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넓고 깊은 바닷속 포식자 상어라고 하면 무엇이든 한입에 삼켜버리는 무서운 모습이 먼저 떠오르실 겁니다. 하지만 이런 무서운 상어도 가려운 곳은 참기 힘든가 봅니다.
최근 멕시코 근해에서 갈라파고스상어가 거대한 맨타가오리(대왕가오리)를 마치 살아있는 효자손이나 청소용 브러시처럼 사용하는 아주 희귀한 모습이 포착되어 해양 학계가 발칵 뒤집혔습니다.
'무서운 사냥꾼' 상어가 왜 가오리에게 몸을 비비며 애교 아닌 애교를 부렸는지 그 흥미진진한 이유가 밝혀져 충격을 주고 있는 것인데요.
◆ 바닷속 목욕탕 클리닝 스테이션의 비밀
바다 동물들도 우리 사람처럼 몸을 깨끗하게 유지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피부에 붙은 기생충이나 죽은 세포를 제때 제거하지 않으면 병에 걸릴 수 있기 때문이죠.

그래서 바다에는 '클리닝 스테이션'이라고 불리는 일종의 바닷속 목욕탕이 있습니다.
이곳에는 청소 물고기들이 살면서 큰 물고기들의 몸을 구석구석 청소해주고 그 대가로 기생충을 먹으며 서로 돕고 삽니다.
◆ 3톤 가오리를 때밀이 타월로 쓴 상어
해양 연구 단체인 '페라기오스 카쿤하(Pelagios Kakunjá)' 연구팀은 멕시코 레비야히헤도 제도 인근에서 믿기 힘든 장면을 목격하게 되는데요.
몸길이 3m가 넘는 갈라파고스상어가 몸무게가 무려 3톤에 달하는 거대한 맨타가오리에게 다가가 몸을 사정없이 비벼대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상어는 가오리의 배와 입 주변으로 천천히 접근하더니 접촉 직전에 속도를 높여 가오리의 거친 피부에 자신의 몸을 문질렀습니다.
가오리의 까칠까칠한 피부를 천연 때밀이 수건으로 이용한 셈입니다.
◆ 청소 물고기가 사라지자 찾아낸 기발한 생존법
연구팀이 분석한 결과 이런 행동은 당시 바닷속 목욕탕에 청소 물고기들이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았을 때 일어났습니다.
가려움을 참다못한 상어들이 청소 물고기 대신 주변에 있던 거대한 맨타가오리를 이동식 청소 도구로 활용하는 놀라운 적응력을 보여준 것.

◆ 가오리에게는 황당한 강제 효자손 노릇
하지만 가오리의 반응은 제각각이었습니다. 어린 상어가 다가올 때는 가만히 있어 주던 가오리도, 덩치가 큰 어른 상어가 다가오자 잡아먹힐까봐 겁을 먹고 공중제비를 돌며 필사적으로 도망치기도 했습니다.
재미있는 점은 이 관계가 상어에게는 아주 시원한 청소 서비스가 되지만 가오리에게는 아무런 이득이 없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상어의 몸에 있던 세균이나 기생충이 옮겨올 위험만 있죠. 가오리 입장에서는 난데없이 나타난 상어에게 강제로 효자손 노릇을 하게 된 황당한 상황인 꼽입니다.
연구팀은 관광객이나 다이버들이 많아지면서 청소 물고기들이 자취를 감추자 상어들이 어쩔 수 없이 이런 기발한 생존 전략을 세운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 인간의 활동이 바꾼 바다의 풍경
이번 발견은 바다 생물들이 주변 환경이 변했을 때 얼마나 영리하게 대처하는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사례입니다.
평소에는 서로 본체만체하거나 먹고 먹히는 관계일지라도, 상황에 따라서는 누군가를 청소 도구로 삼기도 하는 바닷속 세계가 정말 신비롭지 않나요?
인간의 활동이 청소 물고기들의 삶을 방해하고, 그것이 다시 상어의 행동을 변화시킨다는 사실은 우리가 바다 생태계를 얼마나 소중히 지켜야 하는지도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합니다.
맨타가오리의 등을 빌려 시원하게 목욕을 마친 상어는 아마도 기분 좋게 다음 사냥을 떠났을 것입니다. 자연은 우리가 아는 것보다 훨씬 더 유연하고 똑똑하게 돌아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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