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종익의 지방소멸리포트 5 어디가 살고 죽는가, 전라남도편

‘여수에서 돈 자랑 말고, 벌교에서 주먹 자랑 말고, 순천에서 인물 자랑 하지 마라.’ 꽤 오랫동안 남도지방에서 전해지던 말이다. 한편 소설 <태백산맥>에는 “언제부턴가 벌교 가서 돈 자랑, 주먹 자랑하지 말라는 말이 순천에 가서 인물 자랑하지 말고, 여수에 가서 멋 자랑하지 말라는 말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되었는지도 모른다”라는 표현이 등장하기도 한다. <태백산맥>의 작가 조정래 선생은 과거 한 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벌교, 순천, 여수를 논할 때 왜 이런 설명이 따라붙는지에 대해 설명한 적이 있다. 벌교는 예로부터 교통 중심지로 여러 지역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라 자연스럽게 ‘주먹’을 잘 쓰는 이들도 많이 모이게 되었다고 한다. 주먹이 센 이들이 많이 모이니 싸움이 잦을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이런 이야기가 나왔을 것이다. 그렇다면 순천에서 인물 자랑을 하지 말라는 이야기는 왜 나온 것일까? 순천은 예로부터 고흥, 보성, 구례 등 전남 동부 6곳의 인재들이 모인 곳이다. 소위 ‘공부 좀 한다는 이들이 모인 지역’으로 유명했던 것이다. 인물 자랑이라는 것이 외모를 뜻한다기보다는 우수한 인재를 뜻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마지막으로 여수에서는 왜 돈 자랑을 하지 말라고 했을까? 이는 여수가 가진 경제력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여수시의 지역내총생산(GRDP)은 전라남도 전체의 3분의 1이 넘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전라남도는 여수 덕분에 유지된다고 볼 수도 있을 정도이니 여수 가서 돈 자랑을 하지 말라는 표현이 이해가 간다. 돈이 많은 곳으로 유명했던 여수는 2012년 버스커버스커의 <여수 밤바다>라는 곡이 인기를 끌면서 로맨틱하고 트렌디한 이미지를 가진 도시로 탈바꿈하게 된다. 과거 세대에게는 돈이 많은 이미지였던 여수가 MZ세대에게는 로맨틱한 밤바다를 가진 대한민국 대표 바닷가로 인식되는 것을 보면 소프트파워가 가진 힘이 대단하다는 생각도 든다. 아무쪼록 지방소멸리포트 다섯 번째 편은 싸움도 잘하고, 인물도 뛰어나며, 돈도 많은데다가 로맨틱하기까지 한 모든 것을 가진 전라남도이다.

나종익(주식회사 코드랩리얼티 대표이사) | 자문 성호건(주식회사 한국부동산개발연구소 대표이사)

지난 5년 간 가장 토지 거래가 많았던 지역은 어디일까

필자는 당연히 여수일 것이라 생각했는데 정답은 놀랍게도 해남군이었다. 해남군은 전라남도에서 가장 넓은 곳이며 땅끝마을로 유명하다. 해남군에서는 5년 간 약 46,000건이 넘는 토지 거래가 이뤄졌다. 절반 가까이가 관리지역이었고 거래된 필지 3개 중의 하나는 답이었다. 두 번째로 거래가 많았던 지역은 함부로 인물 자랑을 하면 안 되는 순천시였다. 순천시에서는 지난 5년 간 약 45,000건에 이르는 토지거래 건수가 있었다.

전라남도에서 가장 도시화가 되어 있는 곳이다 보니, 거래가 많았던 토지들의 용도지역은 주로 도시지역이 대다수인 것으로 보인다. 순천시는 여수시, 광양시 등 공단이 있는 도시들과 접해 있다. 또 교육 수준이 높고 각종 주거 편의시설 등이 많아 전남지역에서는 가장 인기 있는 주거지 중의 하나로 볼 수 있다. 이러한 요인들로 인해 토지 거래가 활발했던 것이라고 생각된다. 전남지역에서 세 번째로 인기가 많았던 지역은 고흥군이었다. 인구가 점점 줄어 6만 명 선이 위태위태한 고흥군은 유자와 나로우주센터, 소록도 등으로 유명하다. 아무래도 주 산업이 농업이어서인지 거래된 토지들의 용도지역 또한 관리지역이 가장 많았고, 답과 전이 많이 거래된 전형적인 농촌도시의 모습을 보여준다.

