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0바늘 꿰매” 오미연, 임신 중 교통사고→조산 아픔도 막지못한 배우 꿈(마이웨이)[어제TV]

황혜진 2023. 3. 20. 0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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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엔 황혜진 기자]

배우 오미연이 갖가지 시련에도 포기할 수 없었던 연기에 대한 사랑을 고백했다.

오미연은 3월 19일 방송된 TV조선 '스타다큐 마이웨이'(이하 '마이웨이')에서 지난 50년간 이어온 찬란한 배우 활동을 되새겼다.

1973년 MBC 공채 탤런트로 연기자 활동을 시작한 오미연은 올해 데뷔 50주년에 접어들었다. 교양 프로그램 녹화에 앞서 대기실에서 배우 정영숙과 만난 오미연은 "내가 유명해진 작품을 (정영숙과) 같이 했다"고 말문을 열었다.

두 사람이 동반 출연한 드라마는 1975년 방영된 MBC '신부일기'였다. 오미연은 개인 소장 중인 '신부일기' 출연진 단체사진을 공개하며 "내가 김용림 언니 며느리 역할이었고 언니가 최불암 선배님 댁 며느리였다"고 설명했다. 정영숙은 "미연이는 그때도 연기 잘한다고 소문이 났다"고 칭찬했다.

오미연은 "그때는 시청률이 대단했다. 그걸로 스타가 됐다. 김용림 씨랑 한 집에 사는 역할이었다. 그 집에 들어온 며느리였는데 굉장히 남성스러운 택시운전수 역이었다. 새로운 시대, 새로운 여성상으로 써 주셨다. 남자를 다스리며 사는, 여자가 대문을 뻥 차고 들어가는, 그때 당시 센세이션한 역할이었다. 그 드라마를 통해 스타가 됐다"고 회상했다.

이후 오미연은 남편과 단둘이 거주 중인 집으로 제작진을 초대했다. 모던하고도 고풍스러운 인테리어, 손때 묻은 항아리들이 눈길을 모았다.

오미연은 항아리들을 정성스레 닦으며 "이 속에 있는 건 효소다. 토기로 만들어 숨 쉬는 그릇들이다. 효소를 집에서 만들어 놓으면 다르다고 하더라. 항아리를 하나씩 준비하다 보니까 이만큼 됐다. 다 다른 거다. 이건 오디, 여기 있는 건 청매실이다"고 설명했다.

이어 "오미자는 두 회를 계속 만들어 양이 많아졌다. 학교 다닐 때 애들이 오미자라고 놀렸다. 그래서 내가 오미자를 싫어했는데 배워 보니까 진짜 몸에 좋다는 걸 알았다. 사랑하며 집에 모셔놓고 있다"며 "무엇이든 3년이 지나면 약이 된다고 하더라. 2012년에 만들었으니까 11년 차가 된 거다. 지금은 약이 됐다. 아무 때나 먹어도 된다"고 덧붙였다.

오미연과 남편 성국현 씨는 결혼 43년 차 부부다. 당시 레스토랑을 운영했던 성국현 씨와 인기 배우 오미연 씨는 음악을 좋아한다는 공통점 덕에 마음이 통했다. 자녀들은 성장해 독립했다. 오미연은 각자의 일과 육아를 병행하며 바쁘게 보낸 시절을 돌이켜보며 "지금은 돌볼 아이가 없어서. 돌볼 남편과 돌볼 아내만 남아 있다"고 말했다.

앞서 오미연은 6년 전 '마이웨이' 57회에 모친과 동반 출연했다. 오미연은 "어머니 지금 요양원에 계신다. 다치셔서 너무 아파하셔서 잠도 못 자고 내가 20일을 병간호하다 보니까 내가 죽을 것 같더라. 식구들과 회의해 어머니를 요양원에서 모시자고 했다. 지금은 집에 안 계신다"고 밝혔다.

오미연은 어머니에 대해 "아버지한테 일찌감치 사랑을 못 받으셔서 혼자 계시면서 진짜 자녀 키우는 기쁨으로 사셨다. 특히 딸이 나 하나인데 어려서부터 날 아들보다 더 귀하게 생각하시고 내 일이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서 도와주시고 그랬던 분이라 사실 어머니를 요양원에 모신 건 진짜 죄라는 생각을 너무 많이 했다"고 털어놨다.

