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창고형 약국, 싸게 사러 갔다가 돈 더 썼다···절반 이상이 복용법 몰라 동네 약국에 ‘SOS’

김찬호·이혜인 기자 2026. 5. 8. 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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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 오후 서울 용산구에 있는 800평 규모 창고형 약국 메디킹덤 모습. 김찬호 기자

창고형 약국 이용자 중 절반 가까이가 동네약국을 이용할 때보다 돈을 더 쓴 것으로 나타났다. 값이 싸다는 이유로 ‘필요할 때 산다’에서 ‘미리 쟁여둔다’로 소비 행태가 바뀌며 대량·충동 구매한 영향으로 풀이된다. 10명 중 6명은 이렇게 구매한 약의 복용법을 몰라 동네 약국에 가서 도움을 요청한 경험이 있었다.

경향신문이 7일 입수한 ‘창고형 약국 이용 실태와 소비자 구매행태에 관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창고형 약국 이용자 중 49.3%가 동네 약국을 이용했을 때보다 오히려 지출이 증가했다고 답했다. 줄어들었다는 응답은 4.3%에 그치며 이용자들 기대와 달리 실제 지갑 사정은 반대로 움직인 것으로 드러났다.

이번 조사는 ‘약사의 미래를 준비하는 모임’(약준모)이 여론조사기관 데이터몬드에 의뢰해 지난달 24일부터 28일까지 최근 3개월 내 창고형 약국 이용 경험자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했다. 창고형 약국 관련 논쟁이 그동안 가격 경쟁에 따른 동네약국 피해 등에 집중됐다면, 해당 조사는 의약품 소비 행태와 지출 규모, 복약 지도 경험 등 이용자를 중심으로 들여다봤다는 점에서 차별화된다.

‘약사의 미래를 준비하는 모임’ 제공
싼 맛에 샀지만…10명 중 4명 이상 ‘계획 없는 구매’

조사에 따르면 창고형 약국 방문객 중 45.3%는 ‘방문 전 계획하지 않았던 품목을 구매했다’고 답했다. 이들이 추가로 구매한 것은 비타민·영양 관련 일반의약품(37.7%)이 가장 많았다. 이어 건강기능식품(31.3%), 진통제·해열제(28.5%) 순이었다. 추가 구매한 이유는(복수응답 가능) ‘언젠가 쓰겠지’식의 상비 심리(35.5%)가 가장 많았고, ‘싸게 느껴져서’라는 가격 자극(31.1%)이 뒤를 이었다. 그 결과 10명 중 6명(62.2%)은 창고형 약국 이용 후 집에 보관 중인 의약품·건강기능식품 양이 늘었다고 말했다.

7일 서울 용산구에 있는 창고형 약국 메디킹덤에서 만난 직장인 A씨의 쇼핑카트. 김찬호 기자

실제로 이날 서울 용산구에 있는 한 창고형 약국에서 만난 직장인 A씨는 “진통제 사려고 왔다가 종합감기약과 소화제, 비타민도 샀다”며 “언젠가는 다 쓸 약인데 동네 약국보다 최소 10~20% 정도는 싼 가격에 구매한 것 같다”고 말했다. 이날 A씨는 약값으로 총 12만3000원을 썼다.

A씨는 여론조사에서 나타난 창고형 약국 이용자의 특징을 그대로 보여준다. 창고형 약국에서 한 번에 3만원 넘게 결제한 비율은 41.5%로, 동네 약국(3.8%)의 약 11배에 달했다. 개별 품목 가격은 동네 약국보다 낮아도, 한 번에 결제하는 규모는 커지는 구조다. 이렇게 덩치가 커진 장바구니 안에는 꼼꼼히 가격을 따져보지 않은 채 무심코 담은 제품들도 섞여 들어갔다. 구매 당시 개별 가격이나 단가를 충분히 비교하지 못하고 산 제품이 있었다는 응답이 35.7%에 달했다.

‘창고형 약국 이용 실태와 소비자 구매행태에 관한 설문조사’. ‘약사의 미래를 준비하는 모임’ 제공

구매한 의약품 중 일부는 사용하지 않은 채 약장에 그대로 보관됐다. 응답자의 39.4%는 ‘사용하지 않은 제품이 집에 있다’고 말했고, 49.0%는 ‘비슷한 효능의 제품을 이미 갖고 있는데도 중복으로 산 적이 있다’고 답했다. 그 결과 ‘창고형 약국 이용이 가계 지출 절감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응답(39.4%)이 ‘도움이 된다’는 응답(29.8%)을 앞선 것으로 조사됐다.