네 번째로 토지거래가 많았던 지역은 바로 나주시였다. 나주시는 전라남도의 ‘라’에 해당하는 도시이자, 필자의 본관이기도 하다. 물론 필자는 나주에 가본 적이 없고 필자의 할아버지조차도 나주에 가본 적이 없으니 나주와 직접적인 관계는 없다. 그래도 무언가 나주라는 도시를 들으면 기분이 조금 묘해지는 것은 사실이다. 나주시는 한때 인구가 24만 명을 넘어섰던 시절도 있었으나 2010년에는 9만 명마저도 위협을 받았던 적이 있다. 최근에는 한국전력 혁신도시가 이전하고 아파트들이 속속 입주하며 인구가 소폭 상승하기도 했지만, 아직도 조금은 아슬아슬한 상황임에 틀림없다. 나주혁신도시의 주거 환경이 상당히 뛰어나 주변 지역이나 광주광역시에서도 이주하는 사례들도 많지만, 나주의 구도심이 많이 쇠퇴했고 혁신도시 내 상가들의 공실문제도 심각한 수준이기는 하다.

다섯 번째로 토지거래가 많았던 지역은 <여수 밤바다>의 배경인 여수시이다. 여수시는 앞에서도 언급하였듯이 2010년 이후 엄청난 발전을 이룬 곳이다. 타 지역과 다르게 거래된 필지들의 용도지역 1위, 2위가 모두 도시지역이었다. 특히 주거지역의 거래가 많았는데 이는 수도권 여타 도시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수치이다. 여수가 전라남도에서 가장 현대적이고 활기찬 곳으로 완전히 자리를 잡은 모양새다.

거래가 많이 일어난 지역이 지가상승률도 높았을까

전라남도에서 가장 지가상승률이 높았던 곳은 여수시(13.8%)였다. 여수시의 지가상승률은 전라남도 평균(10.3%)보다 약 3%가량 높았으며, 전북특별자치도에서 가장 높았던 완주군(9.9%)보다도 훨씬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호남지역에서 광주광역시를 제외하고는 가장 핫한 도시임에 틀림없다. 특히 여수시 중에서도 신월동(21.1%), 봉산, 남산동(20.5%) 일대가 특히 높은 지가상승률을 보였다.

두 번째로 전라남도에서 지가 상승률이 높았던 곳은 장성군(11.6%)이었다. 장성군은 광주광역시와 인접한 곳으로 광주연구개발특구 첨단3지구에 미래를 걸고 있는 지역이다. 첨단3지구는 광주연구개발특구이지만, 부지의 70%가량이 장성군 내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장성군은 작년 국립심혈관센터 유치에 성공했으며, 여러 공동주택들의 분양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현재 장성군의 인구는 42,000여 명에 불과하지만 개발계획이 차근차근 이뤄진다면 인구 6만 명 돌파는 시간문제로 보인다.

세 번째로 지가상승률이 높았던 전남지역은 순천시(11.5%)였으며, 네번째로 지가상승률이 높았던 곳은 대나무로 유명한 담양군(11.4%)이었다. 담양군의 매산지구는 2023년 지역활력타운 조성 사업 공모에 선정된 바가 있다. 지역활력타운은 지방 이주 정착을 희망하는 은퇴자 및 청년층에게 주거, 문화, 복지, 일자리 등을 제공하는 사업으로 총사업비가 1조 원 이상 투입된다. 또 담양군은 보촌지구를 개발하고 있는데 이 지역에는 약 3,000세대 이상의 공동주택을 건설할 계획이다. 계획대로 되면 광주광역시의 위성도시로서의 담양군의 성장 가능성에 주목할 필요가 있겠다.

