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건축] 아름다운 전통주거, 여럿이 하나가 되다

현시대 집을 짓고 살고자 하면, 땅을 구입하고 그 위에 집을 짓거나 아파트와 같은 집합주거에 전입하여 삶을 영위한다. 일반적으로 아버지와 어머니의 공간인 안방, 공동 공간인 마루, 자녀의 공간인 건넌방, 그리고 부엌과 현관 등 여러 공간이 하나의 건물 안에 모여 주거를 이룬다.
이에 반해 전통주거는 안방, 건넌방, 부엌, 현관이 각각 독립된 건물로 구성되어 여러 채로 나타난다. 현대 주거가 하나의 건물 안에 모든 공간이 동시에 구성되는 것과 달리, 전통주거는 사용의 필요에 따라 시간차를 두고 점진적으로 건립되었다. 이러한 방식은 경제적 여건이나 가족 구성의 변화, 의례와 접객 등 구체적인 생활 요구에 따라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는 구조적 장점을 갖는다.
1963년 보물로 지정된 '유희춘 미암일기 및 미암집 목판'에는 조선 선조 때 문신 유희춘이 전라도 담양에 주택을 지으며 남긴 일기가 포함되어 있다. 이 일기를 통해 전통주거의 기능별 건물 건립 순서를 엿볼 수 있다. 1546년 안채를 처음 신축하고, 22년 뒤인 1568년에 행랑 13칸을 지었으며, 다시 8년 후인 1576년에는 객청을 증축했다. 안채와 행랑에는 내방, 중당, 대방, 사랑, 사랑청, 사랑방, 누하방, 누채, 북루, 헛간 등의 공간이 등장하며, 북루는 정자 기능을 겸했다. 객청에는 객실 판당 4칸, 방 2칸, 남변서실 2칸이 있었고, 서실에는 온돌을 두고 남쪽에 창을 내어 책을 읽기 좋게 하였다. 사당은 이후 따로 건립할 계획이었다. 이러한 기록은 단순한 주택의 구성을 넘어, 조선시대 양반가의 생활 방식과 가치관, 공간 인식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귀중한 자료라 할 수 있다.
이를 통해 전통가옥은 안채와 행랑채를 기본으로 하고, 사랑채, 객청, 별당, 사당 등은 필요에 따라 점진적으로 건립된 부속채임을 알 수 있다. 각 공간은 거주자의 신분과 역할, 가정의 제의적 기능, 외부 손님 접대 등의 용도에 따라 구분되며, 이는 전통사회에서 가족과 사회, 개인과 공동체의 관계를 주거 공간에 반영한 결과라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신혼부부가 새로 살림을 시작할 경우, 우선 안채를 짓고 안주인은 내방에, 남편은 대방에 거주하며, 대소사의 의례는 중당(대청)에서 치렀다. 이후 살림이 나아지면 행랑채를 지어 살림을 돕는 이들 및 손님이 머물 공간과 곳간을 마련한다. 자녀가 생겨 안채 공간이 부족하면 행랑 일부를 사랑채로 전환하거나 따로 사랑채를 지어 남편과 아들의 공간으로 사용하였다. 손님이 많아지면 객청을 추가하고, 가족이 3세대로 확대되면 조부모를 위한 별당과, 이후 조상을 모시는 사당까지 건립하게 된다.
이러한 전통주거의 발전 양상은 20년 단위로 이어지는 세대교체와 맞물려 약 60년 주기로 공간이 확장되며, 이는 주역에서 말하는 인생의 완성 주기와도 맥을 같이한다. 물론 모든 건물을 한 번에 짓는 경우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가족 구성과 경제적 여건에 따라 순차적으로 집을 지어 하나의 건물군으로 완성되었다. 이렇듯 점진적 건립 방식은 단지 물리적 확장에 그치지 않고, 시간이 흐름에 따라 가족과 집이 함께 성장하고 변화해 가는 유기적인 과정을 담고 있다.
근대화 이후 전통의 집은 해체되고, 대가족은 흩어졌다. 그러나 오늘날, 흩어진 가족이 다시 모여 두세 세대가 함께 살아가는 집을 짓는 사례가 점차 늘고 있다. 단순한 공간의 회귀가 아니라, 가족 간의 관계와 생활의 리듬을 함께 설계하려는 새로운 시도라 할 수 있다. 전통주거는 기능별로 분리된 여러 채의 건물이 시간이 흐르며 점차 완성되는 구조였다. 이는 단순한 건축 양식이 아니라, 가족의 삶이 축적되고 확장되는 과정이자 기억의 층위가 담기는 그릇이었다. 오늘날 우리가 다시 '함께 사는 집'을 고민하는 이유 역시, 그 속에 삶의 지속성과 관계의 의미를 담으려는 바람이 깃들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김상태 한국전통문화대학교 전통건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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