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귀한 사이드암 투수 한국에 유독 많은 이유

올해 한국 프로야구에서 최고의 ‘이닝이터’는 KT 위즈 소속 고영표다. 선발 등판 평균 6.78이닝을 소화하고 있다. LG 트윈스 구원투수 정우영은 독특한 투구 레퍼토리를 갖고 있다. 전체 투구의 95% 이상을 싱커로 던진다. 정우영의 싱커는 평균 시속 151.8㎞ 스피드에 엄청난 무브먼트를 자랑한다. 그의 투구 영상을 본 메이저리그 선수들도 “야구 게임에서라면 99점짜리 공”이라며 혀를 내둘렀을 정도다.
두 투수 사이에는 공통점이 있다. 투구 때 공을 놓는 위치가 정통파 오버핸드 투수보다 한참 아래인 사이드암 투수다. 사이드암은 한국 야구의 특징이기도 하다. KBO리그는 메이저리그나 일본 프로야구에 비해 사이드암 투수 비중이 현격하게 높다. 야구 국가대표팀이 구성될 때도 ‘일본전에 왼손 투수, 미주 팀을 상대할 때는 사이드암 투수’가 거의 불문율이다.
야구 통계 전문 사이트 스탯티즈에 따르면, 올해 프로야구 1군 경기에 출장한 사이드암(언더핸드 포함) 투수는 고영표와 정우영을 비롯해 모두 22명이다. 이들은 7월4일까지 모두 636⅔이닝을 던졌다. 리그 전체 이닝 대비로는 9.3%다. 지난해에는 11.1%, 2020년엔 11.7%, 2019년엔 10.9%, 2017년과 2018년엔 13.0%였다. 2014~2022년 평균치는 11.5%다. 이전에는 더 높았다. 1982~1990년 사이드암 투수의 이닝 비율은 13.9%였고 1991~2000년엔 13.0%였다.
메이저리그에서 사이드암 투수는 희귀종이다. 메이저리그 통산 244세이브를 따낸 댄 퀴즌베리나 184세이브의 켄트 테쿨브 등 좋은 성적을 거둔 사이드암도 있었다.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 마무리로 명성을 날렸던 김병현도 여기에 포함될 수 있다. 하지만 〈뉴욕타임스〉 2020년 3월2일자 기사에 따르면, 2019년 메이저리그에서 꾸준히 등판한 사이드암 투수는 12명 미만이다. 사이드암 투수들을 다룬 이 기사의 제목은 이랬다. ‘누구도 우리와 캐치볼을 하기를 원치 않는다.’
야구가 처음 등장했을 때는 모두가 사이드암 투구를 했다. 오늘날 투구의 기본으로 통하는 오버핸드는 반칙 투구였다. 미국 야구에서 투구를 피치(Pitch), 야수의 송구를 ‘스로(Throw)’로 구분하는 데서 당시 흔적이 남아 있다. 하지만 1884년 11월 내셔널리그가 오버핸드 투구를 허용한 뒤 사이드암 투수는 급격히 퇴조했다. 오버핸드 투수가 더 빠른 패스트볼을 던질 수 있다. 변화구도 좀 더 다양하게 구사 가능하다. 여기에 1893년 최대 15인치(38.1㎝) 높이의 투수 마운드가 도입되자 위에서 아래로 내리꽂는 오버핸드 투구의 이점은 더 커졌다. 사이드암 투수는 부상 위험이 높다는 인식도 퍼졌다. 사이드암 투수가 멸종 위기에 놓인 이유다.

