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은 취임 이후 6년간 성과를 입증한 경영진에게 더 큰 책임을 맡기고 미래사업에는 외부 전문가를 적극 기용했다. 현대차 창사 이래 첫 외국인 최고경영자(CEO)를 선임하고 외교관 출신 인사에게 대외 전략을 맡겼다. 연구개발과 자율주행, 로봇 분야에는 글로벌 자동차·기술기업 출신 전문가들을 배치했다.
이 같은 인사는 기존 완성차 사업의 경쟁력을 유지하면서 미래 모빌리티 기업으로 전환하려는 전략과 맞닿아 있다. 정 회장 취임 6주년을 맞아 경영진이 풀어야 할 현안도 뚜렷해졌다. 관세와 경쟁 심화 속에 완성차 수익성을 지키고 소프트웨어·인공지능(AI)·로봇 분야의 기술 투자를 실질적인 사업 성과로 연결하는 일이다.
'검증된 경영진' 중심 완성차 진용…수익성 방어 중책
장재훈 부회장은 정의선 체제에서 책임 범위가 넓어진 대표적인 경영자다. 2020년 말 현대차 사장에 오른 뒤 코로나19, 공급망 혼란, 전동화 전환 등이 겹친 시기에 회사를 이끌었다. 고부가가치 차종 확대와 수익성 개선을 주도한 성과를 인정받아 2024년 말 그룹 완성차담당 부회장으로 승진했다.
장 부회장의 역할은 현대차 한 회사의 경영에서 그룹 전체의 완성차 경쟁력과 미래사업을 아우르는 방향으로 확대됐다. 올해 신년회에서는 소프트웨어 중심 자동차(SDV) 전환과 로봇·수소 사업의 방향을 설명했다. 특히 그룹 제조 현장에서 로봇의 성능과 경제성을 검증한 뒤 외부 사업으로 확장하겠다는 구상을 제시했다. 완성차 생산 현장에서 축적한 제조·품질 역량을 새로운 사업에 접목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현대차의 일상적인 경영은 호세 무뇨스 사장이 이어받았다. 2019년 글로벌 최고운영책임자(COO)와 현대차·제네시스 북미 사업 책임자로 합류한 그는 지난해 1월 현대차 사장 겸 CEO에 취임했다. 창사 이래 첫 외국인 CEO다. 현대차가 핵심 시장에서 성과를 낸 해외 사업 책임자에게 회사 전체의 경영을 맡겼다는 점에서 상징성이 크다.
미국은 무뇨스 사장이 성과를 쌓은 시장이자 앞으로 경영 능력을 입증해야 할 시장이다. 현대차의 지난해 미국 도매판매는 처음으로 연간 100만대를 넘어섰다.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과 하이브리드가 성장을 뒷받침했다. 그러나 미국의 관세 부담이 커지면서 판매 확대만으로는 수익성을 유지하기 어려워졌다. 현지 생산 비중과 부품 조달 구조를 조정하면서 가격 경쟁력까지 확보해야 하는 상황이다. 무뇨스 사장은 북미 시장에서 쌓은 경험을 바탕으로 전사 차원의 수익성 관리 능력을 입증해야 한다.