다섯 번째로 지가상승률이 높았던 곳은 바로 포스코의 제철소로 유명한 광양시(10.5%)이다. 광양시는 제철소로 인해 전라남도 지역에서 두번째로 지역내총생산이 높은 곳이다. 인구는 최근에는 조금 주춤하지만 그동안 꾸준히 증가해 15만 명에 육박하고 있다. 제철소에 근무하는 젊은 층들이 많은 관계로 평균연령 또한 낮은 편에 속하는 활기찬 지역이다. 하지만 포스코 자체가 최근 성장에 어려움을 겪고 있어 광양시의 미래도 그다지 밝은 것만은 아니다. 포스코에만 너무 의존하는 것은 광양시가 지양해야 할 태도이기도 하다.

한편 전라남도에 관한 칼럼을 쓰며 가장 궁금했던 점은 자칫 부정적으로 비춰질 수 있었던 오컬트 영화 <곡성> 개봉이 곡성군 땅값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쳤느냐다. <곡성>이라는 영화가 알려지면서 많은 곡성군민들은 곡성의 이미지가 악화될 것을 우려했던 것 같다. 당시 곡성군수는 이러한 위기를 기회로 바꾸자는 역발상이 담긴 기고문을 내면서 많은 언론에 찬사를 받았고, 곡성군의 관광객이 부쩍 늘었던 사례가 있었다. 일각에서는 곡성군의 땅값이 떨어질 것을 우려했으나 실제 데이터를 살펴보니 영화가 개봉한 이듬해인 2017년의 지가상승률은 여타 다른 전라남도 내 지역과 큰 차이가 없었다. 전라남도 지역 22개 시·군중에서 9번째로 높은 지가 상승률(3.9%)을 기록한 것을 보면 말이다.

가장 활기찬 동네는 어디일까

<여수 밤바다>가 울려 퍼지는 로맨틱한 여수일까? 인물이 많다는 교육도시 순천일까? 정답은 광양시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광양시는 제철소의 영향으로 젊은 층들의 비율이 상당히 높다. 하지만 광양시마저도 최근 젊은 층들의 비율보다 노년층의 인구비율이 높아지면서 소멸지수가 1 밑으로 떨어지게 됐다.

두 번째로 지방소멸지수가 높은 도시는 순천시였고 세 번째는 목포시였다. 목포시는 전라남도 서부권의 중심도시로 1950년대에는 대한민국 6대 도시 안에 들었을 정도로 전성기가 화려했던 곳이다. 예전의 영광이 아직 죽지는 않은 것 같다. 아직도 목포 인근의 산간도서 지역 학생들이 목포로 유학을 오는 경우가 꽤 되는 것을 보면 말이다. 물론 예전보다는 목포의 힘이 많이 약해졌지만 전라남도에서는 아직도 꽤나 활기찬 지역 중 한 곳임에는 틀림없다.

네 번째로 젊은 지역은 무안군이었다. 무안군은 전남지역에서 유일하게 지방소멸지수가 오른 곳이다. 과거 인구가 30만 명이 넘었던 무안군의 인구는 꾸준히 줄어 지난 2005년에는 급기야 6만 명 붕괴가 위협받는 수준에 이르렀다. 다행스럽게 2005년부터 남악신도시 조성사업이 시작되면서 인구는 꾸준히 증가하였고, 최근에는 약 9만 명이 넘는 인구가 무안군에 거주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남악신도시가 건설되는 시점에 전라남도청, 전라남도의회, 전라남도교육청, 전라남도지방 경찰청이 차례로 입주하면서 무안군은 전라남도의 대표적인 행정타운으로서의 모습을 갖게 되었다.

