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날 걷기 좋은 종로 산책 코스
나는 유독 경복궁을 좋아한다. 광화문을 지나 궁 안으로 들어오면 세종대로의 소음이 조심스럽게 뒤로 물러난다. 관광객이 빠져 열기가 사그라든 시간에 방문하면 그 꿈결 같은 고요함이 더 도드라진다. 정신 없이 바빴던 5월 호 마감을 뒤로 하고, 경복궁이 있는 동네를 천천히 걸었다. 경복궁 내부의 보물 같은 장소도 방문했다. 북촌과 서촌에서 먹고, 마시고, 읽고, 보고, 걷고 싶은 이들을 위한 리스트를 소개한다.




■ 정독도서관
안국역 1번 출구에서 나와 좁은 골목을 따라가면 너른 부지의 도서관이 등장한다. 강남으로 이전한 경기고등학교 본관에 문을 연 정독도서관이다. 학교 운동장이었을 도서관 앞뜰에는 분수대와 잔디밭, 벤치가 놓여 있다. 총 3개 동으로 구성된 정독도서관은 옛 학교가 그랬던 것처럼 건물이 모두 연결돼 있다. 건물과 건물 사이에는 꽃이 흐드러지게 피었다. 학교였던 곳이어서 그런지 괜스레 마음이 편해진다.
정독도서관의 장서량은 무려 50만 권. 읽고 싶은 책을 찾지 못해 도서관 상호대차를 이용하거나 사서 본 경험이 있는 독자라면 눈이 번쩍 뜨일 만한 숫자다. 여러 분야의 책을 폭넓게 소장하고 있는 것은 물론 인문사회자연과학실, 어문학/족보실을 따로 구분해 뒀다. 서가가 배치된 도서실에는 의자에 앉아 책이나 족보를 펼쳐보고 있는 이들이 군데군데 눈에 띈다. 좌석은 어문학/족보실보다는 인문사회자연과학실이 더 많은 편이다. 내부도 매우 쾌적한 편!
도서관 한 켠에는 구내식당인 ‘소담정’이 있다. 5~7천원에 학식 느낌의 백반과 찌개류, 라면, 우동 등을 판매한다. 도서관에서 시간을 보내던 어렸을 적 추억을 불러일으키는 공간이다. 저렴한 가격에 식사를 한 후 바로 열람실이나 도서실로 올라가 책을 보거나 공부할 수 있다는 점이 좋다.
주소 서울 종로구 북촌로5길 48 정독도서관


■ 국제갤러리
정독도서관에서 걸어서 5분 거리에 국제갤러리가 있다. 아트 바젤에 꾸준히 참석하는 화랑이자, 국내 작가들의 작품은 물론 루이스 부르주아, 아니쉬 카푸어 등 해외 예술가들의 개인전을 만나볼 수 있는 곳이다.
이 날은 아르헨티나에서 작품 활동을 하다 한국으로 거점을 옮긴 1세대 여성 조각가 김윤신 작가의 개인전을 개최하고 있었다. 둘을 합해도 하나가 되고 둘을 나눠도 하나가 된다는 의미의 ‘합이합일 분이분일(合二合一 分二 分一)’ 연작과 회화 작업 일부가 소개됐다. 장승과 숲길에 있는 작은 돌탑들을 연상시키는 조각 작품, 원색을 사용한 강렬한 회화를 통해 염원의 정서와 강인한 생명력을 느낄 수 있었다. 전시관에서 배부하고 있는 안내문에 작품과 작가에 대한 설명이 자세히 적혀 있어 감상에 큰 도움이 됐다. 혼자 여유롭게 시간을 보낼 만한 갤러리를 찾고 있는 이들에게 적합한 공간이다. 5월에는 독일 사진작가 칸디다 회퍼의 신작을 선보일 예정.
주소 서울 종로구 삼청로 54
관람료 무료




■ 경복궁 향원정, 집옥재
전시 관람을 마치고 갤러리 앞 횡단보도를 건너면 경복궁 안으로 바로 들어갈 수 있다. 이 날 방문한 곳은 경복궁 북쪽에 있는 향원정과 집옥재. 향원정은 고종이 건청궁과 함께 지은 정자, 집옥재는 그가 사용했던 서재다. 이곳은 광화문으로부터 도보로 20분 가량 떨어져 있어 경회루나 근정전에 비해 관광객이 적은 편이다.
‘향기가 멀리 간다’는 뜻의 향원정은 연못인 향원지 가운데에 위치해 있다. 푸릇한 초목과 파란 하늘, 섬세하게 만들어진 정자의 모습이 아름답게 조화를 이룬다. 연회를 하거나 사신을 접대했던 경회루와는 달리 사적 휴식 장소인 향원정은 좀 더 아담하고 편안한 느낌이다. 고종과 명성황후는 한겨울에 연못이 얼면 이곳에서 스케이트 대회를 관람했다고 전해진다. 일반적인 정자와는 달리 내부에 온돌이 설치돼 있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경복궁 별빛야행 행사에 참여하면 정자로 이어지는 다리인 ‘취향교’를 건널 수 있다.
향원정 왼쪽에 자리한 집옥재는 어진과 책을 보관하는 용도의 건물이다. ‘옥처럼 귀한 것을 모은다’는 의미에서 이런 이름이 붙었다. 전돌로 양쪽 벽을 쌓아 올리는 등 청의 건축 양식을 도입해 이국적인 느낌을 주는 곳이기도 하다. 내부에는 조선왕조와 역사에 관한 도서들이 배치돼 있다. 2016년부터 궁궐 속 작은 도서관으로 일반에 개방하고 있어 배치된 책을 집옥재 내에서 자유롭게 읽을 수 있다.
주소 서울 종로구 사직로 161 경복궁
관람료 3000원


