 법‧제도 개선이나 협의체(부처 협업 및 민관 거버넌스) 운영 등은 거의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중기 독서정책의 기본계획이 거의 공표로만 끝나고 매번 과제로 남는 악순환이 문제로 지적된 지 오래다.

정부가 밝힌 "독서의 즐거움을 누리는 책 읽는 대한민국"으로 가는 길은 강력한 정책 의지가 뒷받침되지 않고는 사실상 실현 불가능하다. 아무리 많은 독서 이벤트를 해도 마찬가지다. 독서문화진흥법을 제정해 5년 단위의 독서진흥 기본계획을 수립하는 지구상 거의 유일한 나라인 대한민국이 '최근 10년간 국민 독서율이 가장 많이 하락한 나라'라는 자화상을 갖게 된 것은 아이러니하다. 이대로라면 AI 3대 강국은커녕 '국가 경쟁력 하락 최고 위험 국가'가 될 수 있음을 자각해야 한다. 결국 독서정책 추진 역량 강화를 위한 정책수단 마련이 긴요하다.

최근 발표된 미국인의 독서 지표 조사 결과를 보면(퓨리서치센터, 2026.4.9.), 2025년 기준 미국인의 연간 독서율은 75%로, 매체별로 보면 종이책 64%, 전자책 31%, 오디오북 26%이었다. 이는 10년 전인 2015년에 종이책 63%, 전자책 27%, 오디오북 12%이던 것에 비해 종이책은 거의 비슷한 수준이고 전자책은 4%p, 오디오북은 14%p가 각각 증가한 것이다. 이를 우리나라(2025년 국민 독서실태 조사)와 비교하면, 한국은 미국의 독서율에 비해 종이책은 35.2%p, 전자책은 13.2%p, 오디오북은 21.5%p가 각각 낮다. 처음으로 수치가 나온 독서 모임 참여율은 미국인이 7%(여성 10%, 남성 5%)인데 비해 한국인은 약 1.4%(독서활동 참여율 3.8%의 37.3%이 독서 모임 참여)에 그친다. 심각한 차이가 아닐 수 없다.
미국 퓨리서치센터의 2025년 미국 성인 독서율 조사 결과(2026.4.9. 홈페이지)

이처럼 격차가 벌어진 이유는 무엇일까. 한국인의 스마트폰 및 영상매체 과다 의존으로 독서지표의 사막화가 멈추지 않는 배경에는 어릴 때부터의 낮은 독서 선호도, 독서에 대한 자극이 거의 없는 생활 환경, 삶의 만족도가 낮고 책이 들어오지 않는 사회 여건(세계 최고 수준의 스트레스 지수와 상대적 빈곤율, 자살률) 등이 고루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2013년에 71.4%이던 한국 성인의 독서율에서 그 절반 가까이가 증발해버린 미증유의 사태에 대한 원인 분석과 정책 대응이 필요하다.

'내'가 소외되는 남들의 독서 이벤트가 아니라, '내'가 경험하고 주체로 참여하는 가정-학교-직장-사회에서의 하루 10분 함께 책 읽는 시간 갖기, 읽기 흥미를 북돋우는 다양한 독서 정보의 제공, 지역‧직장 생일책 선물과 국가 독서수당(책 1권 구입 쿠폰) 제공, 독서 모임(동아리) 참여자 우대 마일리지 제공 등 비독자를 독자로 만드는 정책들이 적극 도입되기를 바란다. 비독자들이 일상에서 책 읽기를 실천할 수 있도록 동기를 부여하고 계기를 제공하는 실효성 높은 정책 방안들이 시행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