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행 47%의 계좌주, 판결문 87회 등장한 이름... 김 여사, 혐의를 털 수 있을까? [도이치 수사 총정리②]
그 사이 법원에서 '김건희 관련 팩트' 규명
※문재인 정부 검찰에서 김건희 여사 관련 도이치모터스 수사를 어떻게 했는지를 알아보는 기사에서 이어집니다.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4091121170001261)
2022년 5월 윤석열 정부가 출범했다. 이후 김건희 여사와 관련한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 수사는 좀처럼 속도를 내지 못했다. 검찰은 열심히 했다고 항변하고 여러 제한이 있을 순 있었겠지만, 외형적으로 수사가 지지부진 했다는 점을 부인할 수 없다. "검찰이 김 여사를 서면조사한 뒤 무혐의 처분할 것"이라는 전망이 쏟아졌고, 도이치모터스 사건 수사에 관여한 검사들이 연이어 사의를 표명했다.
그러는 사이 검찰의 활동은 '검찰청'에서보다 '법원'에서 더 활발하게 이뤄졌다. 사실상 수사 자체보다 주범들에 대한 공소유지(기소 이후 재판에서 유죄를 입증하고 적정 형량을 받아내는 과정)에 집중한 것이다. 주가조작 범행 이후 이미 시간이 10년 넘게 지난 데다, 지난 정부 수사팀의 압수수색 등으로 확보할 수 있는 증거는 대부분 확보된 상태로 평가됐다. 그 사이 야당은 김 여사의 주가조작 의혹에 대한 특검법을 아홉 차례(2022년 5월~2024년 6월 기준) 발의했다.
김 여사의 주가조작 연루 의혹들은 주로 재판을 통해 세상에 공개됐다. 그 가운데는 △주가조작 시기 김 여사가 증권사 직원과 함께 주식 주문을 넣는 내용의 녹취록 △투자자문사가 김 여사의 계좌로 주가조작 거래를 하며 주식 잔고와 인출내역 등을 기재한 이른바 '김건희 파일'도 있었다. 해당 파일을 작성한 투자자문사 임원 민모씨는 검찰 참고인 조사를 받은 뒤인 2021년 돌연 해외로 도피한 상태지만, 2022년 11월29일 귀국해 체포됐다.
"주가조작 47%가 김 여사 계좌 통해"
지난해 2월 10일 1심 재판부는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의 주범으로 넘겨진 권오수 전 도이치모터스 회장 등에 대해 유죄를 선고했다. 1심 재판을 통해 "김 여사의 계좌가 주가조작 사건의 자금줄 역할을 했다"는 점은 더 이상 의혹이 아니라 법원이 인정한 사실로 굳어졌다.
김 여사가 받은 재판이 아니기 때문에 그에 대한 구체적 판단이 나온 것은 아니지만, 이 사건이 '김건희 계좌' 없이는 성립할 수 없는 주가조작이었음은 분명했다. 기소되지도 않은 김 여사의 이름은 1심 판결문에서 37차례, 2심 판결문에서 87차례나 적시됐다. 1심 재판부는 공소시효가 지나지 않은 2단계(2010년 9월 24일~2011년 4월 18일) 주가조작의 통정·가장매매(서로 짜고 주식을 매매하는 것) 거래 102건(1심 기준)을 유죄로 인정했는데, 그 중 48건이 김 여사 계좌를 통해 이뤄졌다고 인정됐다. 전체 범행의 47%가 김 여사 계좌로 진행된 것이다. 검찰은 이 재판 최종 의견서에서 "김건희(약 13억 9,000만 원)와 (김 여사의 모친) 최은순(약 9억 원)이 2009년 4월 1일부터 2011년 12월 30일까지 23억 원 상당의 이익을 얻은 것으로 확인된다"고 적었다.
의혹 속에 있던 김 여사와 권 전 회장 간의 관계도 명확해졌다. 재판부는 "계좌주인 김건희는 도이치모터스 상장 전(2008년 12월)부터 주식을 보유하고 있던 투자자로, 권오수의 지인"이라고 평가했다. 이밖에 1단계 주가조작에 이어, 2단계 주가조작에도 연속적으로 사용된 계좌는 김 여사와 그의 모친 최은순씨의 계좌가 유일하다는 점, 김 여사 모녀가 권 전 회장에게 직접 이모씨(1단계 주포)를 소개받았다는 점 등도 인정됐다.
이 무렵(2023년 상반기) 검찰이 김 여사에게 서면질문지를 발송한 사실은 1년 넘게 지나서야 뒤늦게 알려졌다. 당시 검찰이 보낸 A4용지 100쪽 분량의 질문지엔 투자 경위 등을 묻는 100여 개 질문이 담긴 것으로 전해졌다. 첫 서면 질의 때(2021년)보다 더 구체적인 내용이었지만, 김 여사는 별다른 답변을 보내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도이치, 니가 왜 거기서 나와
검찰과 권 전 회장 등은 항소했다. 길어지는 재판 과정 중 난데없이 해병대원 순직 수사 외압 의혹 사건과 도이치모터스 사건이 연결되었을 수 있다는 의혹이 불거졌다. 임성근 전 해병대 1사단장 구명로비 의혹의 한 갈래 당사자로 도이치모터스 사건 피고인 중 한 명인 이종호 블랙펄인베스트 대표가 지목된 것이다.
