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세영 폭로로 드러난 협회 '민낯'... 회장 마음대로 3억원 쓰고, 선수 보너스는 찔끔
안세영 손 들어준 문체부
비국가대표 국제대회 출전 길 열고
선수촌 상명하복 문화 폐지 추진
협회장과 일부 임원 비위 정황 포착
회장 임의대로 3억 원 쓰고
임원은 6800만 원 부당 보수
협회장 횡령 배임 가능성 높아
2024 파리 올림픽 배드민턴 금메달리스트 안세영의 작심 발언을 계기로 대한배드민턴협회를 조사 중인 문화체육관광부가 협회의 낡은 관행을 확인하고 개혁 의지를 보였다.
문체부 중간 조사 결과, 협회는 선수의 개인 후원을 막고 후원사 용품만 사용하도록 강제하면서 정작 후원사의 보너스는 선수들에게 제대로 전달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또 협회의 비(非)국가대표 선수의 국제대회 출전 제한 규정과 ‘지도자 명령에 복종해야 한다’는 구시대적 국가대표 선수 임무 규정은 폐지 권고 대상이다. 아울러 김택규 배드민턴협회장과 일부 임원의 비위 정황도 포착됐다.
문체부는 10일 정부서울청사 별관에서 협회 조사 중간 브리핑을 열어 “이번 조사로 잘못된 것은 바로잡고 협회가 공정하고 투명하게 운영될 수 있도록 개선하겠다”고 밝혔다. 현재까지 배드민턴 국가대표 48명 중 안세영 포함 22명을 만나 의견을 들었고, 추후 26명과도 얘기를 나눠 이달 말 최종 조사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다.
개인 후원 허용…선수들 후원사 보너스 계약 존재 몰라
문체부는 “개인 후원 계약을 풀어달라”는 안세영의 목소리에 응답했다. 협회는 선수의 개인 후원 계약을 막으면서 모두 후원사 용품만 사용하도록 강제하고 있다. 라켓과 신발 등 경기력과 직결되는 용품까지 사용을 강제하는 종목은 올림픽과 아시안게임 44종목 중 복싱과 배드민턴 2개뿐인 것으로 조사됐다. 해외 경우를 보더라도 중국을 제외하고 미국과 일본, 프랑스, 덴마크 등은 용품 사용을 강제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다만 일부 선수들은 개인 후원 계약으로 인해 어린 선수들에 대한 지원이 감소하는 것 아닌가라는 우려를 내비쳤다. 실제 문체부가 의견을 수렴한 22명은 주로 1진급 선수들이라, 나머지 2진급 선수들 의견을 듣게 되면 고민이 커질 수 있다.
문체부는 선수가 국제대회에서 우수한 성적을 냈을 때 후원사의 보너스를 잘 지급했는지 여부도 파악 중이다. A사가 후원했던 2018년까진 후원사가 선수단에 직접 지급했으나 B사로 바뀐 현재는 후원사가 협회를 통해 선수에게 지급한다. 2023년 4월부터는 ‘선수에게 직접 지급한다’는 명시적 조항이 슬쩍 삭제됐다. 문체부는 “선수단이 해당 계약의 존재를 모르고 있었다”며 “후원사 변경 전에는 보너스를 받았으나 변경 후 제대로 지급되지 않았다는 입장”이라고 했다. 후원사 전체 후원금의 전체 20%를 국가대표 선수단에 경기력 성과비로 배분한다는 조항도 2021년 6월에 선수들 몰래 사라졌다.
국제대회 출전 길 열고, 상명하복 문화 바꾼다
비국가대표 선수의 국제대회 출전 제한 규정도 뜯어고칠 방침이다. 현재는 비국가대표 선수가 국제대회에 출전하려면 국가대표 활동 기간 5년을 충족하고 남자 28세 이상, 여자 27세 이상인 경우에만 세계배드민턴연맹 승인 국제대회에 나갈 수 있다. 선수 다수는 국제대회 출전 제한을 폐지하거나 완화되길 희망했다. 문체부는 “선수 직업 행사의 자유를 과도하게 제한하는 만큼 폐지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일부는 세계랭킹이 높은 선수들이 국가대표를 하지 않고 개인 활동에만 전념해 외부 지원이 감소하는 걸 걱정했다.
문체부는 또한 선수촌 내외 생활과 훈련 중 ‘지도자의 지시와 명령에 복종’ 규정에 대해 “고 최숙현 선수 사건 후 체육계에서 공식 폐지됐는데도 규정이 남아 있다”며 즉각 폐지를 권고했다. 이 밖에 불합리하다고 판단되는 국가대표 선수 선발(복식) 방식과 실업팀 소속 선수 계약 조건도 개선할 계획이다.
회장 임의대로 3억 원 쓰고, 임원 6,800만 원 부당 보수 받아
문체부는 조사 과정에서 불거진 이른바 ‘페이백’ 논란과 관련해 김택규 회장의 후원 물품 배임 및 유용 의혹이 있다고 봤다. 협회는 2023년 대한체육회 예산을 지원받아 8억8,000만 원을 후원사 용품 구매에 쓰면서 1억5,000만 원 상당의 후원 물품을 추가로 받았다. 그러나 이를 명확한 기준 없이 공모사업추진위원장이 임의로 지역 단체에 배정한 것이 문제였다. 공모사업추진위원장 소속인 태안군배드민턴협회에 약 4,000만 원이 배분됐고, 경남 지역에는 고작 2만7,000원이 전달됐다. 올해는 용품 구입에 8억6,000만 원을 쓰고, 1억4,000만 원 물품을 받는 계약을 했다. 2년 페이백 금액은 약 3억 원에 이른다. 이정우 문체부 체육국장은 “기존 용품 구매 외에 추가로 후원 물품을 받은 것 자체는 잘한 일로도 볼 수 있으나 이사회나 총회 등 공식적인 기구를 거치지 않고 임의로 사용했다”며 “이는 보조금 관리법에 위배된다”고 강조했다.
일부 임원이 협회 규정을 위반해 6,800만 원의 인센티브를 받은 사실도 공개됐다. 협회 임원은 ‘성공 보수’를 받을 수 없지만 일부 임원이 협회의 마케팅 규정에 따라 후원사 유치에 기여했다는 명목으로 인센티브를 챙긴 것이다. 2022년과 2023년 임원 2명이 그렇게 총 6,800만 원을 받았다. 또 김 회장이 협회에 낸 후원금은 2023년 결산서에 기재된 2,300만 원뿐이며, 이마저도 협회 전무이사의 개인 계좌에서 회장 이름으로 이체된 것이 확인됐다. 2021년부터 올해 8월까지 협회 임원의 개인 통장에 지급된 여비는 약 3억3,000만 원이며 총 9명이 1,000만 원 이상을 받았다. 문체부는 “방만 운영과 불요불급한 수당 여부가 있었는지 파악하겠다”고 했다.
김지섭 기자 oni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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