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은 식을 줄 모른다
절기상으론 더위가 한풀 꺾여야 할 입추가 지났지만, 여전히 기온은 30도를 훌쩍 넘던 어느 날. 사직야구장의 공기는 그 어느 때보다 묵직하게 달아올라 있었다. 경기장 안으로 들어서면 시선은 직사광선의 열기를 그대로 받아 달궈진 그라운드와, 흐르는 땀을 닦을 새도 없이 훈련에 몰입한 선수들에게 고정된다. 스치는 바람은 더위를 식히기는커녕 오히려 열기를 실어 나르는 듯하다. 가을 햇볕도 여름 못지않다. 오히려 빛은 더 낮고 깊게, 그리고 더 강하게 내리꽂혀 방심한 틈을 파고든다. 입추가 지났다고 긴장을 풀 수 없는 이유다. ‘가을야구’를 향한 기대감으로 일렁이는 사직야구장에서 만난 한태양의 이름은 그 점에서 더욱 상징적으로 다가왔다. 계절이 바뀌어도, 무대가 달라져도 그의 에너지는 쉽게 식지 않을 것이라는 예감. 사계절 내내 변함없이 뜨겁게 빛날 태양을 미리 마주했다.
Photographer Mino Hwang Editor Jiin Lee Location Sajik Baseball Stadium

지난 125호(21년 9월 호)에서는 덕수고 한태양의 모습을 담았는데, 프로선수가 돼 다시 만났어요! <더그아웃 매거진> 독자분들께 인사 부탁해요. (8월 7일 인터뷰)
안녕하세요. 롯데 자이언츠 한태양입니다. 고등학생 시절에 인터뷰했던 게 기억나네요. 오늘 재미있게 얘기 나누면 좋겠어요.
지난 7월 25일 사직 KIA 타이거즈전에서 4타수 3안타 3타점으로 지금까지의 커리어 중 가장 뜨거운 날을 보냈잖아요. 여운이 얼마나 가던가요?
그날을 떠올리면 아직도 기분이 좋아요. (영상도 많이 돌려 봤어요?) 몇 번 보긴 했는데 사실 그렇게 많이 보진 않았어요. 야구는 경기를 매일 하잖아요. 다음 날 컨디션에 지장을 줄까 봐 절제했습니다.
축하 연락도 제법 받았겠어요.
워낙 많은 분이 연락을 주셨어요. 나를 생각하고 응원해 주시는 분들이 이렇게 많았구나 싶어서 감사하더라고요.
그날 방송사 수훈 인터뷰에서 이순철 SBS Sports 해설위원이 모자를 벗어 달라고 요청했는데, 당황하진 않았어요?
갑작스럽긴 했어요. 인터뷰할 때는 바로 질문이 올 거라고 생각하다 보니 거기에 집중하고 있었는데 모자를 벗어 달라고 하셔서 당황하긴 했죠. 근데 잘생겼다고 칭찬해 주시려던 거잖아요. 해설위원님께 감사드려요.
이순철 해설위원의 질문에서 애정이 묻어나더라고요. 평소 친분이 있어요?
그런 건 아니에요. 해설하러 오신 날 훈련하고 있을 때 한 번씩 나와 보곤 하시거든요. 마주치면 저는 인사드리고, 해설위원님은 조언도 해 주세요. (주로 어떤 말을 해 줬나요?) 야구에 관한 부분인데요. 체구에 비해 스윙이 너무 크다고 하시면서 콘택트가 좋은 유형이기 때문에 스윙의 크기를 조금만 줄이면 결과가 더 잘 나올 거라고 하셨던 기억이 나요. 덕분에 훈련 방향성도 잡혔고요. 큰 도움이 됐어요.