기아에서는 송호성 사장이 기존 사업의 성장과 사업 전환을 함께 이끌고 있다. 2020년 사장에 선임된 송 사장은 중장기 전략인 '플랜 S'를 추진하며 전기차와 모빌리티 사업을 확대했다. 기아는 지난해 글로벌 도매판매 313만5873대, 매출 114조1409억원을 기록했다. 앞으로는 기존 승용차 사업의 경쟁력을 유지하면서 목적기반차량(PBV)을 안정적인 수익원으로 육성해야 한다.
세 경영진이 공통으로 마주한 과제는 단연 수익성이다. 지난해 현대차와 기아의 영업이익은 전년보다 각각 19.5%, 28.3% 감소했다. 매출이 늘어도 관세와 판매 경쟁에 따른 비용 부담이 커지면 미래사업에 투입할 재원은 줄어든다. 전동화와 SDV, 로봇 등 대규모 투자가 필요한 사업이 늘어난 만큼 완성차 부문의 이익 창출 능력이 그룹 전체의 성장 속도를 좌우하는 구조다.
이 과정에서 대외 전략을 맡은 성 김 사장의 역할도 중요해졌다. 주한 미국대사 등을 지낸 그는 현대차 고문을 거쳐 2024년 말 그룹 전략기획담당 사장으로 영입됐다. 통상정책과 규제, 공급망 변화가 자동차 사업의 손익을 좌우하는 상황에서 외교·정책 경험을 경영에 접목한 인사다.
성 김 사장은 올해 신년회에서 글로벌 경제와 지정학적 변화의 예측, 공급망 변동성과 각국 규제에 대한 대응을 핵심 현안으로 꼽았다. 정책 변화를 파악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이를 생산·조달·투자 결정에 얼마나 빠르게 반영하느냐가 중요해졌다. 완성차 경영진의 사업 전략과 대외 전략 조직의 정책 대응을 긴밀하게 연결해야 하는 이유다.
미래차 기술 인재 외부서 수혈…'양산·사업화' 관건
미래차 분야의 인사는 내부에 부족한 경험을 외부에서 확보하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 차량 개발을 총괄하는 만프레드 하러 사장과 소프트웨어·자율주행 사업을 맡은 박민우 사장이 대표적이다. 글로벌 완성차 업체와 기술기업에서 경험을 쌓은 인재들을 핵심 보직에 배치해 미래차 개발과 양산 체계를 정비하려는 인사다.
하러 사장은 아우디·BMW·포르쉐·애플 등을 거쳐 2024년 현대차그룹에 합류했다. 제네시스와 고성능차 개발 조직을 맡은 데 이어 연구개발(R&D)본부장으로 역할이 확대됐다. 전통 완성차 업체에서 쌓은 차량 개발 경험과 기술기업에서 익힌 개발 방식을 접목해 차량의 기본 성능과 품질을 높이는 임무를 맡고 있다. SDV 전환에 맞춰 기존 차량 개발 체계를 개선하는 역할도 맡았다.

박민우 사장은 올해 1월 현대차·기아 첨단차플랫폼(AVP)본부장 겸 포티투닷 대표로 영입됐다. 테슬라와 엔비디아에서 자율주행 기술의 연구개발과 상용화를 경험한 전문가다. 현대차그룹에서는 차량 소프트웨어와 자율주행 기술 개발을 총괄하며 관련 기술을 실제 차량에 적용하는 역할을 맡았다.
박 사장의 합류는 송창현 전 AVP본부장이 지난해 말 사임한 이후 이뤄졌다. 책임자 교체에 따른 개발 공백을 최소화하고 기존 기술 개발 계획을 차질 없이 추진해야 한다. 특히 차량 설계와 소프트웨어 개발이 별개로 진행돼서는 양산 일정과 품질을 확보하기 어렵다. 하러 사장이 이끄는 R&D 조직과 박 사장의 AVP 조직이 개발 단계부터 긴밀하게 협력해야 하는 이유다.

로봇 분야에서도 글로벌 기술기업 출신 전문가를 확보했다. 현대차그룹은 올해 1월 테슬라에서 휴머노이드 로봇 '옵티머스' 개발을 이끌었던 밀란 코박을 그룹 자문역으로 선임했다. 코박은 인공지능(AI)과 엔지니어링 전략을 자문하며 로봇 기술의 고도화와 사업화를 지원한다. 현대차그룹이 로봇을 미래 성장동력으로 육성하는 가운데 관련 기술의 개발과 상용화 경험을 보강한 인사로 평가된다.
미래 기술을 양산으로 연결하는 과정에서는 부품 계열사의 실행력도 필요하다. 이규석 현대모비스 사장은 올해 신년회에서 SDV 양산 지원과 차량용 반도체·로봇 핵심부품 사업 강화를 주요 추진 방향으로 제시했다. 완성차와 소프트웨어 조직의 개발 성과를 안정적인 부품과 시스템으로 구현해야 기술 투자가 제품 경쟁력으로 이어질 수 있다.
관건은 조직 간 협업이다. 완성차와 소프트웨어, 로봇 등 사업 영역이 확대되면서 외부 전문가의 기술 역량을 기존 생산·품질 조직과 결합하는 일이 중요해졌다. 김혜인 그룹 인사실장 등 인사 조직에도 인재 확보를 넘어 서로 다른 전문성과 기업문화를 조율해야 할 책임이 주어졌다.
현대차 관계자는 "완성차 부문과 미래사업에서의 기술 개발 성과를 양산과 수익 창출로 이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최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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