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이 찾아준 류현진의 스트라이크…KBO 도입 시급하다

1회 피홈런 후 9타자 연속 범타

캐나다 국경 근처 도시다. 뉴욕주 버팔로의 세일런 필드. 블루제이스 산하 AAA팀 버펄로 바이슨스의 홈이다. 원정팀 톨레도 머드헨스(타이거스 AAA)를 맞아 일전을 펼친다. 오후 6시 게임이다. 화씨 74도(섭씨 23도)의 쾌적한 기온. 관중도 제법 모였다. 6762명이 입장했다. (한국시간 7월 16일)

낯설지 않은 곳이다. 코로나 팬데믹 때(2020~2021년) 홈으로 쓰던 곳이다. 그때의 에이스가 등판한다. 면도 따위는 생략했다. 거칠고 날렵해진 턱선이다. 슬림한(?) 99번 투수가 마운드에 오른다.

첫 타자는 가볍게 잡았다. 두 번째 타자 때 문제가 생긴다. 저스틴 헨리 멀로이다. 카운트 3-2에서 7구째가 가운데로 몰렸다. 가차 없는 스윙이다. 완벽한 타이밍에 걸렸다. 타구는 까마득히 솟아올랐다. 좌중간 담장 너머로 사라진다.

아찔하다. 벌써 저러면 안 되는데. 아무리 재활 등판이라도 그렇다. 아무리 성적은 상관없다고 해도 그렇다. 이제 제대 말년 아닌가. 1년간 그 고생을 하고, 일정은 다가오는데. 기왕이면 폼나게 올라가고 싶다. 두들겨 맞고, 비틀거리기는 싫다.

아니나 다를까. 정신을 바짝 차린다. 각성한 투구가 이어진다. 이후는 매끄럽다. 4회 다시 멀로이(우익수 플라이)를 만날 때까지다. 9타자를 내리 잡아낸다. 결국 목표한 5이닝을 무사히 마쳤다. 3피안타 1실점. 삼진은 5개를 빼냈다. 8-2 경기의 승리 투수는 덤이다.

투구 수 66개 중 46개가 스트라이크다. 평균 구속은 87.6마일(약 141㎞), 최고 89.3마일(144㎞)를 찍었다. 지난 등판보다는 2㎞가량 빨라졌다.

버팔로 바이슨스 SNS

두번의 볼/스트라이크 비디오 판독

당사자도 만족했다. 현지 매체와 인터뷰 때도 밝은 얼굴이다. “65개 이상을 던지는 게 목표였다. 가능한 한 빠르게 타자와 승부하려고 했고, 매우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을 수 있어 기쁘다. 더 높은 수준의 피칭을 했다. 충분히 집중할 수 있었고, 해야 할 것을 해냈다. 기분이 좋다.”

역시 몸매에 관한 코멘트도 빠지지 않는다. “30파운드(13kg) 가까이 줄었다. 몸이 가벼워진 게 투구하는 데 도움이 되는 것 같다.” 미디어의 호평도 이어진다. ‘빅리그 복귀가 점점 가까워지고 있다’ (mlb.com) ‘환상적인 호투였다. 의미 있는 재활 등판이다’ (스포츠넷) 등등.

와중에 흥미로운 장면이 있다. 2회 초였다. 삼진과 땅볼로 2아웃을 잘 잡아냈다. 다음 타자 때 시간이 걸린다. 마이클 퍼피어스키 타석이다. 카운트가 3-1로 타자 편이다. 5구째가 애매하다. 먼 쪽에 높이 걸렸다. 구심 라울 모레노가 외면한다. 첫 볼넷이다.

타자가 보호대를 풀고 나갈 준비다. 그 순간 포수(스티브 버먼)가 이상하다. 뭔가를 외치며, 오른손을 머리에 얹는다. 그러자 게임이 중단된다. 구심이 본부석 쪽을 돌아보며 사인을 준다. 타자도 1루 행을 멈춘다.

그쪽 말로는 챌린지(challenge)다. 우리 식으로는 비디오 판독 요청이다. 잠시 후. 중계 화면에 그래픽이 뜬다. 문제의 공(5구째)이 들어오는 3D 궤적이 나온다. 존 끝에 공이 반쯤 걸쳤다. 볼이 아닌 스트라이크라는 증거다. 곧바로 판정이 바뀐다. 볼넷은 취소된다. 대신 카운트가 3-1에서 3-2로 바뀐다.

타자는 김이 빠진다. 7구 실랑이 끝에 KO 됐다. 몸쪽 패스트볼을 우두커니 지켜봤다. 루킹 삼진이다. 자칫 4사구 ‘0’ 게임에 흠집이 생길 뻔한 장면이었다.

milb.com 캡처

비슷한 상황은 이전 등판 때도 있었다. 지난 10일(한국시간) 싱글A 게임 때다. 4회 2사 1, 2루의 위기를 맞았다. 브레니 에스카니오 타석이 풀 카운트 접전이다. 여기서 던진 승부구가 바깥쪽 높은 코스를 찔렀다. 구심은 스트라이크를 선언, 삼진으로 이닝이 종료됐다.

