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창고형 약국, 싸게 사러 갔다가 돈 더 썼다···절반 이상이 복용법 몰라 동네 약국에 ‘SOS’

창고형 약국 이용자 중 절반 가까이가 동네약국을 이용할 때보다 돈을 더 쓴 것으로 나타났다. 값이 싸다는 이유로 ‘필요할 때 산다’에서 ‘미리 쟁여둔다’로 소비 행태가 바뀌며 대량·충동 구매한 영향으로 풀이된다. 10명 중 6명은 이렇게 구매한 약의 복용법을 몰라 동네 약국에 가서 도움을 요청한 경험이 있었다.
경향신문이 7일 입수한 ‘창고형 약국 이용 실태와 소비자 구매행태에 관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창고형 약국 이용자 중 49.3%가 동네 약국을 이용했을 때보다 오히려 지출이 증가했다고 답했다. 줄어들었다는 응답은 4.3%에 그치며 이용자들 기대와 달리 실제 지갑 사정은 반대로 움직인 것으로 드러났다.
이번 조사는 ‘약사의 미래를 준비하는 모임’(약준모)이 여론조사기관 데이터몬드에 의뢰해 지난달 24일부터 28일까지 최근 3개월 내 창고형 약국 이용 경험자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했다. 창고형 약국 관련 논쟁이 그동안 가격 경쟁에 따른 동네약국 피해 등에 집중됐다면, 해당 조사는 의약품 소비 행태와 지출 규모, 복약 지도 경험 등 이용자를 중심으로 들여다봤다는 점에서 차별화된다.

싼 맛에 샀지만…10명 중 4명 이상 ‘계획 없는 구매’
조사에 따르면 창고형 약국 방문객 중 45.3%는 ‘방문 전 계획하지 않았던 품목을 구매했다’고 답했다. 이들이 추가로 구매한 것은 비타민·영양 관련 일반의약품(37.7%)이 가장 많았다. 이어 건강기능식품(31.3%), 진통제·해열제(28.5%) 순이었다. 추가 구매한 이유는(복수응답 가능) ‘언젠가 쓰겠지’식의 상비 심리(35.5%)가 가장 많았고, ‘싸게 느껴져서’라는 가격 자극(31.1%)이 뒤를 이었다. 그 결과 10명 중 6명(62.2%)은 창고형 약국 이용 후 집에 보관 중인 의약품·건강기능식품 양이 늘었다고 말했다.

실제로 이날 서울 용산구에 있는 한 창고형 약국에서 만난 직장인 A씨는 “진통제 사려고 왔다가 종합감기약과 소화제, 비타민도 샀다”며 “언젠가는 다 쓸 약인데 동네 약국보다 최소 10~20% 정도는 싼 가격에 구매한 것 같다”고 말했다. 이날 A씨는 약값으로 총 12만3000원을 썼다.
A씨는 여론조사에서 나타난 창고형 약국 이용자의 특징을 그대로 보여준다. 창고형 약국에서 한 번에 3만원 넘게 결제한 비율은 41.5%로, 동네 약국(3.8%)의 약 11배에 달했다. 개별 품목 가격은 동네 약국보다 낮아도, 한 번에 결제하는 규모는 커지는 구조다. 이렇게 덩치가 커진 장바구니 안에는 꼼꼼히 가격을 따져보지 않은 채 무심코 담은 제품들도 섞여 들어갔다. 구매 당시 개별 가격이나 단가를 충분히 비교하지 못하고 산 제품이 있었다는 응답이 35.7%에 달했다.

구매한 의약품 중 일부는 사용하지 않은 채 약장에 그대로 보관됐다. 응답자의 39.4%는 ‘사용하지 않은 제품이 집에 있다’고 말했고, 49.0%는 ‘비슷한 효능의 제품을 이미 갖고 있는데도 중복으로 산 적이 있다’고 답했다. 그 결과 ‘창고형 약국 이용이 가계 지출 절감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응답(39.4%)이 ‘도움이 된다’는 응답(29.8%)을 앞선 것으로 조사됐다.

‘아들이 사준 약, 어찌 먹나’···60대 이상 78.5%, 동네 약국에 ‘SOS’
이처럼 약을 대량으로 중복 구매하는 행태는 오남용 위험 등과 직결되지만, 이용자들이 체감하는 안전 점검은 충분하지 않았다. 창고형 약국 방문 시 약사 상담을 ‘충분히 받았다’는 응답은 27.2%에 그쳤다. ‘간단히 받았다’가 35.1%로 가장 많았고, ‘요청했지만 거의 또는 전혀 받지 못했다’는 응답이 16.8%에 달했다. 특히 60대 이상에서는 ‘다른 약과 함께 먹어도 되는지 확인하지 않은 적이 있다’는 응답이 33.1%로, 전체 평균(26.3%)을 웃돌았다.

상담 공백은 구매자와 실제 복용자가 다른 경우가 많은 창고형 약국 특징과 만나 ‘사고 위험’을 키운다. 실제로 창고형 약국에서 계획하지 않았던 품목을 추가 구매한 주요 이유 중 하나가 ‘가족·지인의 요청이 있어서’(23.4%)였다. 일반의약품이나 건강기능식품도 복용자 나이, 기저질환, 기존 처방약 복용 여부에 따라 주의사항이 달라진다. 그런데도 전체 응답자의 39.3%가 가족에게 제품을 전달하면서 복용법이나 주의사항을 충분히 설명하지 못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이렇게 구매 현장에서 채우지 못한 안전 점검은 동네 약국에 의존해 해결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체 응답자의 64.4%가 동네 약국을 찾아 창고형 약국이나 인터넷 등 외부에서 구매한 제품의 복용 방법이나 병용 가능 여부를 문의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1~2회 문의한 경험이 있다는 응답이 59.3%, 3회 이상 있다는 응답이 5.1%였다. 특히 60대 이상 응답자 중 외부 구매 제품에 대해 동네 약국에 문의한 경험이 있다는 응답은 78.5%까지 치솟았다.

경기도에서 약국을 운영 중인 B 약사는 “며칠 전 70대 어르신이 아들이 창고형 약국에서 감기약을 여러 개 사다 줬다며 ‘어떤 것을 먹어야 하느냐’고 물어봐 복용법과 주의사항 등을 알려드렸다”며 “이런 경우가 너무 많다 보니 약사들 사이에선 ‘거 뭐 좀 물어봅시다’란 밈(인터넷 유행)이 돌 정도”라고 말했다.
이처럼 구매와 상담이 분리되는 양상은 유통 시장의 ‘쇼루밍(Showrooming)’ 현상과 닮았다. 소비자가 오프라인 매장에서 제품을 보고 실제 구매는 저렴한 온라인에서 하듯, 창고형 약국에서 약을 산 뒤 부작용이나 병용 가능성 등 상담은 접근성이 좋은 동네 약국에서 해결하는 식이다.

박현진 약준모 회장은 “쇼루밍 현상이 심화하면 결국 판매 중심 업체만 남게 된다”며 “진료는 안 하고 시술만 하는 피부과가 많아지는 것과 유사한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약국은 단순한 유통 채널이 아닌 보건의료 안전망의 한 축을 담당하는 만큼 창고형 약국도 의약품 오남용을 막기 위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덧붙였다.
김찬호 기자 flycloser@kyunghyang.com, 이혜인 기자 hye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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