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의 ‘체납금 횡재’ 맞은 아일랜드의 딜레마[조은아의 유로노믹스]
언뜻 보면 이번 소송의 최대 수혜자는 EU가 아닌 ‘세수 대박’이 터진 아일랜드 정부로 보인다. 하지만 정작 아일랜드 정부는 어마어마한 세금을 걷기에 앞서 속내가 매우 복잡하다. 오죽하면 아일랜드 정부가 오히려 세금을 받지 않기 위해 변호사 비용으로만 1000만 유로(약 147억 원)를 썼을까.
● 웃을 수 없는 아일랜드
하지만 이번에 ECJ는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려 체납 세금이 정당하다고 결론지었다. 결국 애초 EU 집행위의 주장대로 ‘아일랜드 정부가 불공정하게 낮은 법인세를 적용했다’고 본 셈이다.
아일랜드 정부는 이번 판결로 ‘법인세(12.5%)가 낮아 투자 매력이 높은 국가’란 평판에 타격을 입을 것을 우려하고 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애덤 크래그스 RPC 로펌의 파트너는 “이번 판결은 아일랜드가 다국적 기업에 조세 피난처를 제공한다는 논쟁을 더욱 부추길 것”이라고 말했다. 영국 런던에 본사를 둔 회계법인 PKF 리틀존의 파르한 아짐 책임자는 “아일랜드에 유럽 사무소를 설립해 이익을 얻은 다국적 기업은 (불공정한 법인세와 관련해) 추가적인 조사에 직면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잭 챔버스 아일랜드 재무부 장관은 애플 패소의 파장을 최소화하려 애썼다. 그는 애플 소송에 대해 “수십 년 전에 시행된 규칙과 관련된 문제”라며 외국인 투자 유치 매력도가 높은 아일랜드의 이미지가 손상될 가능성을 낮게 평가했다고 FT는 전했다. 하지만 챔버스 장관은 “애플이 다른 국가들로부터 금액(체납금) 일부가 자국 소유란 주장에 직면할 수도 있다”고 언급했다.
아일랜드 내부에서는 횡재 세수를 주택, 에너지, 수자원 등 투자가 필요한 인프라에 사용하자는 주장도 나온다. 아일랜드 정부는 미래 연금, 기후, 인프라 문제 해결을 위해 1000억 유로(약 147조 원) 이상을 저축하기 위해 국가 재산 기금을 설립한 바 있다. 그만큼 장기적 투자가 필요한 사회 문제가 심각한 것이다.
하지만 파스칼 도노호 공공지출 장관은 “모퉁이를 돌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다”며 “돈을 내일로 남겨두는 게 낫다”고 강조했다. 역대 최대 규모 체납금 납부를 명령한 이번 판결로 추가적인 조사가 이어질 가능성을 염두에 둔 발언이다.
● 현금 넘쳐 경제 과열 위험
아일랜드 정부는 애플처럼 자국에 투자한 글로벌 기업들의 법인세 수입으로 부유해졌다. 다른 유럽 국가들이 재정 적자에 시달리는 와중에 아일랜드 정부는 올해 86억 유로(약 13조 원)의 흑자와 함께 작년 예상보다 5배나 빠른 경제 성장을 기대하고 있다고 FT는 이달 초 보도했다.
아일랜드의 두드러진 경제성장은 법인세 수입은 물론 다른 강점들이 발휘된 결과라는 분석도 나온다. 일단 아일랜드는 EU 회원국 중 영어를 사용하는 국가인 덕에 다국적 기업이 선호하는 측면이 있다. 게다가 교육수준이 높은 노동력을 보유했다는 평을 받는다. 경제학자인 에마 하워드 더블린기술대 박사는 “아일랜드는 모든 연령대에서 EU 회원국 평균보다 3차 교육을 받은 근로자 비율이 높다”며 “과학·기술·공학·수학(STEM) 졸업자 비율도 EU 평균보다 훨씬 높다”고 BBC에 설명했다.
다만 아일랜드는 현금이 넘치며 오히려 걱정을 해야 할 지경이다. FT에 따르면 아일랜드의 독립 감시기관인 재정자문 위원회는 ‘아일랜드의 현금 증가가 경제를 과열시킬 위험이 있다’고 경고했다.
일각에선 아일랜드의 우수한 경제성적표가 왜곡돼 있다고 주장한다. 지나치게 많은 법인세 수입이 아일랜드 경제의 체질이 우수한 것처럼 착시 효과를 일으킨다는 얘기다. 스테판 게를라흐 전 아일랜드 중앙은행 부총재는 BBC에 “아일랜드가 많은 경제활동을 창출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로 인한 인출은 그렇게 크지 않다”며 “어떤 의미에선 모두 인위적”이라고 분석했다.
아일랜드 재정자문 위원회도 2023년에 발표한 보고서에서 국내총생산(GDP)이 아닌 국민총소득(GNI)를 척도로 계산하면 아일랜드의 생산성이 유럽 국가와 비슷한 수준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유럽에서 불거지는 경제 이슈가 부쩍 늘었습니다. 경제 분야 취재 경험과 유럽 특파원으로 접하는 현장의 생생한 이야기를 담아 유럽 경제를 풀어드리겠습니다.
파리=조은아 특파원 ach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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