지금 일본 프로야구(NPB)에선 한신 타이거스 소속 아오야기 고요가 대표적인 사이드암 투수다. 아오야기는 지난해 한신의 에이스로 떠오르며 도쿄 올림픽 국가대표로도 뽑혔다. 올해도 센트럴리그 다승과 평균자책점 1위를 달리고 있다. 하지만 12개 구단 가운데 사이드암 선발투수는 아오야기와 세이부 라이온스의 잠수함 요자 가이토 두 명뿐이다. 구단 수가 두 개 적은 KBO리그에선 고영표·임기영(KIA), 최원준(두산), 엄상백(KT), 한현희(키움), 이재학(NC) 등이 선발투수로 뛰고 있다.
지난해 12월 NHK는 사이드암 투수를 다룬 〈사이드스로〉라는 특별 프로그램을 방영했다. 이에 따르면 2021년 NPB 1군에 등록된 사이드암 투수는 모두 27명이다. 이들은 지난해 도합 639이닝을 던졌다. 양대 리그 전체 이닝의 4.2%에 불과하다. 지난해 KBO리그 사이드암 투구 이닝 비율 11.1%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열등종’ 취급한 근거 중 일부는 편견
KBO리그에는 왜 사이드암 투수가 많을까. 한 수도권 프로야구단 스카우트는 “중·고교 팀에서부터 사이드암 투수가 많다”라고 말했다. 그는 “한 학년에 사이드암 투수가 한 명씩은 꼭 있다. 한 학년에 투수가 6~7명이니 전체 투수의 14~16% 비율”이라고 설명했다. 한국 아마추어 투수들이 미국이나 일본 선수보다 특별히 사이드암 투구에 유리한 신체조건을 타고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 현상은 한국의 어린 투수들이 미국이나 일본에 비해 훨씬 강력한 경쟁 압력에 시달린다는 점과 무관치 않다. 아마추어 사이드암 투수 다수는 오버핸드로 던지다 한계를 느껴 사이드암으로 전향한 경우다. LA 다저스 유망주 투수 최현일의 아버지인 최승표 코치라운드 대표는 “어린 나이에 오버핸드 투구 폼을 몸에 익히기는 쉽지 않다. 사이드암이 제구력을 잡기에는 좋다. 경기 실적을 중시하는 감독들도 사이드암 투수를 배치하기 원한다. 학업을 포기하다시피 하고 운동에 올인하는 환경에서 선수와 학부모는 조금이라도 성공 확률이 높은 선택을 하게 된다”라고 말했다.

최근엔 다소 덜하지만 후천적인 우투좌타 선수가 아마추어 야구에서 늘어났던 현상과 비슷하다. 한 지방 프로야구단 스카우트는 “미국에서 오른손 투수 공을 더 잘 치기 위해 오른손잡이가 좌타자나 스위치히터로 전향한다면, 한국에선 1루에 조금이라도 더 빨리 닿기 위해 좌타자로 전향하는 사례가 많았다”라고 말했다. 프로야구 선수가 유독 개명 비율이 높은 직업군인 점도 같은 맥락이다. 특히 손아섭(NC, 2007년 손광민에서 개명)의 성공 이후 이름을 바꾼 선수가 늘어났다. 다급한 처지에 놓인 많은 선수와 부모가 이름을 바꾸면 조금이라도 성공에 가까이 갈 수 있다고 믿었다.
공급이 늘어나니 KBO리그에 유능한 사이드암 투수가 나올 확률도 높아졌다. 과거 사이드암 투수를 ‘열등종’ 취급한 근거 중 일부는 편견의 산물이기도 했다. 과거 시속 161㎞를 던진 임창용이나 지금의 정우영처럼 사이드암 투수도 충분히 빠른공을 던질 수 있다. 부상 문제에 대해서도 좀 더 과학적인 접근이 이뤄지고 있다. 새크라멘토 주립대의 라파엘레 에스카미야 교수에 따르면 사이드암 투수는 어깨충돌증후군 부상 위험은 높아지지만 회전근개 부상 위험은 더 낮다.
새로운 무기도 생겼다. 양상문 전 롯데 감독은 “오른손 사이드암 투수는 좌타자에 약하다는 게 야구 상식이다. 좌타자 눈에는 오른손 사이드암 투구의 공 궤적이 잘 보이기 때문이다. 좌타자 스트라이크존 바깥쪽으로 빠져나가는 구종이 마땅치 않았다. 그런데 2013년 두산에서 NC로 이적한 이재학이 서클체인지업으로 왼손 타자를 잡을 수 있다는 걸 보여줬다. 이후 고영표, 임기영 등 서클체인지업을 던지는 사이드암이 늘어났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KBO리그에 사이드암 투수가 많은 가장 중요한 이유가 있다. 그들이 성공을 거둬왔기 때문이다. 스탯티즈 집계에 따르면, 2014년 이후 9시즌 동안 2018년 한 해를 제외하고 사이드암 투수의 평균자책점 기록은 리그 평균보다 좋았다. 원년 이후 도합 41시즌 가운데서는 32시즌이다. 확률로는 78%다.
최민규(한국야구학회 이사)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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