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에 1㎜의 기적 선물... 공은 네가 경기에서 한 일을 알고 있다

김민기 기자 2022. 12. 2. 2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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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미토마가 공을 걷어내던 순간을 공중에서 촬영한 사진이다. 공 일부가 골라인에 살짝 걸쳐져 있다. /AP 연합뉴스

공은 둥글다. 이번 월드컵 공인구는 둥글면서 날카롭고 예리하다.

2022 카타르 월드컵 공인구로 세상에 선보인 ‘알 리흘라’는 현대 스포츠 과학의 집약체로 평가받는다. 축구 경기에서는 심판 판정에 대한 의문과 항의가 끊임없이 이어진다. 하지만 이번 월드컵에선 적어도 공의 위치, 오프사이드에 대해서는 아무도 토를 달지 못한다. 알 리흘라가 1mm(밀리미터)의 차이까지 정확하게 짚어내기 때문이다.

◇공인구, 일본에 ‘1mm의 기적’ 선물

일본은 2일 스페인과 치른 조별 리그 최종전에서 1-1로 팽팽하던 후반 6분 다나카 아오(뒤셀도르프)의 결승골로 승부에 쐐기를 박았다. 미토마 가오루(브라이턴)가 공이 라인을 넘어가기 전 가까스로 살려내 패스했다. 하지만 육안으론 미토마가 골라인을 넘어간 공을 차올린 것처럼 보였다. 중계진도 “공이 라인을 나갔다”고 말했다. 하지만 심판진은 VAR(비디오 판독)을 거친 후 공이 나가지 않았다고 판단했고, 결국 일본은 2대1로 승리했다. 이 역전 결승골이 아니었다면 일본은 조 3위로 조별 리그에서 탈락할 운명이었다.

일본을 살린 건 알 리흘라 안에 있는 관성측정센서(IMU)다. 무게 14g의 작은 센서는 공의 위치·궤적을 초당 500번 측정해 자동으로 데이터를 전송한다. 초당 50프레임으로 장면을 나누는 일반 VAR보다 10배 더 정확하다. 2일 경기에서도 알 리흘라는 공의 위치를 0.002초마다 전송했고, 공의 인·아웃 여부를 판단하는 기존 기술인 ‘호크아이’와 함께 당시 공이 넘어가지 않은 것으로 봤다. 두 기술이 결합하면 1mm 이하도 측정이 가능하다. 실제 2일 경기에서도 mm 단위로 숫자가 확인된 것으로 알려졌다. 축구 경기 규칙에 따르면, 지면 또는 공중에서 공 전체가 골라인을 완전히 넘어야 ‘아웃’으로 본다. 중계 화면상으로는 공이 라인 밖으로 벗어난 것처럼 보였지만, 위에서 봤을 때는 라인에 살짝 걸쳐있었던 것이다.

알 리흘라는 경기장에 설치된 고성능 카메라 12대와 함께 반자동 오프사이드 판독 기술(SAOT)을 구현한다. 카메라가 선수 관절 등 신체 29지점의 움직임을 초당 50회 측정한다. 공의 움직임까지 종합해 자동으로 오프사이드를 잡아내 심판진에게 알리고, 관중의 이해를 돕기 위해 자동으로 영상을 만들어 송출한다. SAOT는 지난달 21일 카타르와 에콰도르의 개막전부터 오프사이드를 잡아 골을 취소시키며 제 몫을 톡톡히 해낸 바 있다. 이처럼 이번 월드컵에선 각종 기술이 힘을 모아 오심을 잡는다. 2일 기준 44경기가 열리는 동안 VAR을 통해 판정이 번복된 사례는 22건에 이른다.

◇”호날두, 거짓말하지 마!”

알 리흘라는 선수가 공을 차는 순간도 자동으로 감지한다. 포르투갈의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무소속)는 지난달 29일 우루과이와의 조별 리그 경기에서 동료 브루누 페르난드스(맨유)가 올린 공에 번쩍 뛰어올랐다. 공이 골문 안으로 들어가자 세리머니까지 했다. 화면상으론 그의 머리에 맞았는지 안 맞았는지 분간하기 어려웠지만, 호날두의 골로 인정됐다. 하지만 5분여쯤 지나 페르난드스의 골로 수정됐다. 호날두는 억울한 듯 경기 후 절친한 방송인에게 “공이 이마에 닿았다”는 내용의 문자를 보냈다.

하지만 알 리흘라는 호날두의 말이 틀렸음을 증명했다. 공인구 제조사 아디다스가 다음 날 당시 상황에 대한 공 진동 그래픽을 공개했다. 페르난드스가 공을 찬 순간 그래프가 요동쳤지만, 호날두가 뛰어오른 순간엔 그래프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아무런 접촉도 없었던 것이다. 페르난드스는 “호날두 골이라도 상관없다. 그 골은 포르투갈의 골”이라고 했다.

◇ 공도 충전이 필요해

이번 공인구는 고무풍선 위에 폴리우레탄 조각 20개를 환경친화적 접착제로 붙여 만들었다. 알 리흘라는 아랍어로 ‘여행’이라는 뜻이다. 골프공처럼 표면이 울퉁불퉁한데, 이 경우 공기 저항이 줄고 더 멀리 날아간다. 아디다스는 “역대 공인구 중 가장 빠르고 정확하게 날아간다”고 설명한다. 공 표면의 과학이 공의 여정을 돕는 셈이다.

센서가 안에 있으니 공도 충전이 필요하다. 공은 무선으로 충전하며, 가득 충전되면 6시간 동안 사용 가능하다. 센서 없는 알 리흘라의 가격은 17만~18만원 정도다. 지난 대회 공인구 가격과 비슷하다. 하지만 센서가 달린 공인구는 외부 유출 금지다. 이전 대회까지 FIFA(국제축구연맹)는 경기에 사용된 공을 각 국가 축구협회에 주기도 했다. 하지만 이번 월드컵에선 기념비적인 골을 터뜨린 선수라도 그 공을 가져가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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