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8년 지강헌 사건과 죽음의 광시곡이 된 비지스의 ‘Holiday’!

[이영훈의 노래가 품은 역사]
인질극 주범 지강헌의 절규
73억 횡령한 전경환은 가석방
560만원 훔치고 17년형 옥살이
당시 사회불평등 적나라하게 고발
비지스의 '홀리데이' 요청한 뜻은?

1988년 10월 16일. 국민들은 핏발선 눈으로 권총을 머리에 겨눈 채 절규한 한 남자의 말을 되뇌이며 전율했다. “유전무죄(有錢無罪), 무전유죄(無錢有罪).”

그의 말보다 더 한국 사회의 불평등을 굵고 짧게 나타낸 표현이 있었을까? 권총을 든 남성이 비지스의 ‘홀리데이’(Holiday)를 들으며 죽음을 선택하는 장면은 할리우드 갱영화나 홍콩 느와르를 연상시켰다.

권총을 든 남성의 이름은 지강헌. 당시 34세였다. 지강헌 등 12명은 10월 8일 영등포교도소에서 공주교도소로 이송되던 중 탈출해 서울시내로 잠입했다. 이 과정에서 호송교도관은 권총을 탈취 당했다. 이들은 형기를 마쳤지만 보호감호처분 명분으로 풀려나지 못하고, 또 다시 옥살이를 가야 하는 것에 큰 불만을 품고 세상 밖으로 뛰쳐나갔다.

지강헌의 경우 상습범이지만 556만 원을 훔친 죄로 징역 7년+보호감호 10년 등 총 17년형이 떨어졌다. 지강헌은 눈앞이 캄캄하고 앞길이 막막했다. 반면 73억 원을 횡령한 전두환 전 대통령의 동생 전경환에게는 불과 징역 7년의 선고가 내려진 것에 분노했다.

전경환과 지강헌. 사진=JTBC캡쳐

이 중 7명은 추가 범죄를 저지르거나 룸살롱에서 술을 마시거나 고향집을 찾던 중에 붙잡히거나 자수를 하면서 ‘짧은 자유’에 종지부를 찍었다. 지강헌 일당의 인질극에 동참하지 않은 김길호는 홀로 도주해 숨어 지내다가 탈주한 지 1년9개월만인 1990년 7월 1일 경찰에 체포되었다.

가정집 침입해 가족들 인질로 잡아

조기에 체포되지 않은 5명 중 지강헌, 안광술(당시 22세), 강영일(21세), 한의철(20세) 등 4명은 경찰의 검문을 피해 서울 시내를 전전하다가 10월 15일 밤 9시 40분쯤 서울 서대문구 북가좌동 고모 씨의 가정집에 침입해 가족을 인질로 잡았다.

당시 탈주범들이 침입해 공포에 사로잡혔던 고 씨 가족들은 침착하게 대응하며 긴장을 완화시켰다. 그 덕에 인질범들도 마음의 안정을 찾아 마치 친구나 친척집에 온 것 같이 편안하게 식사하고 대화를 나누고 밀린 잠을 자기도 했다.

가정집에 잠입해 고모 씨 가족을 인질로 삼고 경찰과 대치한 지강헌 일행.

그러나 언제 이들의 태도가 바뀔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느낀 아버지 고 씨가 인질범이 잠에 빠져 감시가 소홀한 틈을 타서 다음날(16일) 새벽 4시쯤 탈출했다. 그는 인근 파출소에 가서 “권총 든 탈옥수들이 가족을 인질로 잡고 있다”라고 신고했다. 곧바로 경찰 병력 1000여 명이 집을 포위하면서 새벽 4시 40분부터 지강헌 일당과 대치에 들어갔다.

지강헌 일당은 마치 테러리스트처럼 자신들의 주장을 TV로 생중계해달라는 요구를 하게 되고, 경찰은 그 요구를 수용했다. 몰려든 방송사의 카메라와 마이크는 사상 초유의 ‘인질극 생중계’를 하게 됐다. 갑자기 ‘거물’이 된 듯한 인질범들은 공명심과 과시욕이 고조된 가운데 탈주극을 벌이게 된 원인인 억울함을 정제되지 않은 말로 쏟아냈다.

“유전무죄 무전유죄” 지강헌의 절규

그 가운데 지강헌이 자신의 삶에 대해 늘어놓은 독백, 특히 어린 시절 ‘시인’을 꿈꿨다는 이야기 등이 장안의 화제가 되기도 했다. 특히 유명했던 말은 지강헌의 ‘유전무죄 무전유죄’였다.

지강헌은 “돈 없고 권력 없이는 못 사는 게 이 사회다. 전경환의 형량이 나보다 적은 것은 말도 안 된다. 대한민국의 비리를 밝히겠다. 돈이 있으면 판검사도 살 수 있다. 유전무죄 무전유죄, 우리 법이 이렇다”라고 외쳤다.

대치를 이어가던 16일 정오 무렵, 지강헌은 강영일에게 “밖에 나가서 경찰이 약속한 도주용 승합차가 준비되었는지 확인해 보라”고 지시했다. 밖에 나온 강영일이 승합차가 준비되지 않은 사실을 확인하고 집 안으로 들어가려 할 때 지강헌은 “내가 주는 마지막 선물이다”라며 땅바닥을 향해 총을 쐈다. 후배인 강영일에게 ‘죽음의 공간’으로 들어오지 말고 자수해서 너만이라도 살라고 강권했던 것이다.

