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들 딥페이크 대안 ‘사진 삭제’뿐…이대론 안심할 수 없어요”

정인선 기자 2024. 9. 10. 1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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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서 나눈 생각으로 성명서 작성
“서로 안심시키되 계속 문제 말해야…
스스로 가담자가 되지 말자” 촉구
경기도ㄱ중학교 사회참여 동아리 학생 19명은 지난 5일 딥페이크 성범죄 사태에 대한 서로의 생각을 나눈 뒤 그 내용을 글로 써 급식실 등 교내에 곳곳에 붙였다. 동아리 지도교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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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셜미디어에서 이 사건(딥페이크 성범죄 사태)을 접했을 때 일부 학교에서만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점점 피해 학교가 증가해 결국 우리 학교도 (피해 발생) 명단에 올라온 걸 보고 화가 치밀어 올랐다. 새벽부터 인스타그램에 올린 사진도 다 내리고 나도 모르게 해킹 여부를 계속 확인하는 모습에 스스로 놀라기도 했다.”

경기도 ㄱ중학교 3학년 송나연(가명)은 8월 마지막 주 주말을 앗아간 혼란과 공포를 지난 5일 학교 수업 시간에 또래 학생들과 나누었다. 주말을 잃어버린 건 나연만이 아니었다. 학교·지역별 ‘지인’ 피해자를 특정해 불법합성물을 만들어 돌려보는 텔레그램 대화방인 이른바 ‘겹지인방’ 명단에 “우리 학교도 있다”는 사실이 삽시간에 퍼졌다. 잠을 이루지 못하거나 에스엔에스(SNS)에 올린 사진을 내리고, 자신의 계정에 누군가 침입할까 봐 아이디를 바꾸는 학생이 속출했다. 교육부 자료를 보면, 올해 들어 지난 6일까지 전국 초·중·고에서 발생한 딥페이크 성범죄 피해 신고는 434건에 이른다.

충격을 받은 건 선생님도 마찬가지였다. 사회참여 동아리를 지도하는 이학수(가명) 교사는 “이 사안을 그냥 넘기기보단 중요한 교육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생각”에 동아리 소속 2·3학년 학생 19명과 서로의 생각과 감정을 나누는 창의적 체험 활동 시간을 마련했다. 그 과정에서 실제 피해가 보이지 않아 “약간 호들갑 아닌가” 생각한 학생들도 “친구들이 힘들어하는 걸 보면서 생각이 달라졌다”고 했다.

경기도ㄱ중학교 사회참여 동아리 학생 19명은 지난 5일 딥페이크 성범죄 사태에 대한 서로의 생각을 나눈 뒤 그 내용을 글로 써 급식실 등 교내에 곳곳에 붙였다. 동아리 지도교사 제공

학생들은 딥페이크 성범죄 실태를 다룬 기사를 함께 읽고 토론을 한 뒤 정부와 수사기관·기업, 또래 학생들에게 당부하고픈 말을 각각 문장으로 써 내려갔다. 그렇게 모인 문장은 하나의 성명서가 돼 학교 구성원들이 모두 볼 수 있도록 급식실 등 6곳에 붙었다.

이들은 글을 통해 “다 같이 즐겁자고 한 에스엔에스는 범죄 공간이 되었고 우리 일상의 평화는 모두 털렸다”며 “단 한명일지라도 내 곁의 평범한 사람들이 지인들의 딥페이크 영상·사진을 보고 희롱했다는 사실에 절망한다”고 털어놨다. 주위에서 흔히 일러주는 ‘에스엔에스 사진을 내리고 개인정보 보호에 유념하라’는 당부에 대한 답답함도 엿보였다. “사회와 어른들이 걱정하는 마음에서 내어준 그 대안만으론 결코 해결을 바랄 수 없다는 걸 잘 안다. 근본적인 해결 방법을 찾을 때 비로소 안심할 수 있다.”

그러면서 “법·윤리적 교육으로 딥페이크 기술의 위험성을 배워 인식을 바꾸고, 가해자 처벌, 텔레그램 같은 무책임한 공간에 책임을 묻는 일 모두 중요하다”며 “제일 중요한 건 학생 스스로 가담자가 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라고 다짐했다.

학생들은 잊고 싶은 악몽이지만, 이대로 잊진 말자고 촉구했다. “서로를 안심시키되, 끊임없이 이 문제에 대해 이야기 나누어야 한다.”