이 대표는 '주포'(설계자) 김모씨와 함께 2단계 주가조작을 주도한 인물로 꼽힌다. 1심 재판부는 그의 회사 블랙펄인베스트를 '컨트롤타워'라고 평가하면서, 김 여사 계좌 가운데 2개가 이 회사에 일임돼 주가조작에 사용됐다는 점을 인정했다. 논란의 '김건희 파일' 역시 그의 회사 업무용 컴퓨터에서 압수된 것이었다. 도주했던 작성자 민씨는 그의 처남이었다.
이런 이 대표에 대해 장경태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국회 청문회 등에서 "김 여사가 (과거) 이 대표를 '오빠'라고 불렀다"고 주장했다. 이 대표가 다른 해병대 출신 인사들에게 김 여사와 자신의 친분을 과시하며 한 말이었지만, 야당은 김 여사와 주가조작 의혹 사이에 비어있는 마지막 퍼즐을 찾은 것으로 여겨 공세를 이어갔다.
그도 그럴 것이 이 대표와 민씨는 김 여사 계좌 2개는 물론, 김 여사가 직접 매도 주문에 관여한 것으로 보이는 나머지 한 계좌 거래에도 관여한 인물이다. 문제의 거래는 ①2010년 10월 28일 3,100원 10만 주 매도 ②2010년 11월 1일 3,300원 8만 주 매도 등 2건으로, 모두 민씨와 '주포' 김씨가 매도 가격과 주문량, 시점 등에 대한 연락을 주고 받은 뒤 성사된 가장·통정매매(1, 2심)였다.
이들 거래 직후 김 여사는 대신증권 직원에게 전화로 매매 체결에 대한 사후 보고를 받았다. 녹취록에 따르면, 직원은 "10만 주 (주문) 냈고, 누가 가져갔다"거나 "방금 그 도이치모터스 8만 주 다 매도됐다"고 보고하고 김 여사는 "예" "체결됐죠" "알겠습니다"라고만 답한다.
재판부는 기소되지 않은 김 여사의 통정매매 관여 여부에 대해선 판단하지 않았다. 권 전 회장 등이 주도한 시세조정이었다는 점만 인정한 것이다. 실제, 매도 등 거래를 직접했다는 사정만으로는 주가조작의 책임을 묻기 어렵다.
다만 야권과 진보진영에서는 녹취록 속 김 여사가 짧게 사무적인 대답만 한다는 점에서, 해당 거래가 통정매매라는 점을 김 여사가 알고 있던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했다. 김 여사가 권 전 회장에 더해 이 대표와도 친밀한 사이었다면, 거래의 내막을 몰랐을 리 없다는 의심이다.
검찰, 김 여사에 방조 혐의 적용 검토
검찰이 김 여사를 직접조사해야만 사법처리 여부를 판단할 수 있다고 본 이유 중 하나도 그가 직접 주문한 것으로 보이는 일부 거래의 경위를 묻기 위해서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김 여사를 직접 조사해야 한다"는 송경호 당시 서울중앙지검장과 용산 대통령실이 갈등을 겪고 있다는 소문이 올초부터 파다했다.
결국 검찰은 올해 7월 20일 김 여사를 상대로 명품가방 수수 의혹과 함께 주가조작 의혹을 조사했다. 제3의 장소에서 비공개로 조사가 이뤄져 특혜 논란이 있긴 했지만, 도이치모터스 사건만 놓고 본다면 의혹이 처음 불거진 2019년 7월 윤석열 당시 검찰총장 인사청문회 이후 5년 만에 성사된 김 여사 조사였다.
이에 앞서 5월 16일 검찰은 항소심 법원에 공소장변경 허가신청서를 제출하기도 했다. 1심에서 무죄를 받은 '전주' 손모씨에게 주가조작 방조 혐의를 추가한 것이다. 손씨가 유죄 판결을 받으면 그 사실관계와 법리를 세밀하게 분석해 김 여사 등 다른 전주들의 사법처리를 검토하겠다는 포석으로 풀이됐다.
검찰의 전략은 적중했다. 항소심 법원은 12일 권 전 회장 등의 재판에서 손씨의 방조 혐의에 대해서도 유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손씨는 단순히 피고인들에게 돈을 빌려준 전주가 아니라, 피고인들이 시세조종 행위를 하는 사실을 인식하고, 이를 도와줄 의사로 주가조작을 용이하게 하는 행위를 했다"고 판단했다.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4091216260005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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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검찰 안팎에선 김 여사의 방조 혐의 적용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 여전하다. 다수의 주문을 직접 실행했고, 김씨의 요청에 따라 일부 대량 매수나 매도 포기를 하기도 한 손씨와 달리 김 여사는 주가조작을 인식했다거나 주가조작 일당과의 지속적인 연락을 한 정황이 드러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확보한 물증이 부족한 데다, 사건 관계자들은 김 여사에 관해 의미있는 진술을 하지 않고 있다.
검찰은 판결문 분석을 마친 뒤 김 여사에 대한 사건 처리 방향을 결정할 방침이다. 김 여사 뿐만 아니라 다른 전주들에 대한 처분도 함께 내리며 사건을 최종 마무리 짓는 방안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실제 검찰은 김 여사의 모친 최은순씨를 비롯해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에 사용된 계좌의 주인들을 전수 조사한 것으로 전해졌다.
일각에서는 이창수 서울중앙지검장이 외부 수사심의위원회의 판단을 거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이 사건은 2020년 10월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의 수사지휘권 발동으로 검찰총장의 수사지휘가 배제돼 이 지검장이 검찰 내 최종 결정권자다.
최동순 기자 dosool@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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