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가 더 잘했으면 팀이 1등을 했을 수도 있다." 한화 이글스 엄상백의 솔직한 고백으로 야구팬들 마음을 울렸다. FA 4년 총액 78억원이라는 거액으로 한화에 입단했지만, 첫 시즌은 참담했다. 2승 7패, 평균자책점 6.58이라는 성적표는 그 어떤 변명도 허용하지 않았다.
동료들이 한국시리즈 무대에서 땀을 흘리는 동안, 엄상백은 벤치에서 그 모습을 지켜봐야 했다. 한국시리즈 엔트리에서 제외된 순간의 심경을 묻자 그는 담담하게 답했다. "인정했다. 내가 가장 좋지 않았다." 마음이 무거웠지만 현실을 부정하지 않았다.
KT에서의 화려한 과거와 한화에서의 시련

2024년 KT 시절 엄상백은 개인 최다인 13승을 기록하며 FA 시장의 최고 어깨였다. 한화와의 4년 78억원 계약은 당시 화제의 중심이었다. 하지만 새 유니폼을 입고 맞은 첫 시즌은 예상과 달랐다. 28경기에서 80이닝 3분의 2를 소화했지만 결과는 참혹했다.

정규시즌 막판 불펜으로 전환했지만 플레이오프에서도 3분의 2이닝 2실점으로 반전 기회를 놓쳤다. 결국 한국시리즈 엔트리에서 제외되는 수모를 겪었다. 78억이라는 몸값이 무색할 정도의 성적이었다.
부진의 원인을 찾아서

엄상백은 스스로 부진의 원인을 냉정하게 분석했다. 팀을 처음 옮기면서 쏟아지는 관심과 시선을 과하게 의식했다는 것이다. "더 잘하려고 했고 더 안 맞으려고 했다. 볼넷도 주지 않으려고 하니까 더 볼넷을 많이 주게 되더라." 소극적인 투구가 악순환의 고리였다.
과도한 부담감이 오히려 독이 됐다. 완벽하려는 욕심이 컨트롤 난조로 이어졌고, 이는 곧 실점으로 연결됐다. 78억이라는 계약금이 주는 압박감을 제대로 소화하지 못한 것이다.
절치부심의 겨울나기

한국시리즈에서 제외된 후 엄상백의 겨울은 달랐다. 평소 미니캠프를 잘 가지 않던 그가 고영표, 이태양과 함께 제주도 미니캠프에 참여했다. "예년보다 시즌을 일찍 준비했다"는 말에서 그의 각오를 엿볼 수 있다.
그 결과는 시범경기에서 바로 나타났다. 삼성전에서 3이닝 2피안타 무실점, 최고 구속 148킬로미터의 무결점 피칭을 선보였다. 달라진 마음가짐도 눈에 띄었다. "좀 더 과감해진 것 같다. 마운드 위에서 맞더라도 공격적으로 던지려고 한다."
부끄럽지 않은 투수가 되고 싶다

엄상백의 올 시즌 각오는 소박하면서도 진솔했다. "작년에 많이 부끄러웠다. 올해는 그냥 부끄럽지 않은 내가 됐으면 좋겠다." 화려한 수식어나 거창한 목표 대신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은 투구를 하겠다는 다짐이었다.
FA 첫 시즌의 최대 시련을 겪고 수모를 맛본 엄상백이 마운드로 돌아왔다. 그의 변화된 모습이 한화의 2026시즌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