 영광스러운 영광군 출산율… 하지만 지방소멸의 시계는 가속되고 있다

지난 2023년 대한민국의 합계출산율은 0.78명이었다. 가장 높은 곳은 세종특별자치시(1.12명)였고 두 번째가 전라남도(0.97명)였다. 특히 전라남도 영광군의 출산율(1.8명)은 대한민국의 모든 시군구 중에서 1위였는데 이는 대한민국 평균의 두 배가 넘는 수치였다. 그렇다면 영광군의 출산율은 왜 이렇게 높은 것일까?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지자체의 촘촘한 정책에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영광군에서 는 결혼장려금, 신혼부부/다자녀가정 전세자금 이자 지원, 임산부 교통카드, 공공산후조리원 비용 지원, 신생아 양육비 지원 등의 자체적인 출산장려 정책이 있으며, 2026년에는 공공산후조리원을 설립하고 직접 운영할 것으로 알려졌다. 표면적으로 드러난 영광군의 출산율 통계 수치는 타 지역에 비해 훌륭하지만, 영광군의 지방소멸지수는 상당히 심각한 상황으로 전개되고 있다.

한편 해마다 갱신하는 기록적인 출산율은 대한민국에서는 더 이상 놀라운 일이 아니다. 이미 되돌릴 수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지금이야 어떻게 해서든 출산율을 높이는 방안을 강구하고 최선을 다해야겠지만, 저출산에만 매몰되어 있어 지방소멸을 막을 정책의 초점을 출산율에만 맞추는 것이 과연 옳은 길인가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출산율을 높이기 위해 정부 및 지자체들은 최선을 다해야 함에는 틀림없다. 하지만 동시에 남아 있는 주민들이 조금이라도 지방을 떠나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해야 할 것이다.

전라남도의 출산율을 논할 때 빠지면 안 되는 곳이 해남군이다. 해남군은 2020년 이후 4년 만에 출산율(1.35명) 반등에 성공했는데, 이는 대한민국 평균의 2배에 육박하는 수치이다. 물론 절대적인 신생아의 수는 많지 않지만, 그래도 수치가 상당히 높게 나온 것은 눈여겨 볼 만하다. 요즘 같은 지방소멸시대에 신생아의 수가 늘어난다는 것은 지역에 엄청난 축복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해남군은 2012년부터 2018년까지 7년 연속 전국 1위의 출산율을 기록하였다. 겉으로 보이는 수치는 상당히 높지만 사실 이 통계에는 안타까운 진실이 숨어 있는데, 바로 출산장려금을 받기 위해 해남군으로 왔다가 지급이 종료되면 다시 해남군을 떠나는 부모들이 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지방소멸을 막기 위해 이러한 장려금을 주는 것은 좋을 수는 있지만, 가장 중요한 인프라 혹은 일자리를 만들어 주는 것이 더욱 장기적으로 출산율을 높이는 것이 아닐까? 물론 일자리나 인프라를 만드는 것 자체도 어렵기 때문에 쉬운 문제는 아니다. 지난 1995년 삼성 故 이건희 회장은 “우리나라는 기업은 2류, 행정은 3류 그리고 정치는 4류”라고 했다. 전라남도는 올 4월 총선에서의 선거구 획정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는데 아마 이 회장이 살아 있었다면 기업은 1류가 되었는데 정치는 오히려 5류로 떨어졌다며 절망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이번 총선에서 순천시의 해룡면에 살고 있는 주민들은 순천시를 위해 일할 국회의원을 뽑지 못하고, 광양시를 위해 일을 할 국회의원을 뽑게 된다. 이는 선거구를 획정하는 과정에서 의석수가 줄어드는 것을 막기 위한 정치인들의 욕심 때문이다. 기업은 세계 무대를 향해 나아가는데 정치인들은 어떻게 해서든 지역구를 지키기 위해 말도 안되는 일을 벌이는 것이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화가 치민다. 우리는 지방소멸시대에 살고 있다. 지방 소멸을 막을 수는 없다지만, 최대한 늦추기 위해서는 정치인들이 5류가 아닌 최소한 3류는 되어야 하지 않을까?

2024년 4월은 총선이 있는 달이다. 특히 전라남도의 투표 결과는 굳이 보지 않아도 될 정도로 예상이 가능하지만 이번 선거에서는 조금이나마 다른 모습을 보고 싶다. 전라남도에서 보수진영이, 경상북도에서 진보진영이 당선되는 그날, 지방 소멸에 대한 심도 있는 논의가 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