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대 톱여배우였는데 38살 연상 대기업 회장 딸 낳고 잠적해버린 연예인

‘미스롯데’로 떠오른 하이틴 스타

1970년대, ‘미스롯데’라는 이름 하나로 스타덤에 오른 소녀가 있었다. 당시 안양예고에 재학 중이던 서미경은 제1회 미스롯데 선발대회에서 우승하며 대중의 눈도장을 받았다.

14세의 나이로 선발된 그는 양손에 망사 장갑을 낀 채 “사진 예쁘게 찍어주세요”라며 웃는 모습이 그대로 화보가 됐다.

이후 드라마와 영화에서 활약하며 청춘스타로 자리매김했다. ‘춘풍연풍’, ‘홍길동’, ‘김두한과 서대문 1번지’ 등 작품에 출연했지만, 대중의 기억에 남는 건 ‘맑고 단아한 이미지’였다.

1978년에는 드라마 '상노'의 용녀 역으로 인기를 얻었고, 이듬해엔 ‘토지’에도 출연했다.

연기 활동이 무르익던 1981년, 서미경은 갑자기 연예계를 떠난다. 공식적인 이유는 ‘일본 유학’. 하지만 갑작스러운 결정에 많은 이들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당시엔 ‘강력한 스폰서가 있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지만, 누구도 확실한 정황을 알지 못했다.

그리고 2년 뒤, 조용했던 그 공백의 이유가 밝혀진다.

38세 연상 신격호와의 인연, 그리고 출산

1983년, 서미경은 롯데그룹 창업주 신격호 회장의 딸을 출산한다. 당시 그녀의 나이는 24세, 신 회장은 62세였다. 무려 38살 차이.

신동빈 회장보다도 어린 그녀는 그렇게 세 번째 부인의 자리에 올랐다.

처음에는 딸 신유미를 여동생으로 호적에 올렸다가, 5년 뒤인 1988년 유전자 검사를 거쳐 신격호의 딸로 공식 입적시켰다.

이로써 서미경은 ‘롯데그룹 안의 숨겨진 사람’으로 존재하게 됐다. 신격호 회장 역시 생전 서미경과 그 딸을 각별히 챙긴 것으로 알려졌다.

은둔의 세월, 그리고 유원실업

결혼 이후 철저하게 대중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외부와의 접촉은 거의 없었고, 공식적인 모습도 드물었다. 그러다 2006년, 재계에 '서미경'이라는 이름이 다시 등장한다.

그녀가 운영하는 유원실업은 롯데시네마 수도권 매점 공급을 독점했고, 롯데백화점 입점 음식점 운영권도 보유하고 있었다.

반포 미성빌딩, 대학로 유니플렉스 소극장, 삼성동 유기타워 등 부동산 자산만으로도 상당한 규모였다.

긴 세월 뒤, 신동주-신동빈 형제 간의 경영권 다툼이 불거지며 서미경의 이름이 다시 언론에 오르내리기 시작한다.

당시 서미경과 딸 신유미는 일본 롯데홀딩스 지분 6.8%를 보유하고 있었는데, 이는 오너 일가 중 가장 많은 지분이었다.

그녀가 받은 상속과 자산은 1조 원에 달할 것이란 추정도 나왔다. 신 회장이 페이퍼컴퍼니를 통해 지분을 분산 증여하며 그녀와 딸에게 힘을 실어줬다는 해석이 뒤따랐다.

서미경이라는 이름, 이제는 단순한 배우의 이력이 아닌, 한국 현대 재벌가의 복잡한 역사를 말해주는 상징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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