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지지 않는 나라'는 없다..어쩌다 몰락하는 英경제

송지유 기자 2022. 9. 28. 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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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운드화 37년 만에 최저치..채권시장서 찬밥된 영국 국채
(런던 AFP=뉴스1) 김성식 기자 = 26일(현지시간) 영국 런던에서 달러 대비 파운드화 가치가 장중 약 5% 가까이 하락하며 1.0327 달러까지 밀리는 등 사상 최저치를 기록했다. 지난 23일 콰시 콰르텡 영국 재무장관이 경기 부양을 위한 대규모 감세정책과 긴축예산안을 발표했으나 외환시장에선 영국의 경기 침체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 AFP=뉴스1 Copyright (C)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런던 브릿지가 무너진 것처럼 보인다", "영국 파운드와 채권 투매는 선진 금융시장에서 나타날 수 있는 현상이 아니다", "영국인들은 올 겨울 굶어 죽거나, 얼어 죽을 위기에 놓였다"….

'해가 지지 않는 나라'로 불리던 영국의 경제에 경고등이 들어 왔다. 국내총생산(GDP)은 마이너스로 돌아섰는데 물가는 선진국 중 가장 많이 올라 서민들이 생활고를 호소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코로나19 팬데믹과 우크라이나 전쟁 등 외부 요인에 유럽연합(EU) 탈퇴(Brexit·브렉시트) 후폭풍이라는 내부 사정까지 겹쳤다. 여기에 리즈 트러스 영국 신임 총리가 지난 23일 내놓은 50년 만의 최대 감세 정책은 글로벌 금융시장을 뒤흔들고 있다. 주요 외신들은 영국의 위기 징후가 잇따르면서 국가 경제가 서서히 가라앉고 있다는 암울한 전망을 내놓고 있다.

'1달러=1파운드' 붕괴 위기…그리스보다 싸진 英국채
27일(현지시간) 글로벌 외환시장에서 달러·파운드 환율은 1파운드당 1.0731달러에 마감했다. 전날 장중 한 때 1파운드당 1.0384달러까지 하락(파운드화 약세·달러화 강세)했던 것보다는 소폭 올랐지만, 1985년 이후 37년 만에 최저치다. '1파운드=1달러'로 파운드화와 달러 가치가 같아지는 '패리티'가 깨지는 것이 시간 문제라는 분석도 나온다.

올 초만해도 달러·파운드 환율은 1파운드당 1.3달러대였다. 하지만 5월 파운드당 1.2달러대로 떨어지더니 하반기 들어 크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올 들어서만 영국 파운드화 가치는 20% 이상 추락했다. 9월 들어선 주요국 가운데 달러 대비 통화 가치 낙폭이 가장 큰 국가가 됐다.

채권 시장에서 영국 국채 가치도 급락했다. 이날 기준 영국의 5년물 국채 금리는 4.699%로 부채 과다국인 그리스와 이탈리아보다도 높아졌다. 같은 날 그리스와 이탈리아 국채 5년물은 각각 4.1%, 4.215%를 기록했다. 영국 국채 금리가 높다는 것은 그리스와 이탈리아 국채보다 싸다는 것을 의미한다.

물가 치솟는데 경제는 역성장
인플레이션(화폐가치 하락에 따른 물가상승)은 전 세계적인 현상이지만 영국의 소비자 물가 상승률은 심각한 수준이다. 최근 영국의 소비자물가상승률(CPI)은 6월 9.4%, 7월 10.1%, 8월 9.9% 등으로 1982년 이후 40년 만에 최고이자 주요 7개국(G7) 중에서도 가장 높았다.

에너지부터 식품까지 가격이 안 오른 분야가 없다. 에너지 평균 요금은 올 들어 50% 이상 늘었다. 빵과 커피, 버터, 베이컨 가격은 1년새 20~30% 안팎 뛰었다.

지난 8월 12일(현지시간) 영국 시민들이 "에너지 요금을 동결하라"고 적힌 팻말을 들고 거리로 나와 에너지 요금 동결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였다. /사진=트위터

BBC에 따르면 생활비가 부족한 영국인 수백만명이 저소득층에 식료품을 나눠주는 '푸드뱅크(무료급식소)'를 찾고 있다. 최근 수개월간 식사량을 줄이거나 끼니를 거른 사람들도 늘고 있다. CNN은 "영국의 수백만 가구가 겨울을 앞두고 난방비를 줄여 얼어 죽느냐, 식료품비를 줄여 굶어 죽느냐를 고민하는 상황으로 내몰렸다"고 전했다.

경제 성장세는 꺾였다. 영국 중앙은행인 영란은행(BOE)에 따르면 영국의 전 분기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은 올 1분기 0.8%, 2분기 -0.1%를 기록했다. 내년 성장률 전망치는 -0.25%로 추산한다. 경기 불황에 물가가 치솟는 '스태그플레이션'이 현실화한 셈이다.

'브렉시트'에 '부자감세' 덮친 참담한 결과
영국 파운드화 가치가 급락하고 있다. /ⓒ사진=블룸버그
물가상승과 경기침체, 강달러 기조 등은 영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코로나19 팬데믹과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전 세계가 같은 위기에 처해 있다. 하지만 영국 경제에는 '브렉시트'라는 악재가 더 있다. 영국은 2020년 1월 브렉시트를 단행하며 유럽연합(EU)과의 47년 동거를 끝내고 홀로서기에 나섰다.

브렉시트 이후 상품 교역 절차가 복잡해졌고, 관세는 높아졌고, 외국인 노동자 감소로 인건비가 급등했다. 이는 모두 영국의 물가를 끌어올리는 요인이 됐다. 미국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PIIE)의 애던 포즌 소장은 "영국 물가상승률이 유난히 높은 이유의 80%는 브렉시트와 관련 있다"고 짚었다. 런던킹스칼리지의 조나단 포르테스 경제학 교수도 "브렉시트 후 영국 경제는 서서히 공기가 빠지는 펑크 난 타이어"라고 지적했다.

리즈 트러스 영국 총리 /ⓒAFP=뉴스1

영국 정부의 법인세 인상(19%→25%) 철회, 국민보험·소득세 인하 등 부자 감세 정책은 추락하는 경제에 기름을 부었다. 이 정책으로 2026년엔 전체 감세 규모가 연간 450억파운드(약 69조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시장은 이를 파운드화 가치 급락을 예고하는 신호로 해석했다. 정부가 재원을 마련하려면 국채를 발행하거나 세금을 인상해야 하는데 감세 정책을 발표했으니 빚을 지는 것밖에는 답이 없기 때문이다. 영국 정부는 2022년 국채 발행 규모를 당초보다 50% 늘어난 624억파운드(96조원)로 늘리겠다고 밝혔다.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세계적인 경제 석학인 미국 뉴욕시립대의 폴 크루그먼 교수는 뉴욕타임스(NYT) 기고를 통해 "영국 신임 총리가 1980년대 미국의 로널드 레이건과 비슷한 경제정책을 내놨지만 결과는 완전히 다르다"며 "바보들이 운영하는 경제는 위험 프리미엄을 지불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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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지유 기자 clio@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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