■ 통인시장 원조할머니 떡볶이집
계속 걷다 보니 간식거리가 먹고 싶어 통인시장을 찾았다. 이곳의 명물은 엽전으로 도시락 반찬을 하나씩 사 먹는 ‘엽전 도시락’이다. 가장 인기 있는 메뉴는 기름 떡볶이. 정독도서관에서 식사를 하고 온 터라 기름 떡볶이 단일 메뉴만 먹어 보기로 했다.
통인시장의 ‘원조할머니 떡볶이집’은 1956년부터 3대째 기름 떡볶이를 판매하고 있는 곳이다. 서울미래유산으로 지정된 맛집이기도 하다. 기름 떡볶이는 고춧가루로 양념한 떡을 기름에 바싹 볶아낸 요리인데, 고춧가루가 타지 않도록 볶아내면서 바삭하게 고루 익히는 것이 포인트다. 고춧가루가 잔뜩 올라가 있어 다소 위협적인 비주얼이지만, 매운 맛보다는 기름과 고춧가루의 고소한 맛이 강하다. 평소 매운 음식을 잘 먹지 못해도 충분히 시도해 볼 수 있다.
주소 서울 종로구 자하문로15길 13
가격 기름 떡볶이 1인분 4000원


■ 타이티
커피보다 차를 좋아한다면 타이티(TAETEA)에 방문해 보자. 타이티 종로통인직영점은 중국 보이차 브랜드 ‘대익’에서 운영하는 찻집이다. 이곳의 보이차 제조 비법은 중국의 문화유산으로 등재돼 국가적으로 보호를 받고 있다. 종로통인직영점은 통인시장 입구 근처 대로변에 위치해 있어 찾기 쉽다.
기계로 압착추출한 보이차는 물론, 여기에 우유와 연유를 더한 밀크티, 유자청을 넣은 음료 등 여러가지 메뉴를 판매하고 있다. 직접 차를 우려 마실 수 있도록 다기 세트 메뉴도 준비돼 있다. 나는 우린 보이차 티팟과 잔, 간단한 다식이 제공되는 보이숙차 티팟 세트를 골랐다. 지나치게 쌉싸래하거나 떫지 않고, 입안이 산뜻하게 정리되는 느낌이 들었다. 매장이 매우 조용하고, 2층은 커다란 창이 나 있어 내부가 밝고 깔끔하다. 음악 소리도 크지 않아 책을 읽으며 머무르기 좋은 공간이다. 아쉽게도 종로 직영점은 4월 말에 운영이 종료될 예정. 대익의 보이차를 맛보고 싶다면 강남 플래그십 스토어를 방문하자.
주소 서울 종로구 자하문로13길 4-6 타이티 종로통인직영점 (대익차)
가격 보이 숙차 티팟 세트 7200원


■ 무무대 전망대
오늘 산책 코스의 마지막 목적지인 무무대는 인왕산 둘레길에 자리한 전망 명소다. ‘아무것도 없구나, 오직 아름다운 것만 있을 뿐’이라는 의미로 무무대(無無臺)라는 이름이 붙었다. 종로 09번 버스 종점인 수성동계곡 정류장에서 하차해 약 10분 정도 걸어 올라가면 된다. 서울의 다른 뷰포인트에 비해 덜 알려져 있어 붐비지 않고, 근처에 버스 정류장이 있어 접근성이 좋다는 점이 매력적이다.
전망대에 도착하면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는 가운데 가슴이 뻥 뚫리는 풍경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종로와 을지로 일대, 경복궁이 한눈에 내려다보이고, 남산 타워도 선명하게 보인다. 이곳에 방문하기 전에 인터넷에서 ‘무무대는 나만 알고 싶은 곳이다’라는 글을 읽었는데, 왜 그런 코멘트를 남겼는지 단박에 알 수 있는 곳이었다. 느긋하게 도심 풍경이나 야경을 감상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꼭 방문해 보길 바란다. 근처에 위치한 청운문학도서관과 초소책방을 함께 산책 코스로 묶어 다녀와도 좋다.
주소 서울특별시 종로구 옥인동 산3-1
ㅣ 덴 매거진 Online 2024년
글·사진 에디터 김보미(jany6993@mcircle.bi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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