이어 아버지에 대해 "처음에는 원망했다. 어렸을 때는 아버지가 이렇게 책임을 안 지고 어떻게 저렇게 자기 좋아하는 방향으로 사실 수 있을까에 대한 불만. 성장한 다음에 아버지가 가정을 버리고 나가셨는데 가끔 사람들이 아버지 이야기를 하면 '참 나 아버지 있지'라고 할 정도로 아버지를 잊고 살았고 그분도 우리한테 연락을 안 했다. 그래서 섭섭함도 별로 없는 것 같다. 아버지가 아직 살아 계시는데 다른 분이랑 살고 계시니까 가끔 왔으면 하시지만 난 같이 사는 분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해 안 간다"고 말했다.

요양원에 모신 어머니는 건강하게 잘 지낸다고 밝혔다. 오미연은 "사실 우리 집에 있어도 우리 다 일 나가고 혼자 계신다. 외로우신데 거기는 말할 사람도 있고 요양사 선생님이랑 이야기도 하고 그림도 그리고. 내가 모시고 있는 것보다 사실 훨씬 잘해주신다. 어머니가 '사실 집에 가면 심심하지 뭐'라고 하신다. '그래. 엄마. 내가 자주 올게'라고 한다. 가족들이 자주 가서 면회하고 그러고 있다"고 덧붙였다.

오미연은 1987년 대형 교통사고를 당했다. 당시 오미연은 대형 교통사고를 당해 늑골 등 여러 신체부위를 부상당했다. 그 여파로 얼굴만 600 바늘을 꿰매고, 6차례 성형수술을 받으며 장기간 회복에 집중했다. 배우 생활은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이에 대해 오미연은 "음주하신 분이 중앙선을 넘어와 내가 교통사고를 당했다. 그때 우리 막내 임신 4개월 차였다. 아이가 4개월 반 됐는데 내가 포기할 수 없다고 했다"고 회상했다.

교통사고를 당했을 당시 오미연은 막내딸을 임신 중이었다. 사고 여파로 임신 7개월 때 조산했다. 오미연은 "(조산) 한 달쯤 됐는데 아이 머리가 너무 커진다고, 이상하다고 하더라. 아이가 뇌수종이어서 수술을 하고 평생 장애아로 살 수도 있고 포기해야 될 수도 있다고 했다. 선택은 우리 보고 하라고 의사 선생님이 그랬다"고 말했다.

이어 "내가 선택 못하는 것들을 남편이 해 줬다. 그때는 난 어려운 선택이라고 생각했는데 남편이 안 된다고, 수술을 해야 한다고 했다. 남편 선택이 옳았다"고 덧붙였다.

남편은 "그때 수술하지 않고 자연사하도록 방치해 뒀다면 오늘날 우리 생활이 이렇게 편안했을까. 늘 평생 그 생각 때문에 움츠려 살았을 텐데. 물론 다른 부부들도 다 마찬가지였을 거다. 그러나 그때 상황으로 봐선 평생 이 아이의 대소변을 받아내며 당신들이 키울 자신이 있으면 키우라고 할 정도로 아주 급박한 상황이었다. 그래도 좋다고 했다"고 말했다.

이어 "그렇게라도 이렇게 잃고 싶지 않다고 했던 결정이 지금 와서는 참 잘된 결정이었다. 그때 당시에는 많이 힘들었다. 아내도 그 문제에 있어 적극적으로 많이 지원을 해줬다. 당신 생각대로 하자고"라고 덧붙였다. 막내딸의 수술은 무사히 마무리됐고, 건강하게 성장했다.

조산 후 배우로서 휴식기를 보냈던 오미연은 돌연 캐나다로 떠났다. 연달아 겪은 유괴, 강도 사건 여파였다. 오미연은 "막내가 태어나 2살 때 겨우 아장아장 걷기 시작할 때였다. 내가 일을 시작해 도우미 아주머니를 모셨는데 아주머니가 온 지 2~3일 만에 애를 데리고 없어져버렸다. 찾기는 찾았지만 그 정신없었던 건 이루 말할 수가 없다"고 속내를 고백했다.

