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한강 소설 佛번역자 “수상 소식에 펑펑...문학 지평 넓힌 대사건”
여성·아시아문학 아닌 문학 자체 승리”
“그의 문장은 악몽마저도 (서정적인) 꿈처럼 느끼게 만든다.”
한강 작가의 노벨 문학상 수상 소식은 10일 프랑스의 번역가 겸 편집자인 피에르 비지우씨의 하루를 온통 뒤흔들어 놓았다. 축하 전화와 인터뷰 요청이 쉴 새 없이 몰려들었다. 그는 한강의 소설 ‘채식주의자’ ‘작별하지 않는다’ 등을 주프랑스 한국문화원 최경란 팀장과 함께 프랑스어로 번역했고, ‘소년이 온다’ ‘흰’ ‘희랍어 시간’ 등의 프랑스어판 발간에 참여하면서 한강의 작품을 유럽 문학계에 본격적으로 소개했다. 그는 “한강의 노벨상 수상 소식을 듣고 펑펑 울었다”며 “정말 환상적인 일이 벌어졌다”고 했다.
- 한강 작가가 노벨 문학상을 받을 수 있었던, 그만의 힘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그의 글은 영혼의 심연을 헤집는다. 고통과 감정의 바닥까지 파고드는 것이다. 하지만 그 속에서 ‘무한한 섬세함’을 발견하게 된다는 것이 놀랍다. 한강은 인간의 내면을 집요하게 탐구하면서도 그 과정에서 고요함과 섬세함을 놓치지 않는다.”
- 한강의 소설을 두 권이나 번역했다. 그의 작품들을 어떻게 정의하고 싶은가.
“그의 소설들은 내면의 은밀한 경험(l’intime)이 역사와 어깨를 마주하고, 고통과 사랑이 눈밭에서, 숲에서, 그리고 격정의 불길 속에서 흔적의 길(des chemins tracés)을 남기는, 가슴 아린 작품들이다.”
프랑스 문단에선 개인의 경험을 통해 이야기를 전개하고, 그 경험들이 모자이크처럼 모여 전체 역사를 조망하게 만드는 한강의 작품에 대해 “최근 문학계의 큰 흐름에 부합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전쟁과 폭력이 만연한 시대에 개인의 고통에 대한 공감과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문학이라는 것이다. 문학 전문지 ‘레쥐니베르뒤리브르’ 등 일각에선 ‘아시아의 여성 작가’라는 점에 주목하기도 했다.
- 한강이 여성 작가, 아시아 작가라서 주목받았다는 의견도 있는데.
“동의하지 않는다. 한강 작가의 작품들을 어떤 분류나 트렌드에 맞춰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 그의 문학은 시대와 상황을 뛰어넘는 인간의 보편성에 호소한다. 한강의 노벨 문학상 수상은 아시아 문학의 승리도, 여성 문학의 승리도 아니다. 문학 그 자체의 승리이며, 문학의 지평을 넓힌 중요한 사건이라고 생각한다.”
비지우씨는 1992년 문학 전문 출판사 ‘르세르펑 아플륌’을 공동 창립한 이래 30년 넘게 편집자 겸 출판인으로 활동해 왔다. 1990년대에 한국 문학에 관심을 갖게 됐고, 2019년부터 햇수로 5년간 한국 작가의 작품을 주로 출판하는 마탕칼름(Matin Calme·고요한 아침)을 운영했다. ‘82년생 김지영’을 비롯해 지금까지 한국 소설 10여 권을 최경란과 함께 번역했다.
-한국 문학은 어떻게 접하게 됐나.
“오정희 작가의 ‘바람의 넋’을 읽으며 처음으로 한국 문학에 매료됐다. 이후 김연수, 하일지 작가의 작품을 거치며 그 폭을 넓혔고, 결국 한강의 작품을 접하게 됐다. 같은 아파트에 살던 최경란씨를 만나 한국 문학 번역도 시작했다. 내게는 큰 전환점이었다.”
- 한강의 노벨상 수상 이후 한국 문학이 나아가야 할 방향은.
“일전에 K팝, K드라마에 이어 K문학(K-Lit)의 시대가 왔다는 글을 쓴 적이 있다. 이제 그것이 현실이 됐다. 나는 다만 (한국 문학이 세계적 인기를 얻으면서) ‘넷플릭스화’하는 것이 두렵다. 최근 한국 문학이 스트리밍 플랫폼을 통해 각색되는 경우가 많아지면서, 한국적 특수성이 지워지고 전 세계 어디서나 팔릴 수 있는 문학 작품이 많아지는 것이 아닌가 걱정이다. 특히 장르 문학에서 이런 경향이 강하게 나타나고 있다. 한국 문학이 세계적으로 주목받으면서도 고유의 독특한 상상력과 특유의 정서를 유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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