이때 타자가 이의를 제기한다. 즉시 비디오 판독이 진행된다. 6구째가 가장 멀고, 높은 코스를 아슬아슬하게 통과한 것으로 확인됐다. 구심의 콜이 정확했던 것이다. 원심 확정. 타자만 머쓱해졌다. Ryu가 예정된 이닝의 마지막을 깔끔하게 마무리하는 순간이었다.

milb.com 캡처

챌린지 기회는 3번, 10초 안팎이면 해결

판정 문제는 모든 스포츠의 해결 과제다. 메이저리그라고 예외일 리 없다. 아웃/세이프 등은 비디오 판독을 통해 상당 부분 개선됐다. 마지막 남은 것이 볼 판정이다. MLB는 개선을 위해 다양한 시도를 계속한다. 시험 무대는 마이너리그다.

몇 년 전부터 AI 심판(로봇 심판)이 활용된다. 투구추적 시스템으로 볼/스트라이크를 판정하는 방식이다. 이미 테니스나 풋볼(NFL)에서 쓰고 있다. 호크 아이(hawk-eye)라고 불리는 심판 보조 시스템이다. 항공모함이나 전투기의 미사일 추적시스템을 응용한 기술이다. 오차 범위는 밀리미터 단위다. 정밀함에 대한 걱정은 없다.

구심은 이어폰을 끼고 포수 뒤에 선다. 들리는 신호대로 판정하면 끝이다. 사실 심판의 콜은 관중과 시청자를 위한 퍼포먼스다. 일종의 연기인 셈이다. 투구와 판정의 시차도 거의 없다. 0.1초 이내로 가능하다.

이미 실험은 끝났다. 기술적인 문제는 없다. 당장 전면 도입도 가능하다. 다만 메이저리그는 신중하다. 심판 노조의 반발, 전통의 가치를 따지는 여론도 고려해야 한다. 점진적인 진행을 위해 다양한 실험을 도모한다.

그중 하나가 현재 진행 중인 챌린지 방식이다. 양 팀은 한 경기에 3번의 비디오 판독 기회를 갖는다. 성공한 것은 횟수에 포함되지 않는다. 신청은 투수와 포수, 타자만 할 수 있다. 벤치는 자격이 없다. 혹시 덕아웃에서 힌트를 줬다고 판단되면 심판은 챌린지를 취소할 수 있다.

시그널은 신청자가 머리에 손을 얹는 동작이다. 그럼 전광판에 투구 궤적이 나타난다. 관중들도 모두 같이 본다. 스트라이크 존에 조금이라도 걸치면 인정이다. 걸리는 시간도 길지 않다. 10초 내외면 해결된다. 결과에 이러쿵저러쿵하는 경우도 없다. 원만하고, 깔끔하다.

버팔로 바이슨스 SNS

순조로운 재활, 임박한 ML 복귀

사실 유/불리를 따지기는 어렵다. 99번과 같은 투수에게는 도움이 될 것이고, 반대는 손해가 많을 것이다? 그런 단언은 설득력이 약하다. 아무리 정확성이 뛰어나도, 보더 라인을 마음대로 들락날락하는 건 불가능하다.

설사 그렇다고 해도, 항상 유리하게 작용한다는 보장도 없다. 간신히 걸친 공이 볼로 판정될 손해가 줄어드는 대신, 약간 빠진 것이 스트라이크로 인정되는 이익도 (확률적으로 같은 비율로) 감소하기 때문이다.

어쨌든. 최근 재활 등판은 성공적이다. 건강함을 회복했고, 정밀함은 여전했다. 다양성과 정확함은 예전의 모습 그대로였다. 이리저리 현란하게 변한다. 그게 계속 존 언저리를 타고 돈다. 아직은 90마일에 못 미친다. 하지만 그런 패스트볼로 타자들을 얼어붙게 만든다. 심지어 인간은 놓친 스트라이크였다. 그걸 로봇 심판이 찾아줬다. 뭔가 조짐이 좋다.

지금 당장 올려도 괜찮다. <…구라다>는 그렇게 믿는다. 보여준 것처럼 5이닝 정도는 충분하다. 투구 수, 스피드는 자연스럽게 올라갈 것이다. 어차피 부상자도 많다. 로테이션 돌리기도 빡빡하지 않은가.

물론 조심스럽다. 긴 재활의 끝이다. 차분하게 갖추는 것도 나쁘지 않다. 아마 한두 번의 AAA 등판이 더 이뤄질 것 같다. 다만, 계속되는 좋은 흐름이다. 이런 분위기는 올라타야 한다. 그런 바람일 뿐이다.

버팔로 바이슨스 SNS

에필로그 - KBO도 퓨처스 리그에서 시험 운영

한국야구위원회(KBO)는 2020년부터 퓨처스 리그에서 로봇 심판을 시험 운영했다. 구단이나 선수들 반응은 상당히 긍정적이다. 올해는 고교야구에도 활용됐다. 이르면 내년부터 1군 경기에 도입될 수 있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