‘창고형 약국 이용 실태와 소비자 구매행태에 관한 설문조사’. ‘약사의 미래를 준비하는 모임’ 제공
‘아들이 사준 약, 어찌 먹나’···60대 이상 78.5%, 동네 약국에 ‘SOS’

이처럼 약을 대량으로 중복 구매하는 행태는 오남용 위험 등과 직결되지만, 이용자들이 체감하는 안전 점검은 충분하지 않았다. 창고형 약국 방문 시 약사 상담을 ‘충분히 받았다’는 응답은 27.2%에 그쳤다. ‘간단히 받았다’가 35.1%로 가장 많았고, ‘요청했지만 거의 또는 전혀 받지 못했다’는 응답이 16.8%에 달했다. 특히 60대 이상에서는 ‘다른 약과 함께 먹어도 되는지 확인하지 않은 적이 있다’는 응답이 33.1%로, 전체 평균(26.3%)을 웃돌았다.

7일 오후 서울 용산구에 있는 800평 규모 창고형 약국 메디킹덤 모습. 김찬호 기자

상담 공백은 구매자와 실제 복용자가 다른 경우가 많은 창고형 약국 특징과 만나 ‘사고 위험’을 키운다. 실제로 창고형 약국에서 계획하지 않았던 품목을 추가 구매한 주요 이유 중 하나가 ‘가족·지인의 요청이 있어서’(23.4%)였다. 일반의약품이나 건강기능식품도 복용자 나이, 기저질환, 기존 처방약 복용 여부에 따라 주의사항이 달라진다. 그런데도 전체 응답자의 39.3%가 가족에게 제품을 전달하면서 복용법이나 주의사항을 충분히 설명하지 못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이렇게 구매 현장에서 채우지 못한 안전 점검은 동네 약국에 의존해 해결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체 응답자의 64.4%가 동네 약국을 찾아 창고형 약국이나 인터넷 등 외부에서 구매한 제품의 복용 방법이나 병용 가능 여부를 문의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1~2회 문의한 경험이 있다는 응답이 59.3%, 3회 이상 있다는 응답이 5.1%였다. 특히 60대 이상 응답자 중 외부 구매 제품에 대해 동네 약국에 문의한 경험이 있다는 응답은 78.5%까지 치솟았다.

‘창고형 약국 이용 실태와 소비자 구매행태에 관한 설문조사’. ‘약사의 미래를 준비하는 모임’ 제공

경기도에서 약국을 운영 중인 B 약사는 “며칠 전 70대 어르신이 아들이 창고형 약국에서 감기약을 여러 개 사다 줬다며 ‘어떤 것을 먹어야 하느냐’고 물어봐 복용법과 주의사항 등을 알려드렸다”며 “이런 경우가 너무 많다 보니 약사들 사이에선 ‘거 뭐 좀 물어봅시다’란 밈(인터넷 유행)이 돌 정도”라고 말했다.

이처럼 구매와 상담이 분리되는 양상은 유통 시장의 ‘쇼루밍(Showrooming)’ 현상과 닮았다. 소비자가 오프라인 매장에서 제품을 보고 실제 구매는 저렴한 온라인에서 하듯, 창고형 약국에서 약을 산 뒤 부작용이나 병용 가능성 등 상담은 접근성이 좋은 동네 약국에서 해결하는 식이다.

‘창고형 약국 이용 실태와 소비자 구매행태에 관한 설문조사’. ‘약사의 미래를 준비하는 모임’ 제공

박현진 약준모 회장은 “쇼루밍 현상이 심화하면 결국 판매 중심 업체만 남게 된다”며 “진료는 안 하고 시술만 하는 피부과가 많아지는 것과 유사한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약국은 단순한 유통 채널이 아닌 보건의료 안전망의 한 축을 담당하는 만큼 창고형 약국도 의약품 오남용을 막기 위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덧붙였다.

김찬호 기자 flycloser@kyunghyang.com, 이혜인 기자 hye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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