끝까지 함께 하겠다며 자수하기를 거부했던 강영일은 결국 지강헌의 뜻을 받아들여 자수를 하게 되고, 4명 중 유일하게 살아 남은 사람이 된다. 그 사이 안광술과 한의철은 지강헌에게서 총을 가져간 뒤 차례로 자살했다.

마지막 저항을 하는 지강헌.

두 공범이 자살한 뒤 자포자기 심정이 된 지강헌은 경찰에게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팝그룹 비지스의 ‘홀리데이’ 노래가 들어있는 카세트테이프를 요구했다.

Ooh you're a holiday, such a holiday
Ooh you're a holiday, such a holiday
It's something I thinks worthwhile
If the puppet makes you smile
If not then you're throwing stones
Throwing stones, throwing stones
Ooh it's a funny game
Don't believe that it's all the same
Can't think what I've just said
Put the soft pillow on my head

비지스의 홀리데이

지강헌은 ‘홀리데이’를 들으며 창문을 깨 만든 유리조각으로 목을 찔러 자살을 기도했고, 이를 지켜본 인질이 비명을 질렀다. 경찰특공대가 인질이 위험한 것으로 판단하여 즉각 진입하여 지강헌의 다리와 옆구리에 총을 발사했다. 세브란스 병원으로 실려 간 지강헌은 몇 시간 뒤 과다출혈로 숨졌다.

경찰의 총에 맞고 쓰러진 지강헌을 형사들이 급히 후송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죽음의 광시곡이 된 ‘홀리데이’

탈주범 지강헌이 인질극을 벌이며 마지막 순간 좋아하는 노래를 틀어달라며 요청한 곡으로 유명한 노래 ‘홀리데이’. 이 노래에 관해 오랫동안 많은 루머와 추측이 난무했다.

첫 번째 가설은 지강헌이 경찰에게 틀어달라고 하여 스피커를 통해 주민들과 함께 들었다는 것, 두 번째는 지강헌이 인질을 시켜 경찰에게 건네받아서 인질이 틀었다는 것, 그리고 세 번째는 지강헌이 인질에게 받아 직접 틀었다는 것이다.

또한 노래 자체에 관한 루머도 있었는데, 지강헌이 팝송 ‘홀리데이’를 달라고 요청하자 경찰이 비지스의 ‘홀리데이’와 스콜피온스의 ‘홀리데이’ 동명의 음반 두 개를 가져와서는 스콜피온스의 ‘홀리데이’를 틀었다는 내용으로, 많은 사람들에게도 이렇게 알려졌다.

그러나 당시 방송사에서 촬영한 실제 지강헌의 인질극 영상을 꼼꼼히 살펴본 결과 루머와는 많이 달랐다. 영상을 살펴보면 지강헌이 경찰에게 ‘홀리데이'를 요청하자 스콜피온스와 비지스의 동명 테이프 두 개가 담장을 넘어 인질에게 전달됐고, 그것을 받은 지강헌이 집 안에서 비지스의 ‘홀리데이’를 틀었던 것이다. 이 같은 사실은 실제 영상자료에서 비지스의 ‘홀리데이’ 음악이 작게 들리는 것으로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스콜피온스의 '홀리데이'

당시 촬영 영상을 자세히 보면 지강헌이 비지스의 ‘홀리데이’를 요구한 이후 나자레스의 ‘Please don't judas me’를 추가로 요구하는데, 공교롭게도 나자레스의 발표곡 중에도 ‘홀리데이’라는 동명의 노래가 있다.

비지스의 ‘홀리데이’는 한국 사람들에게는 지강헌 인질사건과 ‘유전무죄 무전유죄’와 동의어다. 유튜브에 영어로 업로드 된 비지스의 ‘홀리데이’ 노래 영상 댓글을 보면 영어 댓글 사이사이로 우리말로 지강헌 사건과 ‘유전무죄 무전유죄’에 대해 언급한 내용이 꽤 많다.

지난 2016년, 시민단체인 법률소비자연맹이 대학생·대학원생을 대상으로 실시한 법의식 설문조사 결과,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에 동의한다는 대답이 83.54%를 차지했다.

지강헌 인질사건이 일어난 지도 벌써 36년이 지났다. 그러나 ‘유전무죄 무전유죄’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이영훈 가요연구가는 국제신문, 동아일보 등에서 신문기자로 20여 년간 근무하다 방송으로 옮겨 10년째 기자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채널A 보도본부에 근무하면서 메인뉴스 편집데스크와 디지털뉴스부장을 지냈고 쾌도난마, 뉴스톱텐 등 여러 시사 프로그램의 제작데스크로 일해 왔다. 보도본부 선임기자를 거쳐 현재는 심의실에서 근무하고 있다. 저서로는 <파벌로 보는 한국야당사>, <한국정치, 바람만이 아는 대답>, <유행가는 역사다>, <그 노래는 왜 금지곡이 되었을까>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