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정치적 박해’ 난민 불인정 뒤 말기암 판정…돌아갈 곳 없는 이들의 ‘건보 사각지대’

충남 논산시에서 만난 이집트 국적 A씨(54)가 병원 진료 영수증을 꺼내 보였다. 영수증엔 ‘환자 부담 총액’으로 740여만원이 적혀 있었다. A씨가 3주마다 받는 항암치료 비용이다. 정치적 박해를 이유로 8년 전 한국에 온 A씨는 지난해 7월 간세포암 4기 진단을 받았다. 난민 지위를 인정받지 못해 건강보험 적용 없이 치료를 이어온 그는 최근 시민단체 도움마저 줄며 현재 치료를 중단한 상태다.
중증 질환을 앓는 난민 신청자들이 의료 지원의 사각지대에서 신음하고 있다. 정부는 체류 자격이 불안정한 난민 신청자에게 건강보험 혜택을 적용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난민 신청자들은 난민 지위를 인정받지 못해도 정치적 박해 등의 우려로 본국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장기 체류하는 사례가 많다. 이들에 대한 인도적 차원의 의료적 지원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A씨는 이집트 군부에 저항하는 반정부 시위에 참여했다가 이 사실이 적발돼 2013년 고국을 떠났다. 10일 A씨는 “친구들이 체포돼 고문을 당하는 과정에서 내 이름이 정보기관에 알려졌다”며 “경찰이 집을 찾아와 가구를 부수고 가족들을 위협했다”고 말했다.
A씨는 터키와 수단 등을 오가다 2018년 한국에 들어와 난민 신청을 했다. 법무부는 “박해 받을 것이라는 충분히 근거 있는 공포가 인정되지 않는다”며 신청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A씨는 임시 체류자격(G-1)으로 국내에 머물며 난민 불인정 처분 취소 소송을 냈지만 법원은 2022년 이를 최종 기각했다.
현행 법령상 난민 신청자들에 대한 의료지원은 충분치 못하다. 국민건강보험법 시행령 등에 따르면 외국인은 국내에 6개월 이상 체류하면 건강보험 지역가입 대상이 될 수 있다. 이에 비해 난민 신청자는 불안정한 체류 자격 등을 이유로 건보 가입이나 가입 후 자격 유지가 각 건강보험공단 지사별 판단에 따라 제한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보건복지부는 2010년부터 난민 신청자에게 연 최대 600만원의 의료비를 지원 중이다. 하지만 입원·응급치료 등에 국한돼 지원하는데다 A씨 처럼 중증질환인 경우 지원금이 부족하다. 최근에는 중증 질환을 앓던 한 난민 신청자가 정부에 의료 지원을 요구하다가 결국 사망한 사례도 있었다.
국내 난민 신청자 수는 2013년 난민법 시행 이후 매년 늘어나는 추세이지만 난민 인정 비율은 제자리 수준이거나 오히려 낮아졌다. 2016년에 7541명이 신청해 98명이 인정(1.29%) 받았지만, 2025년엔 1만4626명이 신청해 135명(0.92%)이 인정받는데 그쳤다.
최규진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인권위원장은 “인도적 차원에서 최소한 생명에 대한 문제는 해결할 수 있게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연주 난민인권네트워크 변호사는 “난민 신청자 중 신청 절차가 길고 까다로워 출국 유예 상태로 의료 문제를 겪는 사례가 많다”며 “기본적 의료 보장이 돼야 하는데 한국은 ‘버티지 못하면 알아서 떠나라’는 식”이라고 말했다.
유엔난민기구(UNHCR)는 2023년 한국 정부에 제출한 의견서에서 체류 불안정 등을 이유로 난민 신청자에 대한 최소한의 생계·의료 지원을 축소해선 안 된다는 입장을 밝혔다.
A씨는 난민 신청을 다시 한 상태다. A씨 배우자와 자녀들은 지난 2월 시민단체 지원을 받아 한국에 입국하려고 했지만 이집트 당국에 여권을 빼앗기며 저지당했다. A씨는 “남은 삶 동안 치료를 받고 가족과 인간답게 살 수 있도록 한국 정부가 자비를 베풀어 달라”고 말했다.

우혜림 기자 saha@kyunghyang.com, 강한들 기자 handl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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