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둑이야 외쳤더니 외친 사람 잡아가겠다고..." 아이들 방까지 뒤졌다
'류희림 민원사주' 의혹 민원인 개인정보 유출 혐의 2차 압색
방심위 노조 "영장만 최소 8건, 기자들 줬던 설명자료 가져가"
특정 직원 PC 포렌식하고 직원 주거지 찾아 핸드폰 압수수색
[미디어오늘 박재령 기자]
류희림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심위) 위원장의 '민원사주' 의혹에 대한 수사 결과가 감감무소식인 가운데 경찰이 민원인 개인정보 유출 혐의로 방심위 직원들을 두 차례 압수수색하자 야당과 언론·시민단체가 이를 규탄하고 나섰다. 압수수색은 10일 오전 9시경 시작해 9시간 동안 진행됐다.
10일 오전 9시 서울경찰청 반부패범죄수사대는 서울 목동 방송회관에 위치한 방심위 사무처를 압수수색했다. 오전 7시에서 7시30분 사이 방심위 직원들 3명 이상의 주거지를 찾아가 핸드폰도 압수한 것으로 나타났다. 방심위 노조가 현장에서 파악한 수사 인력은 19명 이상인데 3명 직원의 주거지에도 각각 3~4명 정도의 수사관이 배치된 것으로 전해졌다.
방송회관 18층 방심위 노조 사무실에 대한 압수수색은 오후 4시30분경 종료됐는데 13층 확산방지팀 등 다른 부서의 압수수색은 9시간 동안 진행됐다. 18층과 13층 등에선 수사관들이 특정 직원의 PC 자료를 복사하고 일부 PC에 대해선 디지털 포렌식까지 진행했다.
방심위 직원의 주거지에서 압수수색 현장을 지켜본 이상희 변호사(참여연대 공익제보지원센터 소장)는 “(이번엔) 피의자가 특정이 됐다”며 “(직원의) 핸드폰은 다 압수가 됐고 PC 자체를 가지고 가진 않았지만 내용을 확인해 관련된 부분은 갖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상희 변호사는 “민원사주 의혹 본 건은 제대로 조사가 이뤄지지 않고 오히려 문제를 제기한 직원들의 집과 사무처를 압수수색하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라며 “보통 컴퓨터가 아이들 방에 있지 않나. 아이들 방에 있는 컴퓨터, 책상, 안방 옷장까지 다 뒤졌다”고 말했다.
경찰의 구체적인 압수수색 대상은 서울 목동 방송회관 방심위 13층 확산방지팀과 19층 지상파방송팀, 방심위 서초동 사무실, 방심위 노조 사무실, 직원들 주거지 등으로 지난번 압수수색과 비교했을 때 대상이 확장됐다. 서울경찰청 반부패범죄수사대는 지난 1월 방심위 16층 민원상담팀과 19층 운영지원팀만 압수수색했다. 수사 과정에서 피의자가 특정돼 압수수색 인력과 범위가 늘어난 것으로 보인다.
김준희 언론노조 방심위지부장은 최소 8건 이상의 (압수수색) 영장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김준희 지부장은 “지난번엔 (수사 인력이) 10여 명이었는데 지금은 확인한 것만 19명 이상”이라며 “(류희림 위원장의 민원사주 의혹 관련) 도둑이야 외쳤더니 외친 사람을 잡아가겠다고 경찰이 두 번이나 압수수색을 나왔다. 떳떳한 일을 했기 때문에 수사에 협조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류희림 위원장은 점심시간에 맞춰 화물엘리베이터를 타고 현장을 빠져나간 것으로 전해졌다.
김준희 지부장은 18층 노조 사무실 압수수색이 끝난 뒤 “기자들에게 설명자료를 만들었던 것들을 위주로 가져간 것 같다”며 “경찰들도 지시하니까 일이라 생각하고 하지 않았겠나. 결과적으로 가해자와 피해자를 뒤바꾸는 수사가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더불어민주당과 조국혁신당 의원 일동은 10일 긴급기자회견을 열고 방심위 직원들에 대한 경찰의 압수수색을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이들은 성명서에서 이번 압수수색을 “류희림 위원장의 민원사주 사실을 외부에 알린 공익제보자를 색출하기 위해서”라고 규정한 뒤 “최소한의 균형도 갖추지 못하고 정권의 하명수사에만 혈안이 된 경찰을 강력히 규탄한다”고 했다.
이들은 “류희림 위원장이 민원사주의 대가를 치르게 할 것이다. 방송장악 국정조사는 물론, 당장 다가온 국정감사에서부터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할 것”이라고 했다. 민주당은 오는 13일 방심위 압수수색 사태와 관련해 긴급 현안질의를 열겠다고 밝힌 상태다.
언론단체 및 시민사회의 규탄도 이어졌다. 90여개 언론·시민단체로 구성된 언론장악저지공동행동은 10일 오후 서울경찰청 앞에서 긴급기자회견을 열고 “도둑의 편에 서서 선량한 신고자를 겁박하는 경찰이야말로 수사 대상”이라고 했다.
이들 단체는 “단체들이 류 위원장을 고발한 '민원사주' 건에 대해선 7개월째 피고발인 조사를 않고 있다”며 “민원사주 의혹 사건이 발생한 것이 지난해 9월이니 통신사가 통화 기록을 보존하는 1년이 이미 경과하고 있다. 경찰은 제보자를 겁박하며 압수수색하는 와중에 방심위의 권한과 자원을 도둑질해 방심위의 공공성을 황폐화한 자들이 빠져나갈 시간을 벌어주고 있다. 고의적 직무유기에 따른 경찰의 범죄 은닉이자 증거 인멸”이라고 주장했다.
민주언론시민연합도 10일 성명을 내고 “(류희림 위원장에 대한) 즉각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해 류희림 위원장의 통화기록부터 확보하라. 범죄 혐의자를 신고했는데 검찰과 경찰이 신고한 사람만 수사하는 행태를 지속한다면 국민의 엄정한 심판은 물론 사법적 책임을 결코 면치 못할 것”이라고 했다.
언론개혁시민연대도 10일 성명에서 “방심위 공익제보자는 자신의 의무에 충실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며 “(경찰의 사무처 압수수색은) 윤석열 대통령의 류희림 위원장에 대한 연임에 힘을 싣는 일이며, 결과적으로 방의위 구성원들의 정당한 싸움에 대한 탄압 행위”라고 했다.
반면 국민의힘 미디어특위는 “공공기관을 상대로 민원을 제기한 국민의 사생활과 개인정보는 엄격히 보호돼야 마땅하다. 해당 정보가 특정 정파적 목적을 가진 세력에 입수돼 정치공세 수단으로 악용되는 것은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정치공작'”이라며 “단순 실수에 의한 유출을 넘어 편파적 의도에 따른 고의적 유출이라면 이는 엄중한 법적 처벌을 받아야 하는 중범죄”라고 주장했다.
서울경찰청 소속 수사관들은 △특정된 피의자가 몇 명인지 △압수수색 물품이 무엇인지 등의 질문에 답하지 않았다. 현장 책임을 맡은 김태현 반부패범죄수사1계장은 “압수수색 대상이 공익제보자라 애초에 수사 대상이 되지 않는다는 주장이 있다”는 미디어오늘 질의에 “아직 업무 중”이라며 “입장을 드리는 게 적절치 않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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