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朝鮮칼럼] ‘미래성장동력 7대 씨앗(SEED)’? 열어보니 묵은 종자
대부분 오래된 기술들
비교우위 있는지도 의문
우리가 강점 가진 분야를
선택해 깊이 파고들면서
독자적 품종 개량이 살길

정부가 최근 ‘미래성장동력 7대 SEED’라는 계획을 발표했다. 소형모듈원자로(SMR), 핵융합, 재생에너지, 양자, 우주항공, 첨단바이오, 핵심광물·소부장 같은 기술을 10~20년 뒤 한국을 먹여 살릴 ‘씨앗’으로 키운다는 것이다. 하지만 명명만 새로울 뿐, 봉투를 열어 보니 묵은 종자가 많았다.
핵융합 핵심인 토카막 원리는 1950년대에 제안됐다. 70년 넘게 연구한 끝에 세계 최대 실험로인 ITER가 2039년에야 본격적 DT 핵융합 운전을 시작할 예정이다. 핵융합에서 얻는 에너지를 10배 늘리는 것인데, 실제 발전 설비가 없어 전력은 1kWh도 생산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정부는 2030년대 말 핵융합 전력 생산을 제시했다. 고속 중성자에 의한 재료 손상, 삼중수소 증식과 회수, 열 회수, 원격 정비의 공학 데이터를 얻어야 상용화가 가능하다.
기존 원자로 기술을 작게 만든 SMR 역시 핵심 기술은 더 오래된 것들이다. 작은 원자로를 공장에서 모듈 형태로 제작한 뒤 조립한다. 얼마나 많이, 얼마나 표준화된 제품을 반복 생산할 수 있느냐에 경쟁력이 달렸다. 2030년대 착수를 내건 비경수형 SMR은 더 오래된 계보에 속한다. 획기적 기술이라기보다 제작 단가와 표준화, 인허가 문제 해결이 관건인 셈이다.
재생에너지도 50년 넘게 개발해 온 분야다. 1970년대 오일쇼크 이후 미국과 유럽은 태양열, 태양광, 풍력, 지열, 조력, 파력을 두루 시험했다. 그 결과 태양광과 풍력은 거대한 산업이 됐다. 2023년 중국은 세계 태양광 웨이퍼의 98%, 셀의 92%, 모듈의 85%를 생산했다. 태양광·풍력 제조업에서 한국의 존재감은 크지 않다.
오래됐다는 사실 자체는 흠이 아니다. 70년 된 기술이라도 우리가 이길 수 있으면 우리의 미래산업이고, 갓 태어난 기술이라도 이길 방법이 없으면 남의 미래산업이다. 중요한 것은 나이가 아니라 비교우위다.
필자는 가속기로 핵반응을 실험했고 연구용 원자로에서 중성자를 다뤄봤다. 이후 태양열 엔진을 직접 개발하는 사업을 시도하면서 재생에너지 산업 현장도 경험했다. 그 시절과 비교하면 연구환경은 놀라울 정도로 좋아졌다. 가속기, 핵융합로, 슈퍼컴퓨터 같은 거대 연구시설도 크게 늘었다. 그러나 국가 과학기술의 목표는 오히려 불투명해졌다.
과거의 국가 기술개발은 훨씬 구체적이었다. 2003년 정부가 선정한 10대 차세대 성장동력에는 디스플레이, 반도체와 이동통신, 미래형 자동차, 차세대 전지가 들어갔다. 세계시장 규모, 경쟁력 확보 가능성, 수출 기여도, 산업 파급효과를 보고 골랐다. 개발할 제품과 진출할 시장이 비교적 선명했다. 발전 방식도 단순했다. 선진국의 원천기술을 도입해 소화·개량하고 생산기술을 높여 세계시장으로 나갔다. 일본이 먼저 성공한 산업이 교과서였다. 그 길을 더 빠르게 따라가며 반도체, 조선, 자동차, 배터리 산업을 키웠다.
하지만 이제 그런 ‘교과서’는 사라졌다. 선두권에 오른 분야에서는 다음 제품을 스스로 결정해야 한다. 미국은 원천기술과 표준을 장악해 중국의 첨단기술 접근을 제한하고, 중국은 태양광과 배터리와 전기차를 규모와 가격으로 밀어붙인다.
한국은 미국의 원천기술 생태계를 활용하면서도 공급망 안에서 한국이 빠지면 곤란한 분야를 늘려 가야 한다. HBM과 첨단 메모리, 원전 제작·건설, 조선, 전력기기, 배터리 핵심기술처럼 이미 가진 강점을 더 깊게 파야 한다.
미래성장동력 7개 중 씨앗이라는 이름에 그나마 가까운 것은 양자다. 초전도, 이온트랩, 중성원자, 광자, 스핀 등 여러 방식이 경쟁 중이다. 양자처리장치(QPU) 전체를 따라가기보다 반도체 공정, 극저온 전자회로, 제어칩, 광학, 양자계측처럼 한국이 잘할 수 있는 분야에 집중하는 편이 현실적이다. 어느 방식이 이기더라도 그 기술은 필요하다.
지금은 핵융합, 재생에너지, SMR, 양자, 핵심 광물 등 서로 다른 시간표를 가진 기술들이 한데 묶여 있다. 한국 과학기술은 과거처럼 외국에서 씨앗을 들여와 심는 수준을 넘어섰다. 오랫동안 키워온 다른 나라 기술을 그대로 따라하기보다, 우리만의 품종을 개량해 키워야 할 때다. AI가 이번 SEED에 없는 것도 시사적이다. AI 경쟁에서 한국이 버티는 힘은 폭이 아니라 HBM이라는 한 지점의 깊이에서 나온다.
과거에는 ‘잘 따라가는 능력’이 한국을 키웠다. 한국 과학기술의 다음 30년은 ‘무엇을 선택해 깊게 파고들 것인가’를 정하는 능력이 좌우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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