#더그아웃 적응 완료
구단 유튜브 콘텐츠만 보더라도 한태양의 성격을 엿볼 수 있다. 낯을 많이 가리고, 말수가 적은 타입. 그런 그가 고등학교 재학 당시 야구부 주장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다들 놀라지 않을까 싶을 정도다. 더욱 중요한 사실은 그가 야구 명문으로 손꼽히는 덕수고에서 이미 1학년 때부터 주전으로 출전할 정도로 잠재력을 지닌 선수였다는 점이다. 2, 3학년 선배들 틈에서 파이팅을 불어 넣고 경기를 뛸 정도로 강심장인 그는 과거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선배들과 경기를 뛰는 것에 ‘부담감은 없었고 그저 감사했다’라고 하기도 했다.
성격과 이름의 밸런스일까. 늘 잔잔하고 차분해 보이던 그는 동료 얘기를 할 때는 가벼이 웃었지만, 야구를 주제로 할 때는 진중하고 승부욕이 끓어 보였다. 조금은 안정감을 찾은 더그아웃에서 동료들과 ‘행복 야구’를 하는 모습이 더욱 기대되는 이유였다.
드래프트 동기인 윤동희는 한태양과 친해지려고 3년간 공들였다던데요. 가까워졌다가도 다시 멀어지는 고양이 같은 스타일이라는데, 친구가 공들인다는 게 당사자로서도 느껴졌나요?
동희가 워낙 서글서글한 성격이잖아요. 저는 낯을 좀 가리거든요. 그래서 스무 살에 동기끼리 모이자마자 동희가 먼저 다가와 줬어요. 근데 저는 금방 친해졌다고 봤는데, 3년 동안 공들였다는 건 좀 아닌 것 같아요. (언제쯤 친해졌다고 생각했어요?) 신인 때 상동에서 숙소를 쓰면서 맨날 같이 있으니까 그때도 이미 친하다고 느꼈거든요.
그새 군 복무를 하느라 공백이 생긴 탓도 있겠어요. 그래도 함께 노는 건 전보다 더 편해졌죠?
동희는 원정 경기 때 같은 방을 쓰는 룸메이트라, 밥을 함께 먹으러 다니면서 잘 지내고 있어요.
전역 후에 새로 친해진 동료는 누가 있어요?
모든 선수와 친하지만 그래도 (김)동혁이 형이랑 전역 이후로 가까워졌어요. 동혁이 형이 되게 재밌거든요.
롯데 더그아웃의 분위기 메이커가 있다면요?
분위기 메이커도 당연히 동혁이 형이요. 경기 전에 파이팅도 크게 지르면서 분위기를 끌어올려 주는 중요한 역할을 해요. 다들 동혁이 형 덕분에 웃으면서 경기에 임할 수 있거든요. 항상 고맙죠. (어떻게 웃음을 주나요?) 형은 말로도 웃기고 행동으로도 웃기는 다양한 매력이 있어요.
더그아웃에서 한태양은 어떤 존재예요?
꼭 필요할 때만 목소리를 높이는 편이에요. 먼저 나서는 스타일은 아닙니다. (그래도 시즌 초에 비해 리액션이 꽤 커졌던데요?) 확실히 시즌 초에는 긴장도 되고, 집중하려다 보니 훨씬 조용했는데 지금은 편하게 지내고 있어요. 경기장과 더그아웃 분위기에도 적응을 어느 정도 했고요.

내야수 후배 이호준의 재롱(?)에 웃는 모습도 자주 발견돼요. 이호준이 유독 선배들에게 장난을 많이 치는 걸로 알려져 있는데, 어떤 후배예요?
호준이랑은 선후배보다는 친구처럼 지내고 있어요. 서로 장난도 많이 치고요. 예를 들어 승리 후에 하이파이브를 할 때 제가 일부러 호준이 손을 강하게 치거나 하는 식으로요. 아, 호준이는 저한테도 맨날 야차 뜨자고 해요. (모두에게 그러는 것 같던데, 그냥 한 번 붙어 줄 생각은 없어요?) 아이, 제가 어떻게 그래요. (웃음) 그냥 귀엽게 보고 있습니다.
이호준은 못생겼다는 말보다 재미없다는 말이 더 싫다고 하던데 어떻게 생각해요?
호준이라면 충분히 그렇게 생각할 수 있다고 봐요. 워낙 남을 웃기는 걸 좋아하는 친구거든요.
경기 중에 김태형 감독이 종종 더그아웃에 들어가는 선수를 멈춰 세우고 타격 조언을 해 주잖아요. 주로 어떤 얘길 하나요?
타격할 때 엉덩이가 뒤로 빠진다는 얘기를 몇 번 해 주셨어요. 그런 식으로 사소하지만, 신경 써야 하는 부분을 제가 놓치면 상기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그렇게 중간에 잡히는 게 감독의 애제자가 됐다는 증거라고 장난스레 말하곤 하던데요.) 그런가요? 그냥 경기를 계속 나가다 보니까 어느 순간부터 감독님께서 한마디씩 해 주셨거든요. 다음 타석에 들어갈 때 조언을 되새기고 들어가면 도움이 돼서 감사해요.