이학수 교사는 5일 수업에 대해 “(딥페이크 사태로) 학생들이 어떤 마음으로 힘들었는지 자신들의 언어로 확인하며 위로를 받았다고 하더라”며 “서로를 의심하고 매우 불안해하는 상황에 대해 미안하기도 하고 학생들이 깊은 생각을 하고 있어 반갑기도 했다”고 전했다.

정인선 기자 ren@hani.co.kr

<ㄱ중학교 학생 19명이 쓴 딥페이크 사태에 대한 글>



딥페이크-24, 우리 학교는 ‘털렸다’

지난 2024년 8월의 마지막 주, 텔레그램 딥페이크 음란물 사태(이하 딥페이크 사태)가 세상을 시끄럽게 하였다. 그 전까지 딥페이크 사건은 ‘엔번방 사건’, ‘대학생 능욕방’ 등 뉴스에서만 보던 끔찍한 일부의 일이었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딥페이크 음란물 유통을 목적으로 우리 학교를 비롯한 우리 지역의 중·고등학교의 텔레그램방이 개설되었던 것이다.

ㄱ중 학생들은 충격과 공포와 혼란으로 8월 마지막 주말을 잃어버렸다. 우리 청소년들은 감정적으로 예민하기에 이런 피해는 곧 정신적 고통으로 이어진다. 위험에 노출되었다는 사실 그 자체만으로 불안하다. ‘털린’ 인스타 계정의 이름을 바꾸거나 스토리, 하이라이트 등에 올린 본인의 얼굴 사진을 내리는 모습들, 아침에 등교하니 너무 무서워 잠을 못 잤다는 친구들까지. 나 자신뿐만 아니라 친구들이 더 걱정이 되어야만 하는 상황. 일상을 올리는 다 같이 즐겁자고 한 에스엔에스(SNS)는 범죄의 공간이 되었고 그렇게 우리의 일상의 평화는 모두 ‘털렸다’.

더 끔찍한 피해는 ‘불신’이다. 일단 가해자수가 셀 수 없을 정도로 크고 무방비적인 규모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지나가는 택시의 수보다도 가해자의 규모가 클 수 있다고 했고 상당수 피해자는 10대다. 그러나 가해자의 수와 규모는 이 사건에서 본질이 아니다. 단 1명일지라도 내 곁의 평범한 사람들, 친하지는 않더라도 그럭저럭 잘 지낸 학생들이 지인들의 딥페이크 영상과 사진을 보며 희롱을 하며 즐거워 했다는 사실에 우리는 절망한다. 뉴스에서만 보던 가해자들은 미성년자는 물론 친동생, 엄마 등 가족들과 관련된 방들을 개설했다고 하는데 그 가해자가 내 곁의 사람이라니. 우리는 불안하고 절망적이고 속이 많이 상했다.

대안은 보이지 않는다. 다만 우리를 더 답답하게 만드는 ‘대안’이 있다. ‘계정에 올라간 사진을 내리고 개인정보 보호에 유념하라’는 말이다. 우리사회와 어른들이 걱정하는 마음에서 내어준 그 대안만으로는 결코 해결을 바랄 수 없다는 걸 우린 잘 안다. 근본적인 방법을 찾을 때 비로소 안심할 수 있다. 법적, 윤리적 교육을 통해 딥페이크 기술의 위험성에 대해 배워 인식을 바꾸는 일, 그리고 가해자에 대한 근원적인 처벌을 하는 일, 텔레그램 같은 무책임한 에스엔에스 공간에는 특히 책임을 묻는 일 다 중요하다. 그러나 제일 중요한 것은 학생들 스스로가 가담자가 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악몽을 잊기를 바란다. 동시에 이번 일을 영원히 잊지 말고 각성하기를 우린 바란다. 피해는 깨끗이 잊고 서로를 안심시키되, 끊임없이 이 문제에 대해 이야기 나누어야 한다.

“열아홉의 문장을 하나의 글로 합쳐 마음을 담았습니다”

2024년 9월 5일. ㄱ중 사회참여동아리 ‘사참’

※ 한겨레는 타인을 상대로한 폭력이자 인격을 훼손하는 불법합성물을 ‘음란물’로 표현하는 것은 그 피해 심각성을 가릴 수 있어 성범죄 혹은 성착취로 표기합니다. 다만, 학생들이 쓴 대자보 내용을 그대로 전하기 위해 표현을 수정하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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