이어 "우리가 강도 사건을 겪었는데도 그 사람이 내가 연기자인 줄 알고 갔다. 있는 걸 다 줬다. 다 가져가도 좋으니까 사람은 해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해서 좋게 하고 갔다. 내가 그 사람을 잡아 달라고 경찰에 신고할 수 없었다. 나중에 나한테 그럴까 봐(보복할까 봐). 알려진 사람으로서 사는 게 무서웠다. 그래서 우리 아이들에게는 이런 것에서 벗어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캐나다로 갔다"고 덧붙였다.

이날 방송에서는 오미연과 동료 배우들과의 우정도 빛났다. 오미연은 존경하는 선배 배우 김영옥을 만났다. 두 사람은 속 깊은 이야기를 주고받던 중 트로트 가수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표했다. 김영옥은 TV조선 '미스터트롯' 시즌1 우승자인 임영웅을, 오미연은 같은 시즌에서 4위에 오른 김호중을 열렬하게 응원하고 있다.

오미연은 빼어난 성량을 토대로 한 김호중의 가창력을 극찬했다. 오미연은 "클래식이 바탕이 돼 표현해 주니까 트로트가 뭔가 고급진 것 같다. 트로트 위상을 높여준 것 같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트로트를 좋아했고, 김호중 씨 때문에 트로트를 좋아하게 됐다는 이야기들을 하는데 나랑 같은 마음이더라. 김호중 씨 팬들 중 사실 트로트 팬이 아니었는데 트로트로 넘어간 분들이 엄청 많다. 나도 그런 사람 중 하나"라고 말했다.

김영옥은 공감하면서도 임영웅을 자신의 최애로 꼽았다. 김영옥은 임영웅에 대해 "난 근데 그 감성, 그냥 그 아이한테 반했다. 지금도 원픽이다. 무슨 첫사랑인 것처럼. 너무 좋더라. 원픽이다"고 밝혔다.

이어 "내가 아픈 일이 있어 1년을 헤맸다. 어린애처럼 살지만 죽겠다 싶을 때 사위가 오디션 프로그램이 볼 만하다가 추천해 줬다. 3회부터 봤다. 먼저 못 본 거 찾아서 보고. 노래로 굉장히 위로를 받았다. 임영웅 노래를 다 외우고"라고 덧붙였다.

데뷔 50주년이지만 오미연의 열일은 계속되고 있다. 약 5년 전 콘텐츠 크리에이터로 변신해 제2의 인생을 개척한 것. 구독자 수는 어느덧 18만 명을 돌파했다. 주로 주부들에게 유용한 아이디어들을 소개하는 콘텐츠들을 선보이고 있다.

방송 말미에는 절친한 배우 장용과도 재회했다. 오미연과 장용은 연극 '사랑해요, 당신'을 통해 오랜 기간 연기 합을 맞췄다.

두 사람은 만나자마자 서로 "여보"라고 부르며 반갑게 포옹했다. 장용은 "작년에 보고 올해 보니까"이라고 말했고, 오미연은 "이런 남편이 어딨어. 작년에 보고 올해 보는 남편이 어디 있어"라며 웃었다.

두 사람은 연극 '사랑해요 당신'을 통해 햇수로 7년여 동안 부부 역할로 호흡을 맞췄다. 장용은 "우린 정말 오랫동안 같이 연극을 하다 보니까 오랜만에 만나면 '여보'라고 그런다. 진짜 부부인 것처럼 그런 친근감도 있고. 우리가 왜 드라마에서는 못 만났었지?"라고 말했다.

오미연은 "감독하시는 분들이 중매를 잘 못 선 거지"라며 "한 드라마에 출연한 적은 있는데 부부는 안 했다"고 덧붙였다. 장용은 "문영남 작가의 '애정의 조건'이었다"며 "나중에 결국 사돈이 되는 역할이었다"고 회상했다.

오미연은 자신이 생각하는 성공 기준에 대해 "난 배우로 감히 성공했다고 생각한다. 지금 입장에서 돈을 많이 벌고 스타 입장에 있기 때문에 성공이 아니라 난 행복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행복이 목표였다"고 설명했다.

이어 "나도 한창 인기 있을 때는 '주인공만 할 거야'라는 목표도 가질 수 있었지만 난 내 직업을 사랑했기 때문에 조연으로 나이 먹어서도 하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지금까지 하고 있다. 내가 하고 싶은 건 거의 다 해본 것 같다"고 배우라는 본업에 대한 자부심을 드러냈다.

(사진=TV조선 '마이웨이' 방송 캡처)

뉴스엔 황혜진 bloss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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