덕수고 시절부터 상무 야구단, 그리고 롯데에서도 계속 같이 지내고 있는 나승엽과 말투가 비슷해졌다는 말에는 공감하나요?
솔직히 잘 모르겠는데, 주변에서는 자꾸 그렇게 얘기하더라고요. 말투가 비슷해졌다기보다는 말하는 방식이 닮았다고 하던데, 정확히 어떤 부분인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어요. 아마도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내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런 게 묻어 나오는 것 같아요.
스프링캠프에서는 전민재와 방을 썼잖아요. 구단 유튜브에서는 김동혁이, 티빙 인터뷰에선 윤동희가 본인과 방을 쓴다고 하던데, 룸메이트가 자꾸 바뀌는 건가요?
엔트리가 계속 변동되다 보니 어쩔 수 없이 계속 바뀌게 되더라고요. (문득 떠올랐는데 스프링캠프에서 읽기 시작한 한강 작가의 ‘채식주의자’는 완독했나요?) 하핫… (‘시작이 반’이라고 했잖아요.) 반에서 끝났어요. (머쓱)
그럼, 룸메이트의 특징을 각각 소개해 볼까요?
민재 형은 저랑 비슷하게 조용한 성격이라서 방에 있을 때 거의 말을 안 한다는 점이 특징이에요. 한 세 마디 하려나요? 반대로 동혁이 형이랑 동희는 둘 다 말이 너무 많아서 계속 옆에서 말하고 있어요. 조용할 틈이 없더라고요. (최근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전민재는 방에 있을 때 둘이 대화를 많이 한다고 했거든요.) 할 때는 또 하죠. 주로 야구 얘기로요.
구단 유튜브 콘텐츠를 보니 말하고 있는 사람에게 몸까지 돌려가며 시선을 맞추더라고요. 혹시 그런 습관을 알고 있었는지도 궁금해요.
제가요? 전혀 몰랐어요. (지금도 자꾸 눈이 마주쳐서 물어 봤어요.) 상대방이 얘기할 때는 눈을 마주치고 주의 깊게 듣는 편이긴 해요. 그게 예의라고 생각해서 무의식적으로 그렇게 하는 듯한데 몸까지 돌리고 있었다니 그건 처음 알았네요. 아마도 상대가 하는 말에 더 집중하려고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몸이 따라갔나 봐요.


#롯린이
부산 태생인 한태양은 이미 ‘롯린이’ 출신으로 유명하다. 열성팬인 아버지와 함께 집에서 사직야구장으로 신나는 발걸음을 옮기던 일화와 주황색 비닐봉지를 머리에 쓰고 신문지를 흔들던 사진도 한 차례 공개된 바 있다.
야구란 롯데 자이언츠뿐이었던 어린 한태양이 우상과 같은 유니폼을 입고 경기에 나설 수 있게 된 건 꿈만 같은 일일 테다. 시간이 흘렀지만 변치 않은 애정이 경기 중에도, 본지와의 대화에서도 여실히 드러났다. 2022년 5월 26일, 처음 선발 라인업에 이름을 올리고 거인 군단에 당당히 합류한 한태양은 빠른 발과 탄탄한 기본기를 무기 삼아 그라운드를 누볐다. 당시 상대 선발은 리그 최고의 투수 중 하나인 SSG 랜더스 김광현이었기에 감회가 더욱 새로웠을 터. 그날은 비록 2타수 무안타에 그쳤지만, 희생 번트 이후 상대 실책으로 얻어 낸 기회를 살려 보여 준 당찬 주루와 안정적인 수비는 롯데 팬들의 기대를 자아낼 만했다.
그렇게 상무 야구단에서 담금질을 거친 뒤 화려한 복귀를 신고한 2025시즌. 상무 야구단에서 한태양은 2023년 타율 0.278과 OPS 0.844를 기록했고, 전역 시즌인 2024년에는 타율 0.283과 OPS 0.781을 기록했다. 그리고 사직야구장으로 돌아와 기지개를 켜던 2025년 6월과 7월, 3할대 타율을 자랑하며 무엇보다 값진 팀 사랑이라는 ‘성적’을 유지하는 중이다.
아버지를 따라 롯데를 오래 응원했다고요. 어렸을 때부터 좋아한 선수가 있다면요?
롯데 팬이라면 당연히 모든 선수를 고루 응원할 수밖에 없지만 저는 그래도 전준우 선배님을 좋아했어요. 플레이가 워낙 멋지셨기 때문에 팬이 되지 않을 수 없었죠. 지금 같은 유니폼을 입고 한 팀에 뛰고 있다는 게 가끔은 실감이 나지 않아요.
지금은 전준우와 합을 맞추는 동료가 됐는데 어떤 대화를 주로 나누나요?
선배님께서는 틈틈이 야구 이야기를 해 주세요. 무엇보다 선배님의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조언을 편하게 해 주셔서, 부담 없이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덕분에 야구에 대한 시야도 넓어지고, 경기를 보는 눈도 조금씩 달라지고 있어요. 특히 타격에 대해 말씀해 주시곤 해서 새겨듣고 있습니다.

기사는 더그아웃 매거진 2025년 173호 (9월 호)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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