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협 소설을 좋아하시나요? 중국에서 20세기 전반에 등장한 소설 장르로 무술과 협의를 주요 소재로 삼는 소설을 지칭합니다. 예전에도 인기가 좋았으나 무협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웹툰들이 많이 만들어지고, 웹소설 플랫폼의 대중화로 인해 과거보다 훨씬 많은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이러한 무협 소설을 보면 이야기의 전개 방식은 다양하나 변하지 않는 공통 설정이 존재합니다. 주로 무림을 이루는 세력의 분포나 문파 및 가문의 체계, 내공과 외공으로 나뉜 무공 세계, 지리, 황실과 강호무림은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는다는 관무불가침 조약 등이 해당합니다.

여기서 주제의 궁금증이 생깁니다. 소설인 만큼 설정의 제약 없이 자유롭게 표현해도 될 것 같은데, 왜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무협 소설은 없는 걸까요? 공통 설정에서 벗어나면 안 된다는 제약이라도 있는 걸까요?

핵심적인 이유는 조선시대에는 무림에 속한 세력인 문파가 등장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일단 실제 역사에서도 나라의 힘이 약했던 시기에는 지역마다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무력 집단이 생기곤 했습니다.
중국 역사에서도 춘추전국시대나 5호 16국 시대에 중앙 권력이 미약할 때 각지에서 생겨난 자경단이나 무력을 갖춘 세력 등이 있었는데, 문파는 이런 집단에서 아이디어를 가져온 설정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무협 소설 속 문파는 독자적인 무력과 중앙 조직, 재원, 자체 개발하거나 전승한 무공과 이념을 갖춘 사실상 소규모 국가라 할 수 있는 집단입니다.

그런데 조선시대에는 이렇게 중앙 정부와 어느 정도 거리를 둔 독자적인 집단이 생겨날 여지가 아예 없었다고 할 수 있고, 그 이유는 크게 네 가지를 꼽을 수 있습니다.
첫째, 중앙 권력이 막강했습니다. 조선시대에 이르러 중앙 정부는 무력을 완전히 장악하여 전국 곳곳은 물론 제주도와 같은 도서 지역까지 통치 영향력을 미쳤습니다.

개인 혹은 사적 집단에 소속된 군사 집단인 사병을 갖는 건 조선 건국 초기부터 태종 이방원에 의해 불법화되어 문파를 조직하는 건 불가했습니다.
또 임진왜란 이후에는 평민은 물론 기존에 군대에 거의 편제되지 않았던 양반과 노비 등 많은 백성이 군대에 편제되는 속오군 제도가 시행되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백성들은 지방정부 및 중앙정부의 통제를 많이 받았고, 정부가 다스리는 군대 규모도 컸기 때문에 지방에서 반란이 일어나기는 어려웠습니다.

그리고 반란이 일어났다고 해도 그 규모가 대체로 작았는데, 19세기 전반 홍경래의 난이 일어나기 전까지 조선 정부가 마주한 반란은 주로 서울의 권력자 또는 서울 권력자 관련 인물이 일으킨 쿠데타 성격의 반란이었습니다.

이러한 반란은 왕과 주요 권력자들만 교체하고 마무리되거나 길어도 수개월 안에 진압되어 문파 같은 조직이 만들어질 기회는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둘째, 전국 각지의 유력 엘리트들은 모두 중앙 정부 또는 지방 정부와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었습니다. 무협 소설에서 문파나 세가를 이루는 집단은 그 지역에서 힘 좀 쓰는 경우인데, 이들 대부분이 중앙 정부가 하사하는 품계를 받았고, 지방 향리와 유지들 역시 지방 정부 아래에서 각종 사무를 담당하며, 지역에서 권력을 행사했습니다.

문파를 조직하는 것보다 과거에 합격해 중앙 관직에 진출하거나 관직을 갖지 않더라도 학문적 업적을 성취해 전국에 이름을 날려 중앙의 유력 인사들과 교류하는 것이 주요 목표였으므로 문파가 만들어질 환경이 아니었습니다.
셋째, 한반도의 영토는 그렇게 넓은 편이 아닙니다. 사람이 직접 걸어 다니더라도 국경 끝까지 가는 데 한 달이 채 걸리지 않기에 당시에도 물자와 인력, 소식이 전국 각지에 빠르게 전달될 수 있었습니다. 즉, 문파 같은 조직이 세를 키워가면 금세 처리할 수 있었다는 겁니다.

그러면 몰래 세력을 키울 수도 있지 않았을까요? 이는 네 번째 이유에서 답을 찾을 수 있는데, 인구밀도가 높아서 중앙 정부의 견제를 받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중앙 정부 기록을 보면 이미 18세기 말부터 사람들이 벌목하여 민둥산이 곳곳에 있었다고 합니다. 산림 자원이 모자랄 정도로 인구가 많았고, 이 때문에 조선 후기에는 남부 지방에 살던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북부 지방으로 이주할 정도로 인구 압력이 심각했습니다.

국토 곳곳에 사람이 넘쳐났던 만큼 정부와 거리를 두고 문파가 자리 잡을만한 고립된 공간은 한반도 내에 사실상 존재하기 어려웠기에 이러나저러나 문파가 만들어질 가능성은 없었습니다.
정리해 보면 조선시대는 문파가 만들어질 수 없는 환경이었기에 그 시대에 쓰인 소설 '장화홍련전'이나 '콩쥐팥쥐전'에서도 억울한 귀신이 됐을 때 시장이나 도지사격인 사또부터 찾아가 하소연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니 현대에도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무협 소설은 찾기 힘들고, 대신 궁중 권력 투쟁과 비극, 전쟁 영웅 서사, 조선 말 격변기 조정의 권력 다툼을 다룬 소설들이 쓰였습니다. 궁금증이 해결되셨나요?
- 원고 : 국사편찬위원회